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상상하는

by 현진현
2011년

‘죽은 그 아이를 위한 노래는 무엇인가’라고 (구스타프 말러를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바보처럼 생각했다. 죽음에 음악 따위 어울리지 않아… 내 장례식에 울려 퍼질 음악을 생각해본다. (장례식조차 취소해버리면 모를까.) 쇼팽을 잘 쳤던 피아니스트 루빈스타인은 자신의 장례식을 위해 쇼팽이 아닌 슈베르트의 5중주를 선곡했다.



17년 전, 이태원의 회사 근처로 대학교 후배 기주가 찾아왔다. 서울에서의 만남이 반가웠다. (우리는 대구에 있는 대학교를 다녔고 졸업한 지 몇 년이 흘렀으니 최소 몇 년만이었다.) 기주는 졸업 후 인천에 있는 교대에 편입했다고 했다. (기주는 史學科를 다녔었다.) 철학을 전공한 나는 사학과의 강의를 몇 가지 들었고 기주와 함께 한두 번의 유적답사를 간 적이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기주가 어떤 친구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야기가 길었다. 듣다 보니 이야기에 나오는 그 친구가 죽었단다. 설암(舌癌)으로 죽었다 했다. 그런데 기주는 내가 그 친구를 잘 아는 것처럼 얘기했다. 게다가 철학과의 후배라고…


혹시 걔 내가 아는 애야?

선배랑 꽤 친했잖아요!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떠오르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이름조차도.

그 아이, 눈감기 전에 선배에게 남긴 말이 있어요.


이상하다. 이상하다. 내가 그 아이를 기억하지 못하는 게 너무나 이상했다. 사람들도 이상하다 했다. 사람들은 철학과 학생 중 사학과 수업을 함께 듣는 두 사람으로 그 아이와 나를 기억했다. (며칠 전 신문에서 아마도 그 아이와 내가 들었던 그 수업의 교수님(노중국 교수)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우리는 한 쌍으로 묶여 있었다.


그러니까... ‘상상화’를 내가 좋아하게 된 건 그때 기주를 만나 그 아이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다. 상상화는 꽃과 이파리가 다른 시기에 돋아나 서로가 서로를 볼 수 없다. 상상만 할 뿐이다.


상상화란 꽃, 아니? 지난여름 식구들과 신흥사에 다녀왔다. 신흥사는 늘 그렇듯 북적였다. 동대문 시장도 휴가라고, 일주문 안쪽의 상인들이 말해주었다. 휴가 낸 상인들이 모두 속초로 몰려온 것도 아닐 텐데 그날만큼은 가는 길도 오는 길도 참 많이도 붐볐다. 한데 경내로 들어서고 다시 대웅전 앞마당에 올라섰을 때 사람이라곤 우리 식구와 기와불사 접수를 받는 보살 한 분뿐이었다. 경내는 갑작스럽게 고요해지고 우리는 여유롭게 여기저기 둘러보기 시작했는데, 대웅전 아래 화단에서 특이한 꽃을 보게 되었다. 큰애가 손가락 끝으로 가리켰다. 저 꽃 좀 봐요, 하듯 눈을 찡긋하면서. 전에 왔을 때엔 몰랐는데 아마 그때도 피어있었겠지. 예쁜 꽃이었다. 그런데 꽃을 받치고 있는 대궁만 있고 입사귀가 없더라. 독특하다 했더니, 이 꽃은 상상화란다. 想像花. 보살님이 아이 곁으로 다가가 설명해주는 것을 나도 함께 들었다. 잎사귀가 먼저 나는데 그 잎사귀가 다 메말라 떨어지고 난 후에야 꽃이 핀단다. 그러니 꽃과 잎사귀는 서로를 볼 수 없어 서로의 모습을 상상만 할 뿐이란다. 그래서 상상화란다. 얼마 전 바람이 세게 불 때 꽃이 몇 개 꺾였다고 하더라. 흔적이 있었다. 꺾이면서 꽃은, 다른 세상으로 가 잎사귀를 만났을 것이다. 잎사귀 또한 꽃을 만났겠다. 상상 그대로였을까 상상이 깨지는 순간이었을까 상상화란다.


마음을 알 수가 없다. 아는 척하는 것뿐이다. 그러니 안타까워하지 말라.


우린 사실 만난 적도 없잖아.



Schubert : 4 Impromptus D899 & D935

Maria João Pires


즉흥곡은 즉흥적이지 않다. (즉흥곡이란 제목은 출판업자가 붙였다. 누군가는 네 개의 즉흥곡이 하나의 소나타라고 짐작했다.) 피레스의 연주에는 슈베르트 자신에 대한 애달픔과 죽어버린 베토벤에 대한 흠모가 함께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만 같다. 피레스는 슈베르트와 잘 어울린다.

그나저나 이 슬픈 가락을 어찌할거나. 그 아이에게 어울릴까, 물어도 되는 건가. 누가 들을 것인가. 누군가를 기억하는 사람이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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