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프리셀과 토마스 모건
"정확히는 해안이 아니었어. 북해를 하염없이 내려다보고 있는 능선, 그 언덕에 핀 지천의 은빛 억새꽃이 며칠째 메아리의 날개를 내게 팔았지. 저녁 바람을 만나는 억새의 황홀을 정말 아니?"
이렇게 마종기 선생님의 "북해의 억새"가 첫 장부터 필사되어 있고 몇 편의 시가 더 필사되어 있지만 더 넘겨봐야 공책이다. 이런 어설픈 공책들이 너무 많더라. 그래서 한 권씩 메꿔서 버리기 위해 일기장으로 쓰기로 하고서.
"11월 25일. 살면서 내가 저지르는 모든 행동은 돌아온다. 내가 살아있을 때 나에게만 돌아오는 것이 아니다. 무서운 것은 내 자식들에게까지, 내 자식의 자식들에게까지 돌아온다는 것이다."
라고 일기를 썼다. 이 무거움에 대해 과학이니 비과학이니 따질 필요가 없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체험하고 있는 어떤 '사실'이지 않은가. 심지어, '심기일전'해서 돌아온다.
어렴풋한 기억에, 십 대 시절 훔친 물건 값을 환갑이 지나 갚았다는 기사가 있었다. 그 사람은 '자신이 계속 돌아오고 있다'라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돌아오기 전까지, 아내가 아프거나 자식이 다치거나 꿈이 수상치 않았을지도 모른다.
Bill Fresell, Thomas Morgan
Small Town, 2017
지난주, 차 사고를 냈다. 나의 방만함이 저지른 사고였다. '왜 내게 이런 고난을 주십니까?'라고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차분하게 돌이켜보고 내가 저지른 것들을 곱씹었다. 이기적으로 득을 취하기 위해 저질렀던 여러 과거들이 며칠이고 내 머릿속을 지나갔다. 많은 사람들의 얼굴까지도 또렷하게 떠올랐다. 그 표정들이 내 마음에까지 내려왔는지는 잘 모른다.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겠지만 '무엇인가 반드시 돌아온다면, 복으로 돌아오도록 해야지' 생각했다.
지난 주말, 아내와 자전거를 타고 예술공원 가는 길의 굴다리를 벗어나 안양천변의 자전거 도로로 나섰다. 내가 앞장서고 아내가 뒤따르는데 내 앞으로 진입한 이십 대 초반의 젊은 친구가 시비를 걸어왔다. 왜 침을 뱉어요? 안 뱉었습니다. 뒤따르던 아내가, 무슨 침을 뱉아요? 하고 쏘아붙이는 것을 말리고, 다시 정중하게, 뱉지 않았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아내에게,
"저 친구, 굴다리 천정에서 물이 떨어진 걸 오해했나 봐."
우리는 작은 마을에 산다. 태어나서부터 죽는 순간까지 '작은 마을'에 산다. 내가 경작해서 기운을 뺏아버린 땅에는 당분간 아무도 작물을 심지 못한다. 누군가 기분이 나빠 마을 우물에 흙을 풀어놓는다면 우리 가족 모두 맑은 물을 마실 수가 없다. 이 작은 마을에서는 모두가 영향을 주고받는다. 우리는 결코 큰 마을에 살아본 적이 없다. 이 작은 마을이 좋은 점은, 선행을 베풀면 선한 것으로 돌아온다는 것이겠지.
빌 프리셀과 토마스 모건이 주고받는 인터플레이를 귀 기울여 들어본다. 기타의 톤에 따라 콘트라베이스의 도약이 이루어진다. 콘트라베이스의 약음에 대해 기타가 살며시 안아준다. 그렇게 작은 마을에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