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소설집
그해 여름
시내로 갑시다, P의 말에 거리로 나와 택시를 탔다. D시는 지독하게 불경기예요, 라고 택시 안에서 P가 중얼거렸다. D시의 가장 번화한 시가지로 온 나와 P는 과후배가 주인이라는 카페로 들어갔다. 나는 그곳의 출입문 안으로 들어서고 나서야 그곳을 기억해냈다. 옛 이름은 ‘쟁이’였지, 나는 카페의 이름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카페의 이름은 바뀌어 있었다.
혹 Y도 아는 곳일까, 나는 그 카페가 제대하던 해 봄쯤에 생겼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의 주인 여자가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유명여배우를 빼닮았었다는 것도 기억해낼 수 있었다. 그래서 남자손님이 많았었다는 것도.
카페는 그때보다 더 어두워진 것 같았다. 또 그 여자배우를 닮은 여자도 없었지만 음악은 그때와 비슷했다. 내가 막 들어섰을 때 들려오던 건 보사노바였다.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그 음악을 듣는 순간, 나는 갑작스럽게 헤어짐을 통보해왔던 연인을 떠올렸고 눈이 펑펑 내리는 날 그녀와 함께 그런 한여름 밤의 음악을 듣고 싶어 했음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또 그해 여름, 쟁이가 이름을 드날리던 시절에 하드바퍼의 보사노바는 꽤나 훌륭한 배경음악이었을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P와 그는 그곳의 주인인 여자후배와 홀 한 가운데 둥근 탁자를 둘러싸고 앉았다. 시간강사인 P가 강의에 관한 이야기를, 그리고 카페의 주인이 선후배들의 동정을 화제에 올리고 있었다. 주인이 다른 테이블을 신경 쓰느라 자리를 비운 사이 P가 먼저 Y의 이야기를 꺼냈다. 기차에서 P에게 전화를 해두었던 탓이었다.
“웬일로 내려왔어요? 일 년 내내 바쁘다면서. 여긴 아주 오랜만이겠어요. …… 형이랑 같은 수업 들은 거는 맞아요. 예전에 제가 한번 알아봐드리지 않았어요? 맞대니까요. 저도 기억이 날 거 같아요. 그 왜 키가 작은 애였는데, 단발머리. 매일 청바지 입고 다니고. 형이랑 양산에도 함께 가지 않았어요? 그때 왜 야외철학세미나라고 있었잖아요. 그때도 아마 우리랑 같은 조였던 걸로 기억나는데 ……. 기억 상실이유?”
취기가 가득했던 나는, ‘키가 작고 단발인데다 늘 청바지를 입고 다니는 여대생이 어디 한둘이란 말인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미안하다 너를 기억하지 못해서’라고도 두서너 번 뇌까렸다. 나와 P는 카페주인이 내 온 위스키를 얼음도 없이 쉬지 않고 마셔댔다. 술을 마시는 사이사이 그 얼마간, 나는 Y를 잊어버렸다. 하지만 P가 다시 Y의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아참! …… 내가 이거까지 조사해 왔잖우. 여기 집 주소, 그리고 전화번호. 여기 가본 적 없어요? 집이 여기잖아요. 사는 게 힘들어서 기억력이 마비된 건가? …… 예뻤어. 형! 사귄 거 맞죠?”
P는 취해있었다. P가 정말 Y를 기억할까, 나는 P도 Y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의심했다. 북구 OO동 5-10번지.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동네였다. 내가 가보지 못한 동네인 것도 분명했다. 테이블로 돌아온 카페주인이 Y를 궁금해 했다. 하지만 그녀도 자신의 후배인 Y를 기억해내지 못했다. 주인은 화제를 바꿔 그의 옛 모습에 대해 불평을 해대기 시작했다.
“선배는 좀 재수 없었죠. 잘난 체하고 다녔던 건, 기억나요?”
그해의 여름을 아무리 떠올려 봐도 나는, Y는커녕 늘 붙어다녔던 P와의 추억조차 제대로 되살려내지 못했다. 일기라도 써둘 걸 그랬나, 그런데 일기는 증거가 되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남겨진 파편들을 긁어보아 원형을 추측하듯 그해 여름의 기억들을 모아나간 것은 술이 깬 이튿날이었다.
P의 오피스텔에서 잠들었던 나는 아홉 시 무렵 눈을 떴다. 일어나자마자 나는 K가 전해 주었던 Y의 마지막 말을 곱씹었다.
그해 여름은 선배 덕분에 즐거웠어.
“Y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 건 역시 학적부 아니겠어요?”
P가 학교 갈 채비를 서두르며 사진도 볼 겸 학교에 가보자고 말했지만 나는 따라나서지 않았다.
나는 오전 느지막이 오피스텔에서 나와 D시의 중심가를 걸었다. 시가지로 들어서지 않고 시가지를 우회하는 골목들을 걷기 시작했다. 흐린 겨울이어서인지, P의 말대로 극심한 불경기여서인지 사람들은 적었고 표정도 밝지 않았다.
나는 중심가의 남쪽 끝까지 걸어 내려왔다. 거기 있던 ‘D극장’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 자리는 콘크리트를 울퉁불퉁하게 깔아서 조성한 주차장이 차지하고 있었다. 다행스럽게 D극장의 맞은편 너무나도 낡은 건물에 있던 ‘녹향’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나는 지저분한 계단을 천천히 밟아 올라갔다. 문은 열리지 않았고 ‘오픈타임 오후 2시’라고 한글로 쓰인 낯익은 팻말이 흔들거렸다. 나는 계단을 내려오면서 그해 여름 녹향을 자주 드나들었음을 기억해냈다. 동시에 그해 가을 함께 여행을 떠났던 한 여자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녹향에서는 음악은 물론이고 음악과 함께 콘서트 실황 따위의 비디오를 틀어주기도 했는데 그 비디오를 비추는 스크린 뒤로 낡고 작은 방이 하나 있었다. 그해 여름, 나는 그 방에서 모이던 모임에 드나들고 있었다. 매주 감상회를 열고 논평들을 해대는 고전음악감상모임이었다. 그곳에서 알게 된 여자가 있었다. 네 살이나 연상이었던 그 여자. 함께 서해의 해안가 마을을 여행했고 그래서 일몰도 몇 차례 함께 보았던 여자. 언젠가 책장에서 아무 책이나 빼들고 소파에 앉았을 때 발등 위로 떨어진 그 여자의 사진, 그리고 그 사진 아래쪽에 찍혀있던 빨간 색 숫자의 연도며 날짜들이 그의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갔다. 사진 속의 여자는 거센 바닷바람을 맞아 머리칼이 얼굴을 다 가리고 있었다. 그 여자의 얼굴을 떠올려보려 했지만 도무지 잘 떠올려지지 않았다.
오후 2시쯤이면 늘 녹향으로 들어와 손바닥으로 무르팍을 두드리며 바흐를 듣던 노인도 생각났다. 주인장이 주던 시큼한 사이다하며 달고도 새콤했던 오렌지주스도 떠올랐고 므라빈스키가 지휘봉 없이 연주하던 차이코프스키의 5번 교향곡도 회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녹향 어디에도 Y에 대한 기억은 없었다.
더불어, 자주 들리던 서점이며 레코드가게가 생각났지만 그것들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처음으로 LP를 사보았던 레코드가게, 혼자 가서 무려 몇 시간씩이나 주저하며 책을 골라서 나올 수 있었던 서점들, 싼 값에 술을 많이 마시기 위해 드나들었던 시립도서관 건너편의 술집, 처음부터 그곳에 없었다는 듯이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시가지의 큰길로 돌아나가는 길에서 나는 멈춰 섰다. 그 자리에 있던 분식점 하나가 사라지고 없었다. 형광등 수십 개가 달린 대형 휴대폰매장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분식점이라고 하기엔 우아하기까지 했던 ‘장미분식’이 더 이상 D시에 없음을 알고 나는 진정으로 섭섭했다.
장미분식에는 AR3a라 불리는 오래된 스피커가 누워 있었다. 눈높이 정도에 두 개의 선반이 꽤 넓은 거리를 유지한 채 달려있었고 그 선반 위에 고풍스런 스피커가 왼쪽 오른쪽 나란히 가로로 놓여있었다. 고풍스럽기는 했지만 스피커의 통이 칠이 벗겨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삼베로 만들어진 그릴도 참 예뻤다. 노르스름한 그 천 안쪽으로부터 달콤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늘 낮은 음량으로 음악을 틀어놓아서 나는 오므라이스를 먹다말고 띄엄띄엄 라벨의 콘체르토 같은 걸 들을 수 있었다. 아, 혹여 Y와 함께 그 AR3a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오므라이스 같은 걸 먹은 적은 없는 걸까, 나는 기억을 찾기 위해 애를 썼다.
나는 학교 앞으로 돌아왔다. 학교는 온통 공사 중이었다. 개발 중이라기 보단 폐허처럼 보였다. 동문 안쪽부터 땅을 고르는 작업을 하고 있었고 체대 앞에는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인문대 쪽에도 짓다 만 건물이 보였다. 학교의 건물들을 뒤덮은 넝쿨은 그대로였다. 넝쿨은 그대로였지만 넝쿨을 바라보는 나는 다른 사람이었다. 나는 과거 그 넝쿨에서 받던 느낌을 다시 느낄 수 없었다.
나는 인문대 건물로 들어섰다. 방학이어서인지 썰렁했다. 1층 로비의 게시판 앞에는 컴퓨터 다섯 대가 나란히 설치되어 있었다. 그 가운데 학생 한 명이 앉아있었다. 낯선 통유리 너머로 교무과가 들여다보였다. 3층의 복사실에도 가 보았다. 그 복사실 앞에서 서른 살이 되기 전에 죽자며 그를 꼬드겼던 한 아이가 생각났다. 그 아이는 그때 ‘논리철학논고’를 들고 복사실 앞에 서 있었다. 물론 그 아이는 Y가 아니었다. 내가 여태껏 잘 살아있듯 그 아이도 죽지 못했다는 것을 나는 간간히 들리는 소문으로 알고 있다.
인문대를 빠져나왔다. P에게서 받아든 Y의 주소가 내 손가락 틈에 있었다. D시에 살면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동네는 바람에 나부꼈다. 나는 Y의 학적부를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미루고 싶어 한 것인지도 몰랐다. 어차피 모든 것은 사라지고 없을 테니까, 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학생회관을 올려다보았다. 그 음악 감상실! 크고 볼품없는 스피커가 설치돼 있었던 그 음악 감상실은 아직도 여전한 것일까. 나는 2층으로 올라갔다. 두 개의 출입문은 모두 잠겨 있었다. 여기서 내가 신청한 곡들은 무엇이었을까, 모차르트가 많았을 테지. 나는 이른바 모차르트 사건을 떠올렸다.
날씨는 화창했고 덕분에 그날 저녁은 봄날치고는 제법 훈훈했다. 바로 초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던 건데, 내게 있어 그 무렵의 저녁 바람은 세 개비의 줄담배보다 더 가슴을 부풀게 하는 그런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동아리방에 앉아 브루흐의 협주곡을 듣고 있었다. 가방과 책은 도서관 열람실에 둔 채였다. 동아리 신입생 하나가 동아리방으로 들어왔다. 나와 내 동기생 둘이 동시에 돌아보았다. 프레시우먼이 나를 향해 빛나게 웃었다. 손에는 캔커피 하나를 쥐고 있었다. 나는 별반 감정이 동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동아리에 가입할 때부터 눈여겨보았지만 가슴이 두근대긴 해도 오르지 못할 나무라고 미리부터 단념하고 있던 터였다. 멈칫, 그녀가 내게 다가왔다.
“선배님 여기 계셨네요?”
“…… 응?”
학과사무실, 인문대 도서관, 중앙도서관 열람실까지 나를 찾기 위해 돌아다녔다고, 그게 커피를 전해주기 위해서였다고 그녀가 말하고 있었지만 나는 마냥 머릿속이 하얘지고 말았다. 한참을 주저하며 이상한 표정으로 웃고 있던 내가, 결국 내뱉은 말은 ‘왜?’였다.
“그냥요.”
이쯤 되니 두 친구는 밖으로 나갔다. 귀여운 녀석들!
나는 그녀와 사귀기 시작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헤어지고 말았다. 그 아이의 바닷가 고향으로 찾아가 실연을 거듭 확인하고 돌아오는 시외버스에서 나는 클라라 하스킬을 떠올렸다.
그날 나는 D시의 동쪽 터미널에 내려 고모댁으로 들어가지 않고 시가지에 있는 레코드가게로 향했다. 나는 모차르트 협주곡 20번과 24번이 함께 수록된 하스킬의 레코드, 그리고 그뤼미오와 함께한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 그렇게 두 장의 LP를 샀다. 나는 그로부터 거의 보름동안을 그 음악들만 들어댔다. 누운 채로였다. LP를 뒤집고 바늘을 올려놓기 위해 잠시 침대에서 일어나곤 했을 뿐이었다.
나를 위로하기 위해 술자리가 열렸다. 내가 주점에서 실려 나갈 때 언뜻 본 기억으로는 빈 소주병들이 테이블의 반을 채우고 있었다. 노천강당으로 옮겨진 뒤에도 나는 몇 병의 술을 더 마셨다. 다음 날 정오 무렵, 후배의 자취방에서 깨어나 위액까지 게워 낸 나는 다시 술 생각이 났다.
내가 시원한 맥주를 들이켜고 있으려니 친구들이 찾아왔다. 모두들 낄낄 웃어대고 있었다. 그들이 전한 바로는, 전날 취한 내가 ‘내가 바로 모차르트다, 너희들이 내 음악을 알아?’라고 선후배를 막론하고 무차별 공격을 퍼붓고서는 ‘모차르트 음악의 본질은 비애(悲哀)!’라고 일갈하고선 잠들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날 저녁 무참하게도 모차르트가 환생한 것이었다. 그때는 이미 여름의 한 가운데가 되어 있었다. 나는 모차르트를 가슴에 품은 채 그해의 가을을 맞았다.
그때 그 아이의 이름은 은영. Y의 이름과 한 개의 글자가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