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화(1/3)

음악소설집

by 현진현

당신을 보내세요

“우리 인연은 여기까지야.”

잠시 말을 멈춘 끝에 그녀가 덧붙이듯 말했다. 하지만 간곡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전화를 끊기도 전에 다른 누군가가 떠올랐다.


뭘까, 집으로 가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이른 오후에 회사에서 나왔다. 그리고 횡단보도 앞에서 멈춰섰을 뿐, 주저하지 않고 집을 향해 걸어갔다. 한참을 걷다 방향을 틀어 경마장을 향하는 도로의 인도를 따라걸었다.

대공원에 이르니 밤안개가 잔뜩 끼어있었다. 바람도 없어서 연무가 머물러 있었고 나는 그것 때문에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도로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안개라기보다는 는개였다. 하지만 그 길만 넘어서자 넓고도 넓은 주차장이 제법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넓고도 넓은 그곳 주차장을 이리저리 달렸다. 나름 감상적이었다. 이별의 방법은 단 하나, 달리기 뿐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한참을 뛰고 난 후 주차장 화단가에 앉아 음악을 들었다. 엘라 피츠제럴드의 콜 포터 송북, 그제 듣던 음악이 그대로 흘러나왔다. 아이 러브 패리스, 달리는 것이야말로 참 평온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와의 파리 여행이 떠올랐다. 나는 다시 달렸다. 몇 번을 반복했는지 몰랐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왔을 때까지도 하늘은 여전히 깜깜했다.

나는 긴 시간 샤워를 했다. 그리고나서 두 개의 얼음을 넣고서 석 잔의 술을 마셨다. 넉 잔째를 마시다 말고 소파에 누워 잠이 들었다. 잠들기 직전에야 그녀가 떠나버리기를 바라고 있었던 나를 기억해냈다.

커튼이 걷힌 거실 창으로 쏟아진 해가 내 눈을 사납게 만들었다. 나는 서둘러 옷을 꿰입고 밖으로 나왔다. 아무런 계획이 없었지만 나는 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퀴퀴한 냄새가 가득한 택시 안에서 나는, 머릿속 한쪽이 묵직하게 가라앉는 것만 같은, 몇 개의 기억과 계획들이 마구 혼재되고 그래서 어딘가로 떠나야만 할 것 같은, 가보지 못한 곳이 아니라면 익숙한 곳으로라도 옮겨가야할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을 느꼈다.

나는 서울 외곽의 두 시(市) 사이, 그 경계에 덩그러니 지어진 기차역에 내려 행선지를 결정해야만 했다. 그제야 나를 그곳으로 이끌었던 감정의 실체를 끄집어내야 했던 걸까, 역사를 서성이던 나는 오랜 연인으로부터 이별을 통보받던 순간 떠올렸던 누군가를 다시 떠올리고 있었고 줄곧 생각해왔던 대사처럼 ‘D시 한 장이요’라고 매표원을 향해 내뱉고 말았다.


Y는 불투명한 막을 두른 채 언제부터인가 내 몸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K가 Y의 죽음을 전해주던 날, 나는 곧장 그 죽음을 잊어버린 것인지도 몰랐다. 아니라면 몇 달 동안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랬을 것이고, 그렇게 오륙년이 지나갔다. 그날 이후 K와도 연락이 뜸해졌다. 그런데도 Y는 특정한 때 없이 옅은 비가 갑자기 팔뚝을 적시듯 나타나곤 했다. 처음에는 그저 하나의 에피소드였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잊을만하면 나타나고 또 나타나더니 어느 때부터는 나를 떠나지 않고 있는 것만 같았다. Y는 왜 자꾸만 나타나 머릿속 한 가운데로 영역을 넓혀가는 것일까, 나는 생각하곤 했다.

당신을 보내세요, 열차 좌석 머리받침의 광고문구가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 리듬이 느껴지는 그 문구를 세 번쯤 읽다보니 그럴 듯해 보였다. 마지막 읽을 때엔 소리를 내 읽었다.

나를 보내야 할 곳은 어디일까. 내가 바라던 삶? 아니면 늘 영위하던 일상? 그것도 아니라면 가족들이 있는 곳? 나도 모르게 시작된 생각들은 뒤엉키고 있었다. 나는 차창 밖으로 곱씹던 생각들을 던져버리고 싶었다.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에는 눈이 내릴 기세가 전혀 없었는데 출발한지 채 10분이 지나지 않아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한 시간쯤 지났을 땐 폭설이라 해도 좋을 큰 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열차는 속이 하얀 터널을 지나는 것처럼 자욱하게 뿌려대는 눈 속을 지치지 않고 달려 나갔다. 차창 안의 조명 때문인지 차창 밖 태양의 빛깔 때문인지, 세상은 노란빛을 띠기 시작했다. 나는 꿈속을 달리는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기차가 따뜻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 나는 몽롱해진 시야를 견디지 못하고 눈을 감아버렸다.

눈이 다시 하얗게 보이기 시작할 때쯤, 나는 어떤 여름의 기억에 사로잡혔다. 하얀 여름, 눈부신 시간들이지만 뚜렷한 기억은 없는 그런 시간들 속으로 고개를 내미는 것만 같았다. 뜨거운 태양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마음이 따뜻해졌다 여려졌다, 생이 반짝였다 허름해졌다, 그러고 있는 것만 같았다. 누군가 묻는 것도 같았다. 돌아와 다시 시작하지 않을래? 당신을 보내봐. 내가 돌아갈 곳은 어디일까, 지금 내가 나를 보내는 목적지 D시쯤일까, 나는 이정표가 흐릿한 생각들에 다시 사로잡혀 있었다.

객실 안의 사람들은 모두 잠들어있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 사람들은 눈을 껌벅거리면서 책을 읽거나 신문을 읽거나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D시로 들어가는 고속열차는 속도를 줄이고 있었다. 줄어드는 속도는 과거로 들어가는 속도처럼 느껴졌다. D시와 가까워질수록 눈은 성기고 있었다. 하기는, D시에 큰 눈이 내리는 날은 참 드물었다.

D시까지는 고속열차로 채 두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새로 차려진 붐비는 역사에서 큼직한 안내표지판을 보고나서야 나는 D시에 지하철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그 옛날 D시의 큰 도로는 늘 지하철 공사로 혼란스럽고 소란스러웠던 것도 어렴풋이 떠올랐다. 언제 만들어진 것인지 지하철은 2호선까지 있었다. 게다가 그들 노선에는 나의 목적지까지 있었다. 2호선 종착역의 전전(前前)역, 그곳에 Y와 내가 다닌 학교가 있었다.

울적하긴 했지만 머릿속은 맑아지는 것 같았다. 지하철 승강장은 맑아진 머릿속보다 깊었다. 나는 길고 긴 에스컬레이터를 내려가 전동차에 올랐다. 하지만 몇 정거장 못 가서 곧 명치끝이 답답해져 왔다. 동시에 나는 한겨울의 D시가 여기저기 불온할지 모른다는 것을 직감하고 말았다. 갑작스레 차려진 상가(喪家)에 뛰어 들어온 것 같은 기분, 나는 그런 기분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기억의 교집합

그해 여름, 나는 분명 D시에 있었다. 신입생이던 봄부터 졸업하던 해 가을까지, 군대를 다녀온 기간을 빼면 나는 온전히 D시에 있었다. 아버지가 홀로 계시는 서울이었지만 방학 동안에도 하루 이틀 말고는 올라가 머무른 적이 없었다. 나는 고모댁에서 학교를 다녔다. 마지막 학기 때엔 학교 근처에 방을 얻어 시나리오를 쓴답시고 흥청거리고 있었지만.

고모댁은 학교의 정반대편, D시의 동쪽 끝에 있었고 학교는 반대쪽 끝에 있었다. 나는 버스를 타고 D시의 가장 큰 번화가에 내려 다른 버스로 갈아타고 학교에 다니곤 했다. 나는 문득, 그때처럼 창밖으로 흘러지나가는 D시를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긴 D시에 내려온 게 꼭 9년 만이었으니까.

그런 생각이 옅어질 때쯤 그가 탄 1호선 열차는 고모댁이 있는 D시의 동쪽을 지나 환승할 역으로 추적거리며 다가가고 있었다.


거리에는 외국어 학원, 휴대폰 판매점, DVD방, 대형 커피전문점 등이 아래위로 좌우로 빼곡하게 늘어서 있었다. 골목 안은 순도라도 높이겠다는 건지 온통 술집들로만 채워져 있었다. 대부분 고깃집들이었다. 인간들이 고기를 너무 많이 먹어서 짐승스럽게 산다는데 학생들은 잠자리도 으르렁 대며 가지겠군, 하고 나는 잠깐 짓궂은 생각을 했다.

갑작스런 여행으로 지친 나는 몹시 허기졌다. 이리저리 살피는데 술을 파는 식당들은 대부분 장사를 시작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장사를 시작한 집을 찾아 꽤나 서성대다 조명이 밝은 텅 빈 삼겹살집 한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을씨년스럽게 바람이 불어대서였는지 기차에서 마신 술은 말끔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술을 마시기로 했다.

중년(中年)의 승(僧) 하나가 몸을 돌려 식당을 나가고 있었다. 목탁소리에 잔향이 묻어 있었다. 스님이 쓴 검정 뿔테안경 때문이었을까, 나는 잔을 들다말고 K의 얼굴을 떠올려 보려 애를 썼다. K의 얼굴은 가물가물한데, Y의 죽음을 전해주던 날 K가 쓰고 있던 두꺼운 검정 뿔테안경만 또렷이 떠올랐다. 그러다 그만, 나는 스님을 주저앉혀 세상 얘기라도 나누고 싶은 심정이 되어버렸다.

바깥은 소스라치게 추웠다. 식당 주인은 여전히 주방에서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는 시선을 돌리다 식당 문 앞에 멈춰 선 스님의 뒷모습을 보았다. 바랑이 펄럭이는 모습이 제법 쓸쓸해 보였다. 그래 보여, 중이 쓸쓸한 건 또 뭐냐, 중얼거렸다. 나는 질근질근 안주를 씹어 삼키면서 소주를 털어 넣었다. 그 사이 주방에서 나온 주인여자가 나를 향해 싱긋 웃고 있었다. 나는 그날 그 식당의 첫손님이었다.

삽십 분이면 온다던 P는 한참 동안을 오지 않고 있었다. 밖이 어둑해지면서 두 번째 손님들이 들이닥쳤다. 그러고도 한참이 지나 내가 계산대 앞에 섰을 때에서야 P는 식당으로 들어섰다. 나는 악수를 하는 도중에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나는 낯설어진 학교 앞 식당에 혼자 앉아 늦은 점심을 무려 두 시간을 넘게 먹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때 내가 K를 만난 것은 우연이었다. 그러므로 Y의 죽음을 알게 된 것도 우연이었다.

K의 전화는 졸업 후 처음이었다. 늦은 밤 K의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그렇지 않아도 D시에서의 대학시절을 떠올리고 있던 참이었다. ‘D시가 아닌 거야?’라고 내가 물었을 때 K는 ‘인천입니다’하고 남자의 말투처럼 대답해주었다. 나는 K를 만나기로 약속을 정했고 그 다음날인가 다음다음날 회사 옆 맥줏집에서 K를 만났다.

K는 졸업 후 인천의 교대에 편입해 벌써 4학년이었다. 인천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답사여행에 K가 싸왔던 유부초밥 얘기며 수업시간에 곤혹스런 질문을 던져대곤 하던 내 학창시절 이야기 등을 서로 늘어놓았다. 그러다 말고 K가 갑자기 Y의 이야기를 꺼냈다. 정확하게 말하면 Y의 죽음을 전했다.

“죽었어?”

나는 건성으로 들어서 별 생각 없이 되물었다.

나는 Y의 죽음과 그렇게, 처음 마주쳤다. Y가 죽었다고 K가 말했을 때, 나는 그저 Y라는 여자의 나이를 계산해보았을 뿐이었다. 아마도 K와 같은 스물여섯쯤일 거라고.

K는, ‘죽었어’ 라고 낮은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를 이어나갔다. 설암(舌癌)이었다고 했다. 입 속에 생긴 암이라니, 라고 내가 중얼거리는데 K가 덧붙여 말했다.

“걔가 숨이 넘어갈 때도 선배 얘기를 했어.”

“내가 아는 애야? 이름이 뭐라고?”

나는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선배가 Y를 모른다고?”

나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선배가 Y를 모른다고? 선배 얘길 얼마나 자주 했는데 …….”

그러면서 K는, 임종 직전 Y가 내게 전해달라던 말을 옮겨 주었다.

나는 몹시 당황스러웠다.

“이름이 뭐라고? 죽었다는 그 아이 이름이?”

나는 Y의 이름을 몇 번이나 다시 물었다.

“선배 얘기 자주했어, 문병 갔을 때도 선배 얘기 하곤 했어. 정말 기억 안 나? 선배네 과(科)후배였잖아, 같이 수업 들었을 텐데 …….”

Y의 이름은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다. K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몸서리를 치고 있었다.

“그럴 리가 …… 이상하다 …….”

나는 아무래도 K의 착각인 것만 같았다.

“선배가 우리과 수업 들을 때도 같이 들었잖아. 맞아, 같은 조로 발표도 했고.”

나는 점점 이상해지는 기분을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사학과 수업을 들었을 때를 기억해내려고 애를 썼다.

“선배가 기억 못 할 리가 없는데, 정말 이상하다.”

K 역시 몇 번이고 되묻고 있었고, 나는 뜬금없는 사건에 오싹해지고 있었다.

“홍 교수님 수업 기억 안나?”

고대사강의를 들은 것은 기억나지만 나는 도무지 Y가 누구인지 떠오르지 않았다. K는 쉽게 화제를 바꾸지 않았다. 물론 K가 Y의 죽음을 전해주기 위해 나를 만나러 온 것 같지는 않았다. K는 다만 내가 Y를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나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지만.

K를 만난 그날,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학과조교로 있던 후배 P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음날 P가 찾아서 알려준 기록에 의하면 P와 같은 학번인 Y는 전공인 철학과 수업은 물론 사학과 수업까지 나와 같은 과목을 들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나는 의아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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