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마음에 드는 수입차가 있다면 다 타보고 오십시오, 그랜저 럭셔리
어느 시기까지 ‘그랜저’는 지금보다 윗급 차였다. 우리팀은 가끔, ‘엑센트’를 사러 갔다가 ‘그랜저’를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집 앞에서 과일 사듯 차를 사버린 한 남자에 대해 얘기하곤 했다. (조금만 더 보태시면 아반떼, 거기서 조금만 더 보태시면 쏘나타, 거기서 조금만 더 보태시며 그랜저… 자동차 딜러에 관한 이야기였다.)
몇몇 사람들이 아주 오래 전의 저 수입차 운운하는 카피가 좋다고 말했다. 그들은 광고를 ‘말의 전략’이라고 이해한다. 저 카피를 쓴 우리 팀 모두는 저 카피가 최소한 ‘옳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 마음에 드는 수입차를 타러 갔다가 영원히 오지 않을 거야. 깔깔깔. - 어떻게 아냐고? 마음에 드는 수입차를 타보면 아는 거다.
그렇게 기담과 괴담이 횡행했다. 다시 말하지만 분명 수입차가 훨씬 더 빨리 주행하고 보다 더 안전했다. 저 카피를 함께 썼던 임원은 회사에선 그랜저를 탔지만 집에서는 X5를 탔다.
나는 기업으로서의 현대자동차를 싫어한다. 싫은 대상은 두 부류로 나뉜다. 현대차의 지배자, 그러니까 재벌 일가가 첫 번째 부류다. 그리고 현대차의 또 다른 지배세력 노동조합이 그 두 번째 부류다. 두 번째 부류는 과연 자신들이 만들어내는 차에 대해 어느 정도의 자부심을 가질까?
누군가 물어올 수 있겠다.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으로 만들어내는 가치에 대해 반드시 자부심을 가져야 하는가?’ - 다만 노동조합이 현대차의 품질에 대해 발언하거나 내부 고발하는 모습은 흔치 않다. - 마침내 두 부류 사이에는 어느 순간 경계가 사라진다.
저 카피에서 말하는 수입차는 거의 혼다의 ‘어코드’였다. ‘베라크루즈’의 경쟁자는 렉서스의 ‘RX 시리즈’였다. 물론 렉서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현대자동차는 ‘한국의 일본차’를 겨냥한 것이었다. (저 카피의 론칭 이후, 일본 여자가 비주얼로 나오는 후속편도 있었다.) 자신만만하게 저렇게 읊조렸지만 차는 역시 일본차가 좋았다. 이쯤이면 차를 잘 만들어도 좋지 않겠나 싶지만 그들은 돈을 벌어서 나눠가지는 것에 급급했다. (일본에서의 아반떼 모델은 욘사마였다.)
요컨대 현대자동차는 자동차가 아닌 자국을 업고 자국민에게 장사를 했다. 본질은 ‘품질’이되 광고는 ‘프레이밍’이었다.
마음에 드는 나라가 있다면 다 살아보고 오십시오
- 대한민국 문재인
나라는 대통령에게 맡기고 당신들은 이제 부디 품질로 승부를 해다오. 카피라이터가 말장난을 해봐야 잘 만든 일본차는 고장도 잦지 않을 것이고 편의성과 디자인과 가격 경쟁력도 변치 않을 거란 말이다.
그래서 이 나라의 차가 좋아서, 이 나라의 공산품이 좋아서 이 나라가 좋아지는 경험도 해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