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몸을 내맡기면 자유로웠고 몸을 움츠리면 두려웠다. 자유로움에도 두려움에도 얼마간의 중독성이 있었다. 바이킹이 그런 것임을 알게 되었지만 나는 불행하게도 그 여자아이를 다시 놓쳐버렸다. 그건 아무래도 그 아이의 이름을 알아버렸기 때문인 것 같다. 교복에 붙은 명찰은 실로 이름을 새겨놓고 있었다. 그래, 이름을 알아서였다. 그 아이를 놓쳐 버리고서도, 언제든 찾을 수 있고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알 수 없는 자신감이 들었던 것은. 그 이름은 흔해빠진 것이었고 설사 희귀했다 하더라도 이름으로 그 아이를 찾아내기란 불가능했다. 오히려 이름은 불필요한 것이었다.
그때 난, 기억 속의 한 여자아이를 만나 이름을 얻었지만 그 나머지를 영영 잃어버린 것이었다. 마치 지금 내가 가진 것이 필요치 않은 내 이름뿐인 것처럼.
우리는 그럭저럭 다시 주차장으로 모여들었다. 아이들의 표정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먼저 도착한 아이들이 반별로 모이기 무섭게 인원을 점검하고 버스로 올라타고 있었다. 해는 아직 떨어지지 않았지만 하늘빛은 바뀌고 있었다. 무얼까, 그때 내 마음을 움직인 것은.
벌써 시동을 걸고 있는 버스들, 그리고 연이어 막 부르릉대는 몇 대의 버스들. 버스가 시동이 걸리는 소리가 처연하게 들렸다. 나는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우연히 본, 정말 쳐다보기만 한 어떤 여자아이에 사로잡혀서 왜 그런 짓을 했는지 도무지 설명해낼 수가 없다.
“자, 타자!”
“선생님! 잠깐만요!”
나는 담임선생을 돌아 세웠다.
“저는 내일 내려가겠습니다.”
“뭐?”
선생은 나를 노려봤다. 나는 내일 내려가겠다고 다시 한 번 힘주어 말했다.
“이모님댁이 여기 과천입니다. …… 들렀다 가라고 하셔서요.”
담임선생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금세 다시 나를 노려보았다.
버스들은 출발하고 나는 남았다. 나는 터벅터벅 지하철역으로 가는 척 버스를 넘어다보며 걸었다. 버스들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얼른 놀이공원으로 다시 들어갔다.
나는 곧장 그 여자아이를 찾아 나섰다. 그 아이가 있을 만한 곳이 놀이공원인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아무 것도 알 수 없었다. 그 스카프가 보랏빛이었는지조차 분명치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내가 그 아이를 찾아볼 만한 곳은 놀이공원 밖에 없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때 무모한 오기에 사로잡혔다. 그 여자아이를 찾지 못하면 인생에서 실패하고 말 것이라는. 아니다, 인생의 실패가 문제가 아니라 인생에서 가진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는. 도대체, 도대체 왜 그런 공허하고도 맹목적인 생각을 한 것일까.
늦여름이어서인지 어둑어둑해져도 놀이공원은 문을 닫지 않았다. 막 배운 담배를 한 대 피우고서 나는 본격적으로 놀이공원 구석구석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그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기왕 시작한 것을 포기할 수는 없었고, 포기할 생각도 없었다. 나는 회전목마 앞에 멈춰 서서 쉼 없이 돌아가는 목마들 속에 혹 그 아이가 있을까 쳐다보기도 하고, 군데군데 주전부리들을 파는 작은 식당들이며 인형극을 하는 소극장까지 살펴보았다.
스카프를 맨 여자가 보이면 뒤따라가 얼굴을 확인하기도 했다. 불빛에 들어서면 그것은 보랏빛이 아니라 갈색이거나 연둣빛이었다. 도대체 보랏빛 스카프는 어디에 있었던 걸까. 집으로 돌아갔었던 걸까, 아니면 나와 가까운 곳에 있었던 것일까.
“안녕히 가세요!”
놀이공원은 결국 문을 닫고, 나는 느린 걸음으로 출구를 빠져나왔다. 안내하는 젊은 여자들이 안녕히 가라고 몇 번이나 떠밀듯 외치고 있었다.
그래도 괜찮겠지. 내 눈에 반짝인다고 다 금은 아니니까. 나는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릴없이 별을 찾았다.
여덟.
내 사업이 성공한 것은 참으로 우연이었다. 첫 번째 아내와 이혼하면서 나는 직장까지 그만두고 말았다. 의욕이 사라진 것, 뭐 그런 거였다. 건설회사를 그만 둔 내가 시작한 사업은 건설현장에 자재와 공구를 납품하는 일이었다. 대리점에서 떼다가 현장에 되파는, 말하자면 소매상인 셈이었다. 처음에는 쏠쏠할 정도였지 그렇게 많은 돈을 벌 줄은 몰랐다.
경기 탓도 있었지만 운이 따라주었다. 대학의 공대에서 일하고 있던 어릴 적의 친구가 학생들의 실험에 쓰이는 자재들을 내가 납품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때부터 사업은 커나갔다. 직원을 셋 뽑은 후부터는 말 그대로 건설경기가 하늘을 찔렀다. 통장 잔고에 돈이 쌓여갔다. 통장의 갯수가 더 늘어갔고 통장마다 돈이 넘쳤다.
하지만 욕심을 부린 것이 패착이었다. 미국산의 새로운 공구를 보는 순간 나는 그 공구를 우리 현장에 맞게 재개발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그리고는 설계며 샘플제작을 시작하고 공장 한 곳을 내 프로젝트에 끌어들였다. 그 공구를 양산하기까지 몇 년간 벌어놓은 돈을 몇 달 동안 모두 써버렸고, 그 공구를 유통시키기까지는 내 신용이 허락하는 모든 빚을 얻게 되었다. 내가 개발한 공구는 현장에서 환영받았지만 건설사들은 내가 만든 공구를 사들이지 않았다.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충분히 느꼈을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시점이었다.
공장은 아무런 손해를 입지 않았고 개발자인 내가 모든 손해를 떠안았다. 나는, 지방이긴 했지만 정원이 딸린 집을 가진 사업가에서 당장 저녁밥 한 끼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월세 단칸방 신세로 전락했다. 그런 나를 구원한 것은 두 번째 아내였다.
아홉.
두 번째 아내는 가끔 나더러 바보라고 놀렸다. 내가 왜 바보냐고 되물을 때마다 아내는 빙긋 웃기만 했다. 아내는 그렇게 웃을 때 정말 예뻤다. 뽀얀 살결에 새카만 머리칼만으로도 예뻤다. 얼마나 예뻤던지 백화점이라도 나가면 스쳐 지나간 젊은 치들이 다시 돌아다볼 정도였다. 아내는 그렇게 예뻤지만 키만큼은 작았다. 키래 보아야 내 어깨 높이 정도였다. 아내는 내 어깨에다 그 칠흑 같은 머리칼을 가져다대곤 했다. 누워서도 마찬가지였다. 때때로 아내의 배게는 내 베게보다 아래쪽에 놓였다. 아니, 그건 어느 날 갑자기였던가.
아내는 언젠가부터 내 시선을 피했다. 피한 시선이었지만 내려다보는 아내의 정수리는 시리게 아름다웠다. 하긴 아주 어린 아내였으니까.
내가 아내를 처음 만난 곳은 극장 안이었다. 영화는 정말이지 마약과도 같았다. 약간의 돈이라도 생기면 나는 영화를 보러갔다. 나는 만들어진 현실을 통해 위로받고 진짜의 현실을 잊을 수가 있었다. 그날의 마지막 회였고 그날따라 극장에는 몇 명의 관객밖에 없었다. 영화는 정말이지 재미있었는데도 말이다. 아내와 나는 그 많은 좌석들 중에서도 티켓이 배정한 좌석을 지켜 나란히 앉아있었다. 우리는 몇 마디 대화를 나누다 늦은 밤 차를 마시게 되었고, 다음날 다른 영화를 함께 보았다.
아내는 손가락이 병든 실패한 피아니스트였고 나는 욕심 때문에 실패한 멍청한 사업가였다. 우리는 몇 달 뒤 처가의 완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지 않은 어느 고요한 일요일이었다. 아침부터 아내는 부산스러웠다. 그것이 유별나게 보일 것이 싫었던지 아내는 쇼팽을 틀어놓았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아내는 더 도드라져 보였다. 쇼팽의 발라드를 들으며 아내는 김밥을 싸고 유부를 손질해 초밥을 만들었다. 결혼 후로 그때껏 아내가 김밥을 싸는 일은 아주 드물었다. 아이의 소풍날이 아니면 우리 집에서 볼 수 없던 김밥이었다. 내가 없는 집에서 김밥을 쌌는지는 잘 모르겠다. 김밥은 내가 싫어했으니까.
비릿한 김 냄새, 시큼한 야채 냄새, 참기름 냄새 같은 것들은 어머니를 염습하던 순간들을 떠올리게 했다. 내 어머니는 김밥을 싸고 그것을 내다팔아 나를 키웠다. 내게 김밥은 밥이었으되 배부른 밥이 아니었다.
아내는 김밥과 유부초밥을 고운 빛깔의 찬합에 차곡차곡 넣고 쌓았다. 쇼팽의 발라드는 끝이 나고 스크리아빈의 연습곡이 흘러나왔다. 아내는 찬합을 손잡이가 달린 정방형 가방에 넣고서는 한참 동안 화장대 앞에 앉아있었다. 거울 속의 아내는 화장하는 내내 예뻤다. 화장을 끝낸 아내는 하얀 색 반코트를 입고 산홋빛 구두를 꺼내 신었다. 그리고 집을 나섰다. 친구들과 모임이 있다고 했다. 아내는 한겨울에 소풍을 나갔다.
그 얼마 전부터 아내는 한동안 듣지 않던 음악을 다시 듣기 시작했다. 내가 옆에 있어도 음악을 들었다. 그래도 나는 라벨의 치근대는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저 여자와 함께 살 수 있다는 건 축복받은 일이라고 기뻐할 수 있었다. 치간느는 오묘할 뿐이었고 파반느는 내 마음을 적적하게 만들어 아내를 더 아름답게 보이도록 했을 뿐이었다.
모르겠다. 이상하게도 모조리 텅 빈 시간들이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부유한 아내는 돈을 문제 삼지 않았다. 다른 것도 문제 삼지 않았다. 나에 관한 그 어떤 것도 문제 삼지 않기 시작했다. 나는 아내가 나를 문제 삼지 않는 것을 견뎌내기가 쉽지 않아 아내를 문제 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아내더러 떠나달라고 요구했고 아내는 급기야 다른 남자의 집으로 영원히 가버리고 말았다.
열.
몇 달 전 옛 서울역사에서는 한 팝아티스트의 회고전이 열렸다. 나는 말 그대로 거지꼴을 하고서는 그 컬러풀한 예술품들을 빤히 쳐다보는 것으로 며칠을 보냈다. 예술이라고 하는 것들은 매양 한 가지였다. 그것은 내가 작가도 아니고 예술애호가도 아니지만 쉽게 알 수 있는 것이었다. 모든 작품들은 과거의 기억을 머리 밖으로 끄집어 낸 다음 재량껏 간추렸다. 그리고 간추린 것들을 다시 타인의 머릿속으로 넣어주고자 했다.
작품들을 보고 있으려니 공구를 개발할 때 보았던 도면의 수많은 숫자 가운데서도 모서리의 작은 숫자가 머릿속에 떠오르기도 하고, 내 생일에 아내가 불러준 가곡의 노랫말까지 고스란히 시간을 되짚어 오기도 했다. 나는 그 기억들에 몸서리치게 놀랐고, 그런 기억이 떠오르는 순간들이 또 하나의 놀라운 기억으로 자리매김할 것만 같은 환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보랏빛 스카프와 더불어 그날의 롤러코스터와 바이킹이, 언제인가 그랬던 것처럼 또 불쑥 떠오른 것은 그 회고전을 보고난 며칠 후였다.
열하나.
그날 그렇게 놀이공원을 나온 나는 고향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역으로 향했다. 가득해진 아쉬움이 차가워진 저녁바람과 뒤범벅이 돼 역전의 분주한 광장을 횡행했다. 나는 역을, 나를 어른으로 만들어주는 통과의례의 장소처럼 느끼며 역 광장을 가로질렀다.
역사(驛舍)로 들어간 나는 기차표를 산 다음 밖으로 나왔다. 역 주변의 허름한 식당으로 들어가 냄비에 몇 가닥 김치가 눌어붙은 김치찌개를 먹었다. 교복상의에 밥풀이 몇 개 달라붙고 하얀 색 반팔셔츠에 김칫국물이 튀었을지 몰랐다. 정신없이 먹었다. 밥을 몇 그릇 먹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식당을 나오면서 교복 윗도리를 벗어 겨드랑이 사이에 끼우고 반팔셔츠의 소매를 접어 올렸다. 그리고는 다시 역사 앞의 광장에 이르러 담배를 피워 물었다. 아이들 몇몇이 나를 쳐다보는 것 말고는 쳐다보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다시 역사 안으로 들어갔다. 시계를 한번 쳐다보고서는 계단을 내려가 고향행 기차를 탔다. 그때 내 옆자리에 앉았던 어떤 여자가 입은 코트의 빨간 색이 아직까지 생생하다.
열둘.
지난해 가을이었다. 하늘이 특별하게 높은 날이었다. 나는 서울역 앞 거리에서 아내를 보았다. 아내는 코트자락을 펄럭이며 택시에서 내렸다. 나는 전철역 계단 아래 숨어서 아내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갑작스런 일이었지만 나는 그런대로 잘 대처해서 난처한 상황을 피할 수 있었다.
아내는 고속열차가 출발하는 역사로 걸어 들어갔다. 그런데 아내가 유리문 안으로 자취를 감추는 순간, 지독히도 아내의 얼굴이 보고 싶어졌다. 나는 달렸다. 달려지지 않았지만 달렸다. 마구 달렸다. 그날 놀이공원 주차장에서 아이들이 달리던 것처럼 나도 달렸다. 원 없이 달렸다. 구름도 달렸다. 내가 달리면 사람들도 달리는 것 같았다.
역사 안에 들어갔지만 아내는 보이지 않았다. 이리저리 마구 달려보아도 아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 누구도 손을 들거나 아는 척을 해주지 않았다. 나는 고꾸라졌다. 아내는 역사 안의 어느 기둥 뒤에 숨어서 나를 엿보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잘 지내? …… 잘 지내냐구 ……”
나긋나긋하게 물어봤으니 그 시끄러운 곳에서 아무도 들을 수 없었다. 그래도 나는 다시 물었다. 잘 지내? 아이도 잘 지내?
무엇이 그리 아쉬웠는지, 그 무엇도 처음부터 내 것인 건 없었는데. 무엇인가 잃고 잃어서 그래서 슬퍼지면 …… 그래, 슬플 때마다 보랏빛 스카프가 생각난다. 하지만 그 아이와의 만남은 본래 내 것이 아니었다. 세상 그 무엇도 처음부터 내 것인 건 없으니까. 삶이란 누구나 잘 알고 있듯 혼자 와서 혼자 돌아가는 것이니까. 그런데 그날 잠깐 마주쳤을 뿐인데 ……, 슬플 때마다 그 아이 생각이 난다. 그 보랏빛 스카프가 오늘도 생각이 난다.
에필로그
날이 또 저문다. 밤은 또 추울 것이다. 나는 지하로 내려가기 위해 광장을 건넌다. 광장 저쯤에 보랏빛 스카프를 맨 여자 하나가 잰 걸음으로 다가온다. 여자는 나를 못 본 척 스쳐 지나간다. 나는 여자의 뒤를 밟는다.
여자는 역사로 들어가고 다시 계단을 내려가 출발을 앞 둔 열차 앞에 선다. 나는 달려가 여자를 확인한다. 여자는 객차에 올라선다. 나는 객차 밖에서 서성대다 보랏빛 스카프의 움직임을 좇아 여자의 좌석을 확인한다. 차창 안으로 7호차 가운데쯤 앉아있는 여자가 보인다. 눈부신 스카프에 홀려 객차의 창으로 다가서려 할 때, 무엇인가 나를 잡아끈다. 내 시선은 8호차를 향한다. 8호차의 차창 안에는, 교복을 입은 내가 앉아있다.
저 앞에 놀이공원의 주차장이 보인다. 하늘의 구름이 그날 그 자리에서 나를 내려다 본다. 구름은 내 주위를 맴도는 것만 같다. 아니, 나도 잘 모르겠다. 구름 따위 몇 번 본 적도 없으니까. 나는, 그날의 구름이 한낱 스카프보다 더 위대한 기억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걸음을 재촉한다. 나는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