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을 묻혀 슬픔을 탐구한다]
비록 쉰을 갓 넘었지만 대저 인간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무엇인가 압박에 시달린다 감안하더라도 '기억력'이란 것이 점점 쇠퇴한다. "정말 기억나?"라고 그녀가 되물어올 때가 많아진다. 그래서 기록에 집착하게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기억'과 '기록'은 내 오랜 주제였다. (나 무슨 작가처럼 그럴듯하게 얘기한다. ㅎ) - 우리 옆 아파트는 이제 곧 사라진다. 있던 것이 없어지는 것은 모두, 슬픔이다. 그것이 기쁨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우리로 생겨나지 말았어야 했다. 버리는 옷들조차도 슬픔이다. 아프리카 부룬디의 똥파리 날리는 시장 한 편에서 다시 버린 옷들이 판매될지언정, 그렇다, 슬픔에는 기쁨이 묻어있을 수 있으나... 기억도 기록도 모두 슬픔이 근본적이다. - 기쁨을 묻혀 슬픔을 탐구한다.
지난 여름 이웃 아파트를 기억해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