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년 동안의 인생은 가고, 그 '인생의 말'이 남았다.
'키키 키린, 그녀가 남긴 120가지 말'이란 책을 읽었다. 단숨에 1/3쯤 읽고 낮잠 후에 나머지를 읽어버렸다. 1943년 생이라면 짧지 않은 인생인데 두 시간 정도로 읽은 것이다. 두 시간의 깊이가 바닷속 구만리쯤 되어버린다.
말들을 묶은 것이 冊이다. 말들이 만들어내는 것들, 이를 테면 이야기, 음운, 음운의 색깔, 사자성어, 속담, 시, 소설, 에세이, 인터뷰, 동화... 알고 보면 수많은 인생과 인생의 편린이 담겨 있다. - 사진집조차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이 책 속에는 연극 속에서, 영화 속에서, 광고 속에서 여러 인생을 시끄럽게 살았던 키키 키린의 인생이 들어있다. 그렇게 책이란, 하나의 인생을 위로하듯 묶는다. 그래서 그이의 인생은,
"저토록 단아하다."
우리말로 딱 두 음운이 남았으니까.
"살다."
광고인이 문학 비평을 담은 책을 내놓았는데 그게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의 제목에 쓰인 카피는 글쓴이의 의도가 잘 드러난다는 의미에서, 정말 끝내준다.
"책은 도끼다."
이 책은 내용도 내용이겠지만-솔직히 군데군데 넘겨보았지 읽지는 않았다고 고백합니다만-내게 저자의 의도 자체로 도끼였다. 전공자가 아니어도 값어치 있는 문학 비평이 가능하다는 면에서 도끼였고, 광고인이 이렇게 알찬 책-광고인의 다른 책이 알차지 않다기보다 이 책이 전문적인 인문서에 비견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을 쓸 수 있다는 면에서도 도끼였다. 또, 내용을 떠나서 책의 중요성, 삶과의 관련성을 강조하는 의도가 내 머릴 후려쳤고, 글쓴이가 말씀(강연)도 잘하신다는 사실은 내 심장을 후려쳤다.
누군들 그렇지 않겠냐만, 나도 책 중심으로 살아간다.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서점이나 도서관으로 간다. - 서점이 많이 더 편리합니다만. 가서는 프로젝트 이외의 내용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지금의 트렌드를 대변하는 주제라거나 특정한 하나의 영역에 집중한 오타쿠적 주제들을 일별해 본다. 책을 제법 구매하는 편이기도 한데 서점에서 돌아오면 사 온 책들을 읽고 구분해서 소유까지는 필요 없는 책이라면 선물하거나 중고서점으로 분류를 해버린다.
가끔 서가에 꽂힌 책의 등을 바라보면서... 아, 저건 모모 씨의 인생이로군, 헛 저건 너무도 고단한 인생이었지, 저건 멋스러운 인생이야, 아이고 저건 내밀한 인생이었지,라고 생각한다. 어떤 형식이든 책 속으로 들어가면, '生'이라는 한 글자에 집약이 되는 것 같다.
"수많은 생들이여 수많은 영혼들이여"
줄이고 또 줄였음에도 우리 집에선 그 어떤 가구보다 책꽂이가 큰 면적을 차지한다.-장롱이 더 큰가? 그 수많은 생들을 이해해서라기 보다는 그저 나와 같은 '인간'이 곁에 있다는 점에서 심미적으로 위로를 받는다. 이렇게 책을 찬양하다 보면, 누군가 물어온다. 도대체 얼마나 시간이 많아야 그 책을 다 읽을 수 있을까요?
답 대신 나는 저, '책은 도끼다'라는 도끼 같은 헤드카피 아래에 한 줄의 서브 카피를 추가해서 말한다.
"책은 도끼이고, 책의 목차와 머리말은 망치쯤 되는 거다. "
책은 어차피 어떤 '의도'다. 책의 목차와 머리말에는 분명한 의도가 있어서, 책에 따라 다르겠지만 책의 목차와 머리말만 찬찬히 들여다보아도 1/5쯤은 읽은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