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어떤 갠

by 현진현

빌 에반스(Bill Evans)를 좋아하는 게 그의 안경 때문이라뇨? 그를 좋아하는 건 그의 음들 때문이랍니다.

음들의 조합도 훌륭하지만 - 물론 그런 이유로 대가로 칭송받겠지 - 나는 레코딩된 그의 피아노 소리들이 다 좋다. 음들의 조합, 그러니까 코드나 멜로디, 혹은 그 두 가지의 조합이 소리 자체에 영향을 미치긴 하겠지. 그래도 나는 역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각능력 속에서 그의 '소리'가 가장 좋다. - 그건 그렇지만 안경을 벗은 빌 에반스를 상상할 수 있는가.


빌 에반스를 처음 들은 건 중학교 1학년 때거나 초등학교 6학년쯤이었다. 형과 함께 쓰는 17평 아파트의 부엌 옆의 방은 록 스피릿으로 가득 차 있었다. 붉은 담요로 감싼 카세트 레코더에서는 레드 제플린이나 딥 퍼플, 블랙 싸바스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검은색 포크기타에는, 줄에다 지그재그로 종이를 끼워놓았다. 밤을 위한 조치, 소리에 예민한 수험생 누나를 위한 배려였다.

지금 생각하면 빌 에반스를 잘 알지 못하는 - 음악을 알고 말고 할 것은 없지만 - 라디오 방송의 디스크자키가 <Sunday At The Village Vanguard>를 들려주었다. ‘재즈 피아니스트 빌 에반스’라고 소개를 했다. 어려운 음악이라고도 했다. 외려 난 빌 에반스는 재즈를 넘어서는 사람 같았는데...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가 술을 드시고 두드리던 술상의 박자와도 닮았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어쨌든 빌 에반스의 그 ‘소리’는 하몬드 오르간 소리와는 한없이 달랐다. 먼지까지 불러일으켜 몸을 흔들게 만드는 오르간과는 반대였다. 빌은 가라앉았다. 부유했던 세상의 모든 것들이 가라앉았다. 나는 왜 두 발로 걷지? 그런 의문들조차 땅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처음 들은 빌 에반스의 피아노는 그런 소리를 내고 있었다.


영주의 어머니를 만난 건 시월의 어느 날이었다. 어머니의 안경은 빌 에반스의 안경과 비슷했다. 그녀는 탐탁지 않은 사람을 만났을 때의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스코트 라파로(Scott Lafaro)의 콘트라베이스가 ‘두둥’ 했다. 짧은 머리, 얇은 뿔테 안경, 흰색 셔츠, 붉은색 카디건, 금색 목걸이에 달린 주황색 보석, 긴 손가락, 가녀린 몸, 자주색 치마... 두 딸의 어머니인 그녀는 이 클래시컬한 면소재지에서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녀의 바람에 의하면, 영주는 의사나 교수에게 시집을 가야 한다, 피아노는 적당히 쳐도 좋다, 그러니 맞선을 보자, 그때까지 조신하게 지내야지.

영주의 집은, 학원 뒤편 뜰을 지나 소담하지만 예쁘게 그렇게 있었다.

나는 하이네의 시집을 읽으면서 시외버스를 타고 아파서 대구로 오지 못한 영주를 찾아갔을 것이다. 산과 강을 지나 하이네의 시구를 곱씹으며 춥지도 덥지도 않은 그 면소재지로 들어섰다. 띄엄띄엄 간판이 달린 소박한 시가지에 [은혜 피아노 교습소]가 있었다. ‘은혜’는 그녀 자신의 이름이었다.



내가 가질 수 있는 거 중에 예쁜 거. 예쁜 거 중에 내가 가질 수 있는 거.

막 복학했을 무렵이었지아마. 대흥사 올라가는 계곡이었다.

영주와 내가 계곡물을 바라보면서 (아침이었다.) 앉아있었다 나란히.

네 꿈은 뭐야?

그랜드피아노, 그랜드피아노를 가지는 거.


그로부터 영주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영주는 여전히 내 옆에 앉아있지만. 나는 그랜드피아노를 사줄 수 없기 때문에. 나더러 사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게다가 먼 미래의 일인데. 그냥 물어본 건데, 그래서 그냥 대답한 건데.


차 광고를 만드는 팀에 있을 때, 내가 가질 수 있는 예쁜 차가 나왔으면 좋겠다 여러 번 생각했다. 내가 가질 수 있는 거 중에 예쁜 것이 어느 날 나왔다. 음반들... 예쁜 LP, 예쁜 CD, 예쁜 마음, 예쁜 인생, 이런 것들을 가질 수 있다니!

계곡의 물살 위로 쇼팽이 함께 흐르기 시작했다. 영주의 친구들은 내 앞에서 곧잘 피아노를 쳐주었는데 영주는 피아노 치는 모습을 거의 보여주지 않았다. 부끄러웠던 걸까? 물살이 반짝인다. 영주의 복숭아 같은 볼도 반짝인다. 쇼팽은, 프레데릭 쇼팽은 잠시 집을 비운 죠르주 상드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그녀와의 포옹을 기다리며 마주르카를 들려주고 있다.


초의선사의 부도를 지나 대흥사에 들어서면, 거대한 저수지를 떠올린다. 내 기억 속의 저수지는 대흥사를 지나 두륜산을 오르고 산의 뒤편에 있었다. 실제로는 대흥사의 아래에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왜인지 내가 그 아침에 보았던 저수지는 암만 봐도 양촌저수지가 아니다. 희한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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