빛나는
봄날의 향이란, 당신과도 같다.
라고 써 놓고 보니 몹시 가렵다. 크하하.
향은 은근해야 제멋 아닌가 싶다. 양키캔들이니 우드 뭐니 집에도 몇 가지 향초가 있고 디퓨저라는 것들이 공간마다 향을 내뿜는다. 하긴, 지난겨울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의 한 호텔의 뒤뜰에서도 이국적인(내게는 당연하게도) 향이 날 듯 말 듯 일렁였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부산에만 가도, 열차에서 내려 역사를 벗어나는 순간 뭔가 모르게 바다의 향이 스며온다. 항도에는 항도만의 향이 있다는 거지. 하여간 도시나 자연의 향이 은근하니 좋다.
언젠가는 독특한 겐조의 광고가 리트윗 되던데 광고의 관점에서 뭔가 훌륭하겠지? 그런데 향수광고는 좋은 게 참 많다. 그림은 감각적이어서 몇 번을 봐도 보기 좋다. 패셔너블하고 가끔은 철학적이고 심오하다.
마케팅 차원에서는 고객 접점인 매장에 특유의 향을 뿌리기도 한다. 삼성의 가전 매장에는 그만의 향을. 엘지의 패션 매장에는 또 그만의 향을. 그런데 물리적 향도 향이지만 물리적인 향과 중첩되는 이미지적인 향도 있다.
눈이 녹으면 그 흰빛은 어디로 가는가 - 셰익스피어
막 던져보면, 좋은 광고라면 영상이고 그림이고 또 소리에서도 향이 퍼져 나온달까.
일상에서 흔하지만 중요한 과정 중 하나가 커피와 술을 마시는 일인데 이것들은 모두 향을 품고 있다.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자정 무렵, 소파에 반듯하게 앉아 딱 한잔의 위스키를 목 너머로 흘려보낸다. 그러면 스르르 잠이 또한 올 듯 말 듯하면서 그렇게 은은하면서 심장이 쿵 쾅 쿵 쾅 내일은 좋은 일이 벌어질 거야 말하는 것만 같더라고. 누가? 향이.
술맛을 가리지 않은 나로서는 위스키도 뭐니 뭐니 해도 잔향이 은은한 것이 좋던데. 마실 때야 강렬한 것이 좋지만. 음악조차도 들릴 듯 말 듯 은은한 것이 좋지. 은근한 칭찬이 좋은 것처럼. 그렇게 향을 묻혀 주면 사람들은 끌리게 마련인 건가.
Featuring Norah Jones
Norah Jones & Her Friends, 2010
그해 늦여름에 당신은 배꼽티를 입고 (1994년에는 파격적이었다. 그러니까 최신의 유행이었다.) 뭔가 향수를 뿌렸다. 나는 향을 알아채지 못했지만 개코처럼 예민한 코를 가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한 선배가 그 향을 내게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내 기억 속에 당신의 향이 묻었다. 악기에 묻는 노라 존스의 목소리처럼.
“현! 카피 쓸 때에 태워.”
가을 하늘 정취야말로 향만큼 은은하다. 언젠가 상호 형님이 향 한 박스를 주셨다. 너무 아껴 태우는 바람에 나는 겨우 향 한 개비만 썼다. 내 수첩 더미 속에 향은 박스채로 고스란히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내 글 속에 상호 형님의 마음이 배어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