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영화 같은

by 현진현
안양, 2018년의 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의미 없는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지만 형들은 내 말을 주의 깊게 들었고 나를 보살펴 주었다. 만나는 형들 모두 그랬다. 그렇지 않은 형도 몇 있었지만 크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그런 형들 또한 내 마음과 비슷하기 때문이었다. 형들을 만나고 나서는, 내 축복받은 인생과 내 저주받은 삶이 서로 교차하는 바람에 마구마구 울어 젖히기도 했다. 내가 흐느낄 때마다의 그 설렘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를 보기 며칠 전과도 같았다. 물론 나는 내 스타일대로, 집으로 돌아와 울었다.

어떤 분열적인 사람이 좋은 카피를 쓰긴 힘들 것이다. 그러고 보면 뭔가 굉장히 분열적인 카피들이 있다. 하지만 형들의 카피는 아주 비분열적이다.


열다섯 살, 바람을 가르는 차에 넋을 잃었다.

이젠 그 소년의 꿈을 들어줘도 되지 않겠나.

- The New 911 Carrera Cabriolet


오히려 낭만적인데 사실, 바람에 대한 이야기는 늘 달콤하다. 바람은 영화(movie)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바람이라고 하면 언덕 아래로부터, 아니면 골목 저 밑으로부터 불어 올라오는 그때 그 초여름의 훈풍을 도저히 잊을 수가 없다. 정말 잊을 수가 없다. 아직도 그 바람을 가슴속에 지니고 있는 것도 같다. 열대여섯 살쯤 보았던 눈처럼 내리던 꽃잎들이 생각나거나 잊히지 않는 몇 개의 이름을 나열하면 그 바람이 불어오고 만다.


지금은 없어진 회사, 컴투게더 - 2층에서 내려오는 계단 끝에 이 카피는 걸려 있었다. 남자화장실로 가는 길마다 몇 번이고 읽었다. ‘바람’뿐인가, ‘꿈’과 ‘소년’도 들어있고 억양은 시적이다. 무엇보다 과거와 현재에 긴 다리를 놓는다.


오늘 아침, 2017년에 생산한 펜더 기타를 쳤다. 이 텔레캐스터는 50년대의 모델을 모태로 만들어졌다. 노란 기타의 꿈이 이루어졌다. Made in USA가 아닌 Made in Mexico이긴 한데 그게 뭐 대수겠어? 소년의 꿈이 이루어졌다는 것이 중요하지.

카피는 저렇게 쓰셨지만 한 사장님의 드림카는 벤틀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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