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카피 속의

by 현진현


KakaoTalk_Photo_2018-11-18-17-21-52.jpeg Tate Modern, 2009


나는, 랩탑을 랩탑으로 쓴다. 책상 위에 노트북 컴퓨터가 있어도 쓰는 일은 거의 없다. 단어 정도를 타이핑해서 검색을 하긴 하지만. 그러다 보니 책상이 없는 곳, 집이나 누군가를 기다리는 음식점에서(음식점 테이블 위에 컴퓨터를 올리는 건 좀 그렇잖아요.) 무릎 위에 올려놓고 쓴다. 그렇게 타이핑을 한다. 알다시피 그렇게 좋은 글은 아니지만 써 본 사람들은 알지. 쓰는 게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

하기는, 보통은 노트에 필기구로 쓴다. 랩탑은, 노트나 필기구조차 없을 때에도 쓸 수 있다. 랩탑이 볼펜만큼 흔한 세상이니까.


랩탑으로 쓰다 보면 문장을 마구 쉽게 벼려서 결국 다 해체가 된다. 외울 필요도 없이 얇아져서는 불 싸지른 종이처럼 둥둥 하늘로 올라가 버린다.

그런데 말이지, ‘카피’는 호구지책이다 보니 하늘로 올라가는 그 분진을 어찌 되었든 움켜잡을라고 아득바득 애를 쓴다. 그 허망한 것들을….


둘째가 콜라병을 열어달라고 해도 나는 허공에 손을 뻗쳐 자음과 모음을 움켜잡고, 애피타이저로 죽이 나와도 그래서 식어버려도 허공을 향해 하이파이브하듯 펄쩍 뛰어서는 그 먼지와도 같은 카피를 쥐어 내리려고 발버둥을 친다.

모르겠다. 나는 유명한 카피라이터가 아니지만 유명한 카피라이터들을 여러 분 알고, 지금도 참치집에 앉아 그중 한 분을 기다리고 있다. 물론 랩탑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내가 쓴 카피 중에는 기억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는데...


흑인은 결코 미국의 대통령이 되지 못할 것이다. 역사는 바뀐다. - 유플러스 LTE


물론이다. ‘역사는 변화한다’는 저 메타 담론은, ‘공짜로 줘도 유플러스는 쓰지 않겠다’는 소비자를 겨냥한 것이었다.

나는 흔히, 광고의 방법론을 말할 때 역사(역사의 사실), 역사적 관점의 예로 저 카피를 든다. 썸네일에는 이렇게 썼다.


고교만 졸업한 지방 출신의 한 사내는 결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지 못할 것이다.


처음 썸네일을 할 때에 이런 반어적 사실을 기술하기 시작했는데 수십 가지를 썼을 것이다.

이런 지난한 과정을 거쳐서 만든 광고가 오바마의 뒷모습이 나오는 광고였다. (그랬는데 어떤 작자가 자신이 썼다고 주장한다기에 이렇게 한 꼭지 글을 랩탑으로 쓰고 있다.)


좋은 카피였다. 그런데 진짜 역사가 바뀌어버리면서 그냥 그런 카피가 되어버렸다. 그때만 해도 그냥 노무현이라는 인물이 대통령이 된 것, 그리고 흑인이 미국의 대통령이 된 것, 한류 걸그룹이 유럽의 팬들을 확보한 것 정도가 역사 변화의 이슈였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면, 한번 더 뒤틀렸다.


우리는 대단했다.

국민의 힘으로 사악한 대통령을 끌어내린 것이다. 그러니 저런 카피가 반전일 리 없다.

역사는 본래 바뀌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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