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사람이 아파요

by 현진현

왠지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이었을 것 같아요. 정확한 기억은 아니라서... 기형도 시인은 광명에 살았다지만 제 친구 흥록이는 계양에 살았던 걸로 기억해요. 나이는 다르지만 두 사람은 어린 시절 허허벌판에 있는 집에 살았다는 공통점이 있네요. 또 그 벌판이 지금은 벌판이 아닌 것도 묘하게 닮았군요. 계양은 코로나 초 언론에 빈번했던 경산에 있어요. (이 메모를 쓰는 전철에서 찰리 파커를 듣고 있는데요, 이 사람도 마음이야 평생 외로운 벌판에서 살았더랬죠.) 판소리 명창과 이름이 같았던 내 친구 흥록이가 지금 무얼 하고 지내는지 궁금합니다. 흥록이는 아버지 때문에 늘 괴로워했고, 늘 그 어여쁜 여동생을 다그쳤어요. 흥록이는 흔히 말하는 '광신도'였습니다. 자신의 운명을 어찌해보려고 했는지 새벽 기도까지 다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나야 종교를 창시하면 했지 어떤 종교에 들어가는 타입은 아니어서 흥록이를 잘 이해할 수는 없었습니다. 늘 괴로워하고 늘 자책하고 종종 예수님을 만나서(경산의 한 다리 끝에서 예수님을 만났다고 했었습니다.) 잠시나마 심신의 평화에 들기도 했었습니다.

"나는 흥록이가 아팠습니다."

나이가 들면서부터 이성, 그러니까 여자들이 아팠던 경우가 많았습니다만. 그땐 흥록이가 많이 아팠더랬습니다. 롤랑 바르트(Roland Gérard Barthes)는 사랑을 전제로 말했다지만 내 경우엔 그랬던 것 같지는 않고요. 흥록이 여동생이 예뻐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사랑했을까?"

40대 후반쯤 되면 고백을 해도 되겠지요. 이미 이미 지난 일이니까요. 20대 시절 사귀었던 이성을 내가 정말 사랑했을까? 그렇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던 철학도였으니 알지도 못하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을 겁니다.

음악들은 정말 사랑했던 걸까? 돌이켜보면 음악이야말로 나 자신에 대한 동정은 아니었을까 추측합니다. '나 같은 인간이 음악이라도 좋은 걸 들어야지' 같은... 그 시절 아침에 일어나면 학교로 가지 않고 레코드 가게로 갔습니다. 한국에 수입되는 거의 모든 CD와 LP들을 만지작거렸을 겁니다. 동성로의 타워레코드, 신나라레코드, 핫트랙스, 브람스 레코드... 핫트랙스의 클래식 코너 담당자와는 친구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이의 신나라 시절부터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를 가르치고 시댁에 어떻게 하는지를 알았고, 그이의 남편과 인사를 나누기도 했었습니다. 나처럼 레코드 가게를 섭렵하고 다니던 '악서 총람'의 저자 장정일 시인을 종종 마주치기도 했습니다. 조금 전 신나라에서 봤는데 핫트랙스에서 다시 보는.

"동정도 사랑인가요?"

A는 그렇게 물어왔습니다. 무참하게도 동정은 사랑이 아니란다.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랑하지 않지만 동정하는 방향과, 동정이 아닌 사랑하는 방향이 얽히고설켜서는 이 끈끈한 세상을 만들어낸다는 동문서답을 나는 주워삼킬 수 있을 뿐이었죠.

그렇다면 A도 나도 왜 사랑하지 않았나, 물어보면 바르트가 대답해줍니다. 바르트는 '연민(compassion)'을 두고 얘기합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친구도 여자도 아프지 않게 됩니다. 대신 다수의 사람들이 아픈 경우가 생기더군요. 이번에 수해를 당한 분들, 고통에 처한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 늦은 밤까지 촬영장에서 일하는 분들도... 나 같은 이기적인 캐릭터도 바르트의 저 표현 속 화자처럼 변화하는가 봅니다. 어쩌면 '나이가 들어가는 나'가 참 좋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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