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가는 인생이죠

알반베르크 구반을 젤 좋아합니다

by 현진현

당시로서는 낯선 검은색 2열의 Jeep을 타고 성수대교를 건너가고 있었다. 그 해 나는 그의 생일에 몇 장의 CD를 선물했었다. 그는 그 CD 중 프리드리히 굴다(Friedrich Gulda)의 평균율을 차 안에서 듣고 있었다.

굴다는 모차르트를 다루듯 또박또박 쳐 내려가다가 달콤하면서도 아스라하게 타건 하기도 했다. 이 정도면 들을만하지 않냐? 라고 혼잣말하듯 그가 말했다. 그러더니 푸가(Fuga, Fugue)가 뭐냐? - 평균율은 조성 별로 주제가 푸가로 구성되어 있다. 주제를 대위법으로 따박따박 굴다 스럽게 쳤으니 푸가가 궁금했을 것이다. 회사의 대표에게 푸가는 인생이에요 라고 대답하기는 힘들었고, 저도 잘 몰라요 라고 대답했다. (푸가는 인생인데 인생을 잘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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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가에는 네댓 번의 배반이 서려있습니다. 푸가가 푸념처럼 되면 안 되는데 인생이 배반적이라는 건 실질적이지 않을까 싶어서 가져다 대 봅니다. 거의 음악 이론적은 문외한이니까, 어디까지나 재미로 푸가와 인생을 얘기해보려고 해요. 어디까지나 즐겁게.


어떤 미국 감독이 [마지막 4중주]라는 걸작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여기엔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Philip Seymour Hoffman)이 출연합니다. 그 배우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끝내주는 영화죠. 그는 늘 흔들리는 갈대니까요. 거기에 이 영화의 주제는 [푸가]입니다. 호프만의 딸과 ‘제1 바이올린’의 연애도 나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둘은 나이 차이가 꽤 나거든요. 호프만은 미칠 듯이 화가 치밀지만 (저라도 마찬가지일 텐데요.) 멀리서 보면 대위법(Counterpoint)적이긴 합니다. 아무래도 영화의 주제는 첼로 주자의 파킨슨병입니다. 그는 마지막 무대에서 (제 기억에) Presto를 연주하다 말고 악기를 뉘어놓고 커튼 뒤로 사라집니다. 쿼텟의 남은 3명이나 호프만의 딸이나 우리나 모두 겪게 될 푸가죠. 쫒아가다가 죽는다는 건 인생의 이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2바이올린의 호프만 역시 영원한 넘버 2라는 푸가를 보여주고요.


영화는 [베토벤의 쿼텟 14번]으로 점철됩니다. 제1바이올린이 호프만의 딸을 가르치는 장면이 1악장, 그 느리고 가을 하늘 같은 푸가입니다. 하늘이 하늘을 뒤덮는다는 것이 어떤 이미지인지 음악으로 보여줍니다. 시작, ‘그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 첫 번째 도입부 프레이즈를 레슨하는 모든 언어는 아마 인생을 대유 하는 것과도 같았을 겁니다. (다시 돌려보지 않아도, 확신합니다.) 그렇게 푸가입니다.


곡으로 보자면, 혹은 첼리스트의 입장에서 보자면 4악장이 아름다운 하이라이트일 겁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제5악장에서는 첼로가 주제를 제시합니다. 영화에서의 마지막 무대는 4악장까지가 아니었을까 피날레 전까지였을까... 정확한 기억이 없습니다. 곡 자체는 마지막 7악장에서 다시 c#minor로 돌아옵니다.


푸가는 대위법적인 돌림 악곡이라 어떤 주제가 제시되면 다른 성부가 대위법적으로 또 선율적으로 뒤따라 갑니다. 어울리고 싶은 모방이 푸가의 주요한 철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Jeep을 몰면서 푸가를 물어봤던 그 사람은 머릿속에서는 광고를 거부하면서 광고로 돈을 버는 분이었죠. 광고 외의 성부로 다른 것을 해보려 하지만 결국은 광고를 모방하는 영역에서 발버둥을 쳐요. 그러면서 삶은 전시대의 광고인을 닮아가죠.

1악장으로 돌아가서, 주제가 나오면 느리게 쓰윽 푸가 형식이 시작됩니다. 무려 10부작의 예능 프로그램 제작 발주를 하고 연락이 두절된 어떤 분이 생각납니다. 양손이 서로 시공간적으로 다른 말을 하는 푸가가 따라붙어요. 밤을 지새우며 열심히 주제를 연주하면 그 주제를 냉큼 가져다가 다른 회사에 발주해 제작해버린 어떤 광고대행사도 떠오르네요. :) 보통은 완전 5도의 화성적 간격으로 대위법을 진행합니다만 어떤 곳은 개인적 이득을 위해서 규범의 조화를 무시해버리기도 하더군요. 이런 식으로 따지면, 그 어떤 음악형식이 인생을 닮지 않았겠습니까만...


푸가는 좀 다르다고 느껴져요. 푸가는 규범적이지만 매우 아름답습니다. 배반까지도 비난 없이 아름답게 만들어버리거든요.

삶의 조건들(경험적 개념적)에 우리는 처해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조건들 속에서 자유롭게 경험하면서 시공간을 겪어나갑니다.


쫓음

하나의 삶이 아름답다는 것은 그런 쫓음에 있습니다. 세상이라는 (혹은 세계라는) 환경 속에서 각 개인의 목적성을 향한 치달음의 몸짓, 그것이 아름답습니다. 그런 몸짓의 음악적인 언어가 바로 푸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니’ - 푸가는 인생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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