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음악 같은

by 현진현


2017년


작은 프로젝터를 구해다 거실에 두었다. 공중파를 잡아서 EBS 채널을 가끔 보았다. 오늘 - 2018년의 3월 10일 자정을 5분 남기고 빔을 켰다.


Manchester By The Sea

Kenneth Lonergan, 2016


멋진 음악이 흘러나왔다. 미국 같지 않은 미국이 펼쳐졌다. 영화는 후반부로 넘어가고 있었다. 남자는 흐느끼며 사건을 진술하고, 경찰들은 남자를 달래준다.

이미 이 영화를 본 아내가 전반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주인공 ‘리’는 딸 둘을 잃었다. 자신의 실수로 딸들이 화재로 죽었다. ‘리’는 여전히 살아있다. 슬프지만 여전히 살아있었다. 거기까지가 전반부였다.

형이 죽는다. 조카와의 동행이 시작된다. 여전히 슬프다. 그는 여전히 슬프면서 여전히 살아간다. 카메라는 관찰하면서, 끝내 관찰하면서 슬픔을 지켜본다.

죽은 아이들의 엄마, 그러니까 전 부인을 만난다. 그녀에게 그는 슬픔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슬픔이다. 어쩌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슬픔이란, 일단 깊어지기 마련이다. 아득해진다. 쉽게 극복되지 않는다. 슬픔은 본래 그렇다.

영화가 가르쳐 준다.

모든 것은 변한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유명을 달리한 선배의 빈소는 텅 비어 있었다. 그 텅 빈 공룡의 뱃속 같은 슬픔이야말로 광고가 가진 슬픔의 자리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죽음 앞에서 거대한 멜로디를 떠올린다.


Nebraska

Bruce Springsteen, 1982


슬픔이 말을 한다. 귀를 기울여 잘 들어보는 것은 도리이다. 아침나절, 아니라면 해질 무렵 한 소절 슬픔을 그저 들어보자.


‘리’는 광활한 눈밭을 걷는다. ‘리’는 조카와 함께 슬픔을 치워나간다. 그러다 보면 봄이 오겠지.


웃자고 사는 세상 -

그런 까닭에 광고는, 슬픔을 마치고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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