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다시

by 현진현


London, 2009


깜깜한 두 시에 일어나 세수하고 몸도 씻고 베갤 들고 거실로 나와서는 거의 저절로 황동규 선생의 전집을 펴 들고 풍장 3부를 읽었더랬다. 참 곱고도 진솔해서 우아한 글이다. 자꾸만 자꾸만 황선생의 시를 해설해주시던 우리 선생님의 눈동자가 생각나고 한껏 반들반들 쓸어 올린 시인의 머리칼이 밤공기를 맴돈다.

요즘 베스트셀러들은 수필이 많더라. 읽다 보면 문법적 오류 때문에 위축되는 문장들이 많다. 그래 놓고선, 경계할 일이다, 따위를 덧붙이는 것 아주 별루다.

알고 보면, 사유의 합리화가 얼마나 유령처럼 스멀거리고 다니는지. 게다가 스스로 쓴 생각들의 간극을 느끼는 것만 같다. 부연과 부기가 너무나 지루했다. 그러고 보면, 詩야말로 얼마나 아름다운가. - 말이 절에 들어가는 날 새벽부터 몹시 바람이 불었다더라.


풍장

황동규, 1983



근래에 날씨가 이상하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날씨가 이상하다. 오늘 새벽은, 바람이다. 밤사이 불고 있었을 것이다. 바람이 불면 피곤이 가신다. 종종 그런 기분을 느낀다. 바람을 보면서 창을 열었다. 거리로 나와 바람을 느끼면서, 등등의 하루를 보내면서 머릿속엔 황동규 선생의 <풍장>이 머물렀다.

풍장의 기원을 찾아들어가기보다는, 세상살이로서의 풍장을 상상해 본다. 화장이나 수목장처럼 직접적이지 않은 표현이다, 풍장은. 그야말로 풍장은 인생스럽다. 인생의 뒤끝이면서도.


선생이 비유한 세계는 사실 내 알 바가 아니다. 다만 나는, 비유에 대해 의미를 부여해본다. 대유인 것도 같다. 돌담을 쌓다 보면 제각기 생긴 돌들이 담이 된다. 저걸 어찌 쌓는담? 하지만 맞아 들어간다. 모든 돌들이. 生에도 모든 것들을 가져다 댈 수 있다. 생은 또한, 모든 것이니까.

그래서 비유는 아름다워야 하는 걸까? 인생이라서? 그리하여 시가 되는 것이고? 이런 시를 설명하려 하면 어쩔 수 없이 부사와 관계사가 자꾸만 들어가게 된다. 그런 품사들은 하릴없이 바람이 된다. 그러고 보면 나는 지극히 부사 같은 존재이다. 바람으로 쌓는 담.

그러나 부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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