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연재
프롤로그
그날은 특별했다. 모든 것이 특별한 날이었다. 누구든 그런 날이 있을 수 있다. 인생을 좌우할 스승을 만났다거나 결혼을 했다거나 또 그런 것에 버금가는 특기할 만한 일이 벌어진 날이라기보다는 왠지 모르게 화사한 날이어서 곰곰 새겨보면 엄마 뱃속에서 느꼈던 것만 같은 설렘으로 기억되는, 그런 날 말이다.
내 인생은 특별했던 그날로 인해 지금처럼 펼쳐진 것인지 모른다. 아니라면 그 이후의 삶으로 인해 그날의 특별했던 기억이 온전히 보존된 것이든가. 인생에는 그런 식으로 특별한 시간들, 적어도 특별하게 보이는 순간들이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지만 나는 그날을 잊지 못한다. 어찌 보면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은 날인데 말이다. 정말 아무 것도.
하나.
“앞으로 나란히! …… 앞으로 나란히!”
아이들은 벌써 텅 빈 주차장을 메워갔다. 아이들은 마구 웃어댔다. 그리고 지껄였다. 쉴 새 없이 지껄여댔다. 어디선가 자지러질 듯한 웃음소리가 들려왔고 교복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도 싶었다. 행복하다는 표정을 짓고서들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쫓는 녀석과 쫓기는 녀석 모두 즐거웠다. 다시 쫓기던 녀석이 쫓고, 쫓던 녀석이 쫓기고 ……. 날도 좋았고 시간도 좋았다. 아이들이 살아온 만큼의 햇수도 아름다웠고 선생님들도 그리 늙지 않았다. 선생님들은 화내지 않았고 뛰어다니지도 않았다. 몇몇 선생님들이 넉넉한 목소리를 질러댔지만 아이들은 아랑곳없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선생님들은 선생님들대로 모두 좋아보였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다 좋았다.
그제야 마지막으로 도착한 아이들이 버스에서 내리고 있었다. 나는 주차장 화단가에 주저앉아 양호선생님과 껌을 나눠씹고 있었다. 껌은 씹자마자 단물이 너무 진해 숨이 막혔지만 또 금세 단물이 빠져 씹기에 부담스러운 이물이 되고 말았다. 껌이란 그런 것이고 세상도 그런 것이겠지, 나는 단물이 빠지고 딱딱해진 껌을 내뱉었다.
우리는 그날 오전 경복궁을 둘러보았다. 한적한 경복궁은 도저히 왕의 집 같지가 않았다. 나는 그곳에서 세 쌍의 신혼부부를 보았다. 그들은 웃음을 한껏 머금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경복궁을 지키는 군관의 복장과 신부의 웨딩드레스가 묘하게 어울렸다.
경복궁을 나온 우리들은 버스 안에서 남대문을 보았고, 서울역 근처에서 맛은 별로지만 양만큼은 넉넉한 점심을 먹었다. 정신없이 먹은 밥이 소화가 될 즈음 우리는 놀이공원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장은 그날 그곳에 내린 수많은 아이들의 미래를 합친 것만큼이나 넓었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드높은 하늘에는 말 그대로 둥둥, 구름이 떠다녔다. 아이들은 구름을 눈여겨보지 않았지만 구름은 우리를 내려다보듯 느릿느릿 흘러갔다. 갑자기 선생님 한 분이 확성기로 다그쳤지만 아이들은 연방 즐겁게 뛰어다녔다. 구름은 구름대로 즐거웠을 것이다. 나는 열일곱 살이었다. 아이들도 다 그만했다. 고교 2학년 수학여행, 페이드아웃.
둘.
빛이 쨍했다. 플라타너스들이 연초록을 뽐내며 넘실댔다. 입 속 씹던 껌은 늘 그렇듯 쉽게 단물이 빠졌다. 나는 누워서 껌을 씹었다. 지나던 사람들이 힐끗 쳐다보았다. 껌은 씹을수록 오줌 맛이 났다. 똥냄새도 났다. 나는 물을 마셨다. 소주병에 받아둔 물을 머리맡에 두고서 아주 조금씩, 한 모금씩 마셨다.
부끄럽진 않았지만 슬프기는 했다. 씹히지 않는 슬픔들을 곱씹다 보면 해가 졌다. 밤이 되면 사람들은 내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굴어 주었다. 그러면 나는 잠깐씩 쾌활해지곤 했다.
낮이건 밤이건 나는 같은 모습으로 껌을 씹었다. 껌이 돌처럼 굳어져서 뱉어내고 나면 기분이 나빠졌다. 속이 아팠다. 그럴 때도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고는 하늘을 쳐다봤다. 하늘을 쳐다보고 있으면 아주 가끔 셔터문을 내리는 빵집에서 한두 봉지의 빵을 내 앞에 놓아주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소주병에 담긴 물 뿐이었다.
“저러니까, 돈 주면 안 된다니까!”
지나가던 여자는 ‘니까’를 연발했다. 남자의 팔짱을 끼고 지나는 여자였다. 여자는 속삭이듯 말했지만 ‘니까’의 칼 진 발음은 내 귀에 고스란히 들려왔다. 팔짱을 끼고 가던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다시 한 모금 더, 물을 마셨다.
내가 드러누운 벤치 바로 앞에 있는 허름한 레코드가게의 주인은 나를 보고 비실비실 웃고는 했다. 기분 좋은 웃음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는 내가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것임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느 날 그는 내게 다가와 나를 위해 연주하는 기분으로 음악을 틀어놓는다고 말을 건네 왔다. 나와 나란히 벤치에 앉은 그는 내게 담배를 물려주고서 자신도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 후로 그가 담배를 권하거나 농담을 해오는 일은 더 이상 없었다.
그가 즐겨 연주하는 레코드는 존 레논이었다.
신은 우리가 고통을 가늠하기 위한 개념일 뿐.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신은 우리가 고통을 가늠하기 위한 개념일 뿐. 난 마법을 믿지 않아. 난 주역을 믿지 않아. 난 성서를 믿지 않아. 난 타로를 믿지 않아. 난 히틀러를 믿지 않아. 난 예수를 믿지 않아. 난 케네디를 믿지 않아. 난 부처를 믿지 않아. 난 진언을 믿지 않아. 난 바가바드기타를 믿지 않아. 난 요가를 믿지 않아. 난 왕들을 믿지 않아. 난 엘비스 프레슬리를 믿지 않아. 난 밥 딜런을 믿지 않아. 난 비틀즈를 믿지 않아. 난 오직 나를 믿을 뿐.
셋.
우리는 우르르 놀이공원 안으로 몰려 들어갔다. 알록달록한 유니폼을 차려입은 여자들이 손을 흔들며 반겨주었다. 놀이공원 안에는 직장인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몇 있었다. 넥타이를 매거나 투피스를 차려입은 그들은 제각각 놀이기구를 타고 놀았다. 평일 놀이공원에 온 직장인이라니 별나게 보였다.
우리에게는 어떤 놀이기구든 골라 탈 수 있는 티켓 세 장이 주어졌다. 몇몇 아이들은 아무런 고민 없이 롤러코스터로 몰려갔다. 나는 그 아이들을 따라가 출발대 아래 벤치에서 아이들이 타는 것을 지켜보았다. 정말이지 아찔해보였다. 나는 그때껏 단 한번도 롤러코스터를 타본 적이 없었다.
롤러코스터를 타고 내려온 아이들이 구경만 하며 앉아있는 내가 못마땅했던지 내 손을 잡아끌었다. 여러 명이 함께 달려드는 바람에 나는 그들을 이겨내지 못했다. 아이들은 나를 롤러코스터보단 좀 덜하지만 역시나 레일을 따라 공중에 차대를 휘감는 놀이기구에 태웠다. 나는 놀이기구에 앉자마자 눈을 감았다. 내가 탄 기구가 속도를 내기 위해 천천히 가장 높은 지점으로 이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무시무시했다. 땀이 나는 손은 물론이고 무릎에도 힘을 주었다. 거꾸로 떨어져 내릴 것만 같았다. 몇 분 후 기구가 멈춰 설 때까지 나는 눈을 뜨지 못했다.
“생각보다 재밌네.”
재밌기는커녕 두렵고 무서웠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고 말았다. 아이들은 의심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다시 바이킹으로 몰려갔다. 한 아이가 월미도 바이킹에서는 삐걱대는 소리가 난다고 말했다. 다른 아이가 그 말을 받아, 아마도 곧 그 바이킹배가 떨어져 내릴 거라고 말했다. 또 다른 아이는 월미도는 인천 부근에 있는 섬 아닌 섬이라고 말해주기도 했다. 바이킹조차 무서워하던 나였지만 더 아찔한 놀이기구를 타고나서는 바이킹이 우스워보였다. 나는 바이킹을 즐길 수 있다고 믿었다.
타기에 만만하기 때문인지 바이킹은 놀이기구 중 인기가 제일 많았다. 아이들은 바이킹 둘레로 줄을 지어 늘어섰다. 바이킹에는 여자아이들도 제법 줄을 섰다. 재잘거리는 아이들 머리 위로 내가 탔던 놀이기구가 지나갔다. 나는 여자아이들에게 떠벌였다.
“저거 정말 재밌더라.”
어지럽기는커녕 멀쩡해지다 못해 대범해지는 평일 한낮의 놀이공원이었다.
넷.
모텔에 들이닥쳐 숨찬 걸음이지만 단숨에 3층으로 뛰어올라간 것까진 좋았다. 경찰관 한 명과 내가 한동안 문 밖에 서 있었지만 아무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다시 한참을 두드렸다. 아이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모텔의 주인이 열쇠꾸러미를 흔들어대며 느직이 걸어 올라왔다. 307이라 적힌 쇠문은 간단하게 열렸다. 그리고 더 쉽게 그 다음 문이 열렸다.
침대 귀퉁이에 걸터앉은 여자는 막 옷을 입은 티가 역력하게 나는 모습이었지만 표정만큼은 당당해 보였다. 백 킬로그램도 넘어 보이는 사내는 여자를 보호하겠다는 듯 당당하게 여자 옆에 서 있었다.
모텔방은 왠지 익숙하게 느껴졌다. 날 노려보던 사내는 침대에 앉아버렸다. 여자는 미적미적 움직이더니 사내 옆에 나란히 붙어 앉았다. 서로를 의지하겠다는 표시였을까, 비쭉이 나온 속옷이며 부풀어 오른 입술과 머리칼은 어쩔 수 없었지만 둘의 자세는 그럴 듯했다.
사내는 계속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얼마 동안 서로를 쳐다보았다. 순간 뜨거운 살 냄새가 훅, 정말 그렇게 들이쳤다. 그런데 남자, 그 남자가 익숙했고 여자가 외려 낯설었다. 여자는 내 아내였고 남자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아이가 웅얼거리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환청인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현관문에 직각으로 붙어있는 화장실문을 두드리는 소리 …… 나는 뒷걸음질을 쳐 툭 하고, 화장실문을 밀었다.
아이였다. 독한 왁스냄새와 싸구려 비누냄새, 그리고 정액 냄새 같은 것들이 마구 뒤섞인 냄새 속에서 아이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세면대에는 비누가 풀린 물이 가득했고, 배를 만들다 만 종잇조각들이 둥둥 떠 있었다. 아이는 남의 아이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아이는 네 살배기 내 아들이었다.
“야, 이 병신아! 문도 못 열어? 네 살이나 처먹어가지고!”
내가 왜 그렇게 소리쳤는지 지금까지도 잘 모르겠다. 아이는 자지러질듯 울기 시작했고 세면대의 수돗물은 아주 조금씩 흘러넘치고 있었다.
경찰이 아내와 아내의 정부에게 임의동행을 요구하고 있었다. 모텔 창 너머로 하얀 눈들이 뚝 뚝 떨어졌다. 폭설의 시작이었다. 나는 아이를 안고 밖으로 걸어 나왔다. 오후 2시쯤이었다. 나는 눈부신 눈의 빛깔을 쳐다보면서 아내의 외도를 쉽게 이해했고 쉬운 이해만큼이나 쉽게 인정하는 느낌도 들었다.
다섯.
나는 가운데 기준으로 두 번째 줄에 앉았다. 첫 번째 줄, 그러니까 가운데가 덜 무섭다고들 했는데 거기 앉기는 좀 그랬던지, 나는 가운데 마주 보는 두 줄의 바로 뒷줄에 앉았던 것이다. 나는 오묘한 바이킹의, 약간은 절묘한 그 자리에서 건너편 맨 뒷줄의 한 여자아이를 보았다. 그 여자아이는 보랏빛 스카프를 매고 있었다.
대학생이었을까 고등학생이었을까, 고등학생으로도 보였고 그 이상으로도 보였다. 그런 것 따위는 나중에 생긴 관심일지 모른다. 나는 홀린 듯 그 여자아이에게 한눈에 반해버렸으니까. 모르겠다. 이런 표현이 타당한 지는.
구름이 잠시 태양을 가렸다. 바이킹 한쪽이 높이 떠올랐고, 그때 한줄기 바람이 불었나보았다. 보랏빛이 어른거려서 나는 그 빛깔에 시선의 초점을 겨누었다. 거기 그 여자아이가 있었다. 묶음 뒤에 삐져나온 스카프가 바람에 날리고 머리칼도 바람에 나부꼈다. 그리 길지도 않은 단발머리건만 바람을 탔다. 바이킹은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하며 바람을 갈랐다. 태양이 구름을 밀어냈다. 하늘 가운데에 보랏빛이 흔들렸고 지저분한 공원바닥에도 보랏빛이 춤을 추었다. 노르만의 항해에도 그런 눈부심이 있었을까. 나는 그때 아마도 그 아이의 실루엣만을 보았을 것이다. 그토록 아름다운 것을 뜯어보듯 볼 수는 없는 일이니까.
바이킹에서 내리면서 나는 그 여자아이가 고등학생일 거라는 확신을 가졌다. 차림새가 특별하긴 했지만 교복이 틀림없었다. 예술 고등학교나 다른 특화된 학교의 복장일 것이 분명했다. 단체가 아니었으니 나처럼 수학여행을 온 것은 아니었고, 학교에 가지 않고 놀이공원에 온 것일 터였다. 아니면 학교가 일찍 마쳤거나.
바이킹에서 내려서서 친구들과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 나는 그 여자아이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쾌활하게 웃으며 그 여자아이의 존재를 잊어버린 것처럼 굴었지만, 내 눈은 두리번두리번 그 아이를 찾고 있었다.
다른 놀이기구로 어울려 다니던 나는 바이킹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놀이기구 이용권 세 장 중 마지막 남은 한 장이었다. 내 앞에 다시 보랏빛 스카프가 어른거렸다. 몇 명쯤 앞일까, 그 여자아이가 내가 선 줄의 앞쪽에 서 있었다. 나는 다시 바이킹에 앉았고 다시 그 아이와 마주했다.
어여쁜 여자아이였다. 작은 얼굴에 눈이 컸다. 앞머리를 조금은 우스꽝스럽게 다듬었고 하관이 좁은 대신 어린 아이와 같은 입이었다. 무척이나 어리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보랏빛 스카프는 그 아이를 어른스럽게 만들고 있을 뿐이었다.
여섯.
살아왔던 순간순간의 특정한 기억들이 하나 둘, 하나 둘, 구령에 맞춰 머릿속을 돌아다니는 듯 했다. 그러다가 모든 기억들이 한꺼번에 머릿속을 덮쳐버리는 것만 같을 때도 있었다. 나는 그런 상태가 즐거운 것인지 괴로운 것인지 판단하지도 않았고 판단할 수도 없었다. 그저 떠올라오는 한 때의 색깔과 모습, 냄새, 그런 이미지들을 받아들였다. 말하자면 나는 즐거움조차도 귀찮았고 무엇보다 괴로운 것에는 무감각했다.
나의 무관심과 무감각이 내가 가진 기억에 대한 것인지, 아니면 저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 얽힌 현재에 관한 것인지 분별하기란 참 어려웠다. 어떤 사람에 대한 기억 때문일까, 모르는 사람들과의 만남 때문일까, 무엇이 나를 하늘만 바라보며 드러누워 있게 하는 것인지 내게는 그것을 따지고들 의욕은커녕 최소한의 기력조차 없었다.
놀이공원은 지하철을 타면 한 시간 정도에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하지만 무슨 호기였던지 나는 지하철을 타기가 싫었다. 노선버스를 타고 가기는 더 싫었다. 나는 걸어서 가기로 결정하고 가을 소풍을 가듯 가벼운 걸음으로 거리를 걸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걸었다. 한 시간 간격으로 쉬었다. 한 번 쉬는 동안 충분히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상황은 쉽지 않았다. 도착도 하기 전에 내 발은 온통 물집투성이였다. 쉬엄쉬엄 걸어간 발이 온통 짓물러 있었다. 보랏빛 스카프를 찾아 헤맨 그날이야말로 짓무르게 걸어 다녔어도 멀쩡했는데 말이다.
그날 내가 끌렸던 건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모든 것은, 모든 현재가 만들어낸 기억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서울 대로변에 누워 그 스카프를 떠올린 건 우연이 아니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슬퍼지기만 하면 곧잘 그 스카프의 여자아이, 아니 그 여자아이의 스카프를 떠올렸다. 가지자마자, 아니 만나자마자 잃어버렸기 때문에 위로가 되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