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의 첫곡 1
정경화
BACH: Partita No. 2 in D minor
사물이 음악을 닮았을 때가 있다.
'때가 있다'라는 건 아무래도 시간에 따라 다르다는 의미다. 내 오랜 폴라로이드 카메라는 '어떤 때' 음... 주로 해질 무렵 보면 모비딕(Moby Dick) 같고(멜빌의 모비딕이 거대한 향유고래인 것은 알지만 왠지...), 다른 '어떨 때'(규칙 없다) 보면 바흐처럼 느껴지고 바흐 곡을 연주하는 바이올린의 운궁을 상기시킨다. 광선이 부추기는 사물의 실루엣, 사물의 컬러, 나와 사물의 거리 등이 내 기분 혹은 기분의 이미지네이션을 좌우하는 것 같다.
셀 수 없이 많은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바이닐을 가지고 있지만 정경화의 젊은 시절 데카 레코드를 자주 듣고 즐긴다. 그 음향적 경쾌함이 반할 만하다. 한데 내가 뭐 바흐를 알아봐야 얼마나 알겠고 느껴봐야 뭘 느꼈겠냐고. 정경화의 데카는 한 장짜리 바이닐이다. 그래서 자주 듣는다.
아주 예전에 로스트로포비치의 바흐 무반주 중에 2번과 5번만 연주해서 한 장으로 묶어낸 소련 멜로디야의 바이닐(2번과 5번은 minor 조성인데 그 음반은 레인지가 좁아서 minor 같지도 Major 같지도 않았다.)이 있었다. 그런 이치와도 같다. 한 장이라 간편하게 만들어버리는 이 레코드에는 파르티타 2번과 소나타 3번이 들어있지만 따져 보면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다.
듣는 내가 음악에다 뭔가를 마구 담아내는 것이다.
오늘도 그렇다. 폭우가 지나가고 고요함을 되찾았을 때의 고향을 바흐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