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렌 굴드 이야기(2/3)

단편소설 연재

by 현진현

4

그곳은 누군가를 위한 연습실인지도 몰랐다. 퍼뜩 그런 생각이 스쳤다.

피아노는 광목으로 덮여있었다. 먼지가 켜켜이 쌓여있긴 했지만 광목의 실루엣은 인상적이었고 나는 그것이 틀림없는 콘서트용 그랜드피아노임을 기억해냈다. 피아노는 동쪽의 창을 등지고 있었는데 피아노와 창 사이에는 낡은 나무의자가 하나 놓여있었다. 거리의 가로등이 눅눅한 오렌지 빛으로 하얀 광목을 비추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천을 벗겨냈다. 그것은 스타인웨이였다.


검게 빛났다. 자욱하게 먼지가 날렸지만 나는 그것이 스스럼없이 빛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언지 알 수 없는 거대한 존재와 마주친 느낌이 들었다. 발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나는 떨고 있었을 것이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피아노가 빛나는 바람에 섣불리 손을 댈 수가 없었다. 나는 그만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시간이 흘렀다. 얼마나 흘렀는지 어림잡을 수 없었다. 껌벅대던 가로등이 꺼져버렸고, 가로등 뒤로 낡은 네온사인들이 색 바랜 그림자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나는 왠지 을씨년스러워 라이터를 켠 채 방을 둘러보았다. 라이터를 껐다 켜기를 몇 차례 반복하는 사이 사물들이 서서히 제 모습으로 눈에 들어왔다. 천장에는 전구를 떼어낸 흔적이 남아있었고 그 흔적 옆으로 전선 같은 것들이 흩뿌려져 있었다. 그곳은 제법 넓은 곳이었다. 콘서트용 피아노 한 대가 있고도 텅 빈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까.

북쪽 벽에는 10호 크기의 유화 한 점이 액자도 없이 캔버스 그대로 걸려 있었다. 그림은 온통 흰색 물감으로 덮여 있었다. 추상화 같았지만 가까이 다가갔을 땐 함박눈이 내린 작은 마을을 볼 수 있었다. 마을의 집들은 눈에 덮여있고 오직 근경의 굴뚝 하나가 치솟아 있었다. 그 굴뚝이 작은 마을을 이국적인 느낌으로 만들어 내고 있었다.

동쪽의 창은 그 방의 유일한 창이었다. 오래된 교회에나 있을 법한 모양새를 지닌 쇠로 만든 아주 작은 창이었다. 그 창의 창틀 역시 그 방의 문에 달린 장석처럼 심하게 녹이 쓸어 손이 닿기만 해도 시큼한 느낌이 들었다. 얇긴 했지만 유리는 멀쩡했다. 손잡이를 젖혀서 밀어 올렸더니 훈훈한 바람이 흘러 들어왔다. 틀에서 벗겨진 페인트 조각이 툭 툭 떨어졌다. 창밖 아래로 쓰레기 더미가 쌓인 좁은 골목이 내려다보였다.

나는 창문을 고정시킨 후 가만히 선 채 피아노를 쳐다보았다. 피아노의 갑작스런 출현에 대해 곱씹어보려 했지만 그것은 쉽지 않았다. 피아노는, 다만 아름다웠다. 나는 피아노로 다가가 건반덮개를 열어 보려 했다. 하지만 손을 대는 순간, 그 경외감이란 ……. 무언가 내 머리부터, 어깨를, 팔을, 손목을, 손가락의 끝을 짓누르는 것만 같은 감정에 사로잡혔다. 나는 그 방을 나오고 말았다.

이튿날 이른 아침, 그 방에는 작은 창으로 들어온 햇살이 피아노의 번쩍이는 검정빛에 휘둘려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나는 찬찬히 피아노를 살펴보았다. 피아노는 꽤 오랫동안 방치된 듯 했다. 곰팡이 같은 것들이 피아노의 다리며 발에 쓸어있었다. 하지만 50년대에 생산된 피아노치고는 번듯한 편이었다. 피아노의 명판에는 모델명이 선명했다. CD318이었다. 문득 굴드의 피아노가 떠올랐다. 하지만 굴드의 318은 -제작번호가 174번이었던 그 318은- 1957년, 연주회를 마치고 돌아오던 중 트럭에서 떨어져 망가져버렸다는 사실이 겹쳐 떠올랐다. 나는 준비해간 수건으로 피아노의 건반덮개를 닦았다. 그리고 살며시 덮개를 들어 올렸다. 여든 여덟 개의 건반이 눈앞에 펼쳐졌다. 건반은 티 없이 깨끗했다. 조심스럽게 건반 하나를 오른쪽 엄지로 눌러보았다. C음이 높은 천장을 돌아 넓은 방을 휘감았다.

내친김에 나는 나무의자에 앉았다. 의자는 삐걱대고 있었다. 나는 평균율(The Well-tempered Clavier)의 유명한 프렐류드를 치기 시작했다. 음계가 삐걱대고 있었다. 엉망이었다. 피아노는 조율이 안 되어 있었고, 내 손가락들은 너무나 굳어버려서 음에 맞는 건반을 누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손의 기억을 빌어, 막 배우기 시작한 걸음마처럼 한 음씩 내딛어 평균율의 제1곡을 푸가(Fuga)까지 연주하고 말았다. 아름다운 소리였지만 스타인웨이답지 않은 무거운 음색이었다. 나는 다시 스카를라티의 짧은 소나타를 연주해보았다. 스타인웨이는 조금씩 무거움을 덜어내며 빛나는 소리로 바뀌어갔다. 아침 해가 구름에 가린 것인지 온 방안이 석양처럼 붉어졌다. 보면대에 비친 태양이 눈에 부실 듯 말 듯 시야를 괴롭히는 바람에 나는 그만 눈을 감아버렸다.

나는 그제야 그 스타인웨이의 건반이 마치 굴드의 318처럼 아주 가볍게 세팅되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나는 굴드처럼 어깨를 구부리고 팔은 들어 올린 채 건반을 두드려 보았다. 황홀했다. 손가락 끝이 닿자마자 건반은 가볍게 해머를 움직였고 해머는 현을 내려쳤다. 연주를 할수록 피아노의 기계적인 부분들이 점점 부드러워졌다. 페달도 문제없었다. 현 하나가 끊어져 있었지만 그다지 대수롭지 않았다. 그 방은 왠지 슈만과 잘 어울릴 것처럼 보였지만, 나는 다시 바흐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5

내 눈이 악보를 읽으면 음의 가치가 머릿속으로 들어간다. 뇌는 다시 내 양손으로 음가를 옮겨낸다. 낮은 성부와 높은 성부, 내 두 손은 명징한 소리를 기도하며 건반을 누른다. 해머가 현을 때린다. 현의 떨림은 공기에 파장을 일으킨다. 아름다운 주파수들이 내 귀를 통해 다시 머릿속으로 들어간다. 그것은 다시 나의 몸과 마음을 자극한다. 내 마음과 내 머리와 내 손들은 서로를 잘 알고 있다. 공기 속으로 음들은 자유롭게 순회하고 있다. 순회하는 음들은 모두 내 것이다.


그해 여름, 나는 해가 뜰 무렵부터 직원들이 출근하기 시작하는 열 시 무렵까지 그 방에 있곤 했다. 가끔은 늦은 밤도 좋았다. 하루는 콘서트 무대에 선 양 용기를 내어 피아노 몸체의 덮개를 열고 연주를 해 보았다. 페달을 밟고 코드를 누르는 순간 아주 큰 소리가 났지만 극장의 전력(前歷)으로 어느 정도 방음이 되고 있었던 탓이었을까, 그 방의 문을 두드리거나 열어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 번의 우스꽝스런 예외가 있긴 했다. 그 예외란, 늦은 밤 기획팀의 대리 하나가 여자 부장의 가슴을 움켜진 채 그 방의 문을 밀치며 뛰어든 일이었다. 어둡지 않았다면 그들은 바로 나를 알아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길거리의 네온 조명만 비치고 있던 그 방에서 그들은 서로의 몸을 만져가며 쉬지 않고 입맞춤을 나눌 뿐이었다. 의자에 앉아있던 나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라이터를 켜는 소리에 놀란 그들은 커다래진 눈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그런 다음, 그들은 아무 말 없이 취한 발걸음을 돌려 방을 나가고 말았다.

그 여름의 막바지 온 세상이 더위에 휩싸인 어느 날 ‘행복해진 나를 발견했다’라고 일기장에 써 넣었다. 스타인웨이라는 값비싸고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피아노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방에 들어서면 마치 수백 명의 관객이 들어찬 명성 높은 콘서트홀의 무대에 올라선 것만 같았다. 가끔 스타인웨이와 나란히 무대 위에 서서 청중의 표정을 여유롭게 돌아보는 나를 상상하곤 했다. 연주는 점차 완벽하게 진행되었다. 바흐를 연주하고 나면 청중은 어김없이 브라보를 외쳐댔다. 커튼콜을 받은 나는, 골드베르크변주곡의 아리아를 한 음, 또 한 음 느릿느릿 정성들여 연주하곤 했다. 그런 상상 속에서 나는 그 시절을 다시 되새기게 되었다. 나의 어린 피아니스트시절 말이다.



6

나는 아주 어린 나이에 피아노를 시작했고 비교적 어린 나이에 그만두었다. 나는 천재적인 피아니스트는 아니었다. 연습에 매진하는 쪽이었다.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한 연습 덕분인지 누구에게나 칭찬을 들었고 언론에도 오르내렸다. 그만 둘 무렵에는 국내 최고의 선생으로부터 레슨을 받으며 유학을 앞두고 있었다. 국내에 한정되긴 했지만 크고 작은 몇 개의 콩쿨에서 우승해 피아노 신동으로 불리기도 했다. 성공에 대한 확신 같은 것은 필요 없었다. 나는 콩쿨에 참여했던 다른 신동들과 달리 점점 더 피아노가 좋아지고 있었다.

나를 피아니스트로 만든 건 아버지의 레코드들이었다. 내가 피아노를 그만두기 직전까지도 아버지는 퇴근길에 중고레코드를 한아름 사오시곤 했다. 그 이름도 찬란한 아르투르 베네디티 미켈란젤리,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에밀 길렐스, 클라라 하스킬,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 글렌 굴드 ……, 모두 빛나는 연주를 들려주었지만 내가 여러 번 반복해서 들은 레코드는 대부분 굴드의 것들이었다. 유학이 결정되던 날엔, 어쩌면 굴드를 직접 만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잠을 설치기도 했다. 내가 굴드를 특히 좋아했던 건 아주 어릴 적 들었던 그의 연주를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어서인지도 몰랐다.

내가 막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할 무렵, 아버지는 이따금 서재의 책상머리에 놓인 카세트레코더로 음악을 들으셨다. 헨리 맨시니나 폴 모리아가 지휘하는 관현악곡들이 많았을 테지만, 한잔 하시는 날엔 어김없이 빛나는 피아노소리가 흘러나왔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굴드와 스타인웨이가 빚어내는 소리였다. 그때 이미 굴드만의 독특한 스타카토의 묘미에 익숙해져 버린 건지도 몰랐다. 아버지는 골드베르크변주곡의 스물다섯 번째 변주를 예닐곱 번씩 반복해서 듣곤 하셨다. 그 멜로디를 잊을 수 있을까.

아버지는 갑자기 돌아가셨다. 클리셰 같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불과 며칠이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내 방에 놓인 피아노와 거실에 있던 오디오에 빨간 딱지가 붙었다. 나는 집밖으로 나가고 싶었지만 그날은 레슨이 없는 날이었다. 하지만 그 다음날에도 나는 레슨을 받으러 가지 않았다. 레슨을 해주던 선생에게서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피아노가 없는 집은 좀 어색했지만 내가 갈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쫓기듯 이삿짐을 싸기 전까지 나는 어두운 방에 틀어박혀 나뒹구는 악보들을 넘겨볼 수 있을 뿐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피아노를 포기해야 했던 것은 물론이었고, 한동안 그 누구의 연주든 모든 피아노소리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니, 견딜 수가 없었다. 골목 어귀에서 흘러나오는 서투른 솜씨의 피아노소리를 듣는 것조차 힘겨운 때가 있었다. 피아노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게 된 건 스무 살이 넘어서였다. 지방의 학교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통학버스에서였다. 나이 지긋한 운전기사가 슈만을 들려주었다. 나는 눈시울을 붉히며 버스에서 마지막 학생이 내릴 때까지 미켈란젤리의 피아노소리를 들었다. 기사는 미켈란젤리의 팬이었나 보았다. 다음날에도, 또 그 다음날에도 기사는 미켈란젤리의 슈만과 드뷔시를 들려주었다. 며칠 뒤 나는 휴대용 CD플레이어와 굴드의 골드베르크변주곡 CD를 살 수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스무 살 남짓까지의 내게, 음악은 보이지 않는 뼈를 가진 물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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