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명확하게 명확한
증명은 과학일까?
과학적이고 기술적이라 이렇게 표현했다.
MONT-BELL PROVE
12 데니어 고어자켓
185g 초경량. 몽벨의 기술이다.
- 몽벨
좋은 브랜드라면 좋은 카피가 나온다고 어떤 후배 카피라이터가 SNS에 썼더라고. 몇 달 전 흐린 하늘에 늘 보던 아이폰 옥외광고가, 아이폰 카메라의 능력을 증명하는 저 옥외 보드가 다시 눈에 걸렸다. 어떤 영화를 본 후였다.
Shot on iPhone 7 - Apple
한 편의 좋은 영화를 보는 것은 몇 권의 책을 읽는 것과 같다. - 미즈미는 30년 전 살인을 저지르고, 지금 다시 살인 죄목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영화의 말미엔 사형을 심판받는다. 영화는 이 인물과 연관된 세 번의 살인을 다룬다.
세 번째 살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2017
영화는 어떤 식으로든 해석이 가능한데 미즈미라는 인물의 관점에서 보면 그는,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심판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다. 죽음은 그저 심판(=삶)의 형식이고 과정이다. 영화를 창조하는 감독처럼 진실을 뒤적이는 미즈미의 증언은 영화를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미즈미의 중언부언은 죽음에 대한 ‘결정’에 개입하는 비본질적인 것들을 즉자적인 것으로 희화화시킨다.
생각 없는 것들!
그랬던 까닭인지 감독은, 관객의 생각으로 영화를 밀어둔다. 말하자면 세 번째 살인은 세 번째 삶을 탄생시킨다. 그 삶에 대해서도 영화는 명확하게 불명확하다. 하지만 광고는 불친절할 틈이 없다.
불명확하더라도 명확해야 한다.
예술은 해석(이해)의 대상이 아니라고 한 수잔 손탁의 해석(이해)은 광고 커뮤니케이션의 영역에도 부합한다. 그만큼 광고는 충분히 쉬워야 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처럼 관객의 몫을 남겨두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새우깡 집어먹듯 쉬운 몫, 그리고 고소해야겠지? 저 흐린 하늘에도 즉물적인 애플의 주장처럼!
세상에 명확한 것은 몇 가지 없다. 인간의 죽음 정도가 명확하다. 스토리의 전개가 명확하지 않은 영화를 보면서, 말하는 방식이 명확하지 않은 나를 본다.
명확하게 말하는 습관은 짧게 말하는 습관에 일치하지 않지만 누군가는 명확하고 짧게 말한다. 그렇지, 최고의 카피라이터의 방식이다.
그는 끝없이 말한다. 끝이 나지 않을 정도로 말한다. 말하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모든 말은 자신을 향한다. 그의 곱씹음은 9분 50초 동안 지속된다. 그리고 단 10초 동안의 發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