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CD

사물의 아름다움

by 현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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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저 디스크는 디지털 신호가 아니다. 비디오테이프처럼 현상하듯 들여다보는 거다. 나한테 디지털의 시작은 콤팩트디스크, CD이다. 시간이 흘러가버려서 CD도 아날로그 같으다. 특히 주얼 케이스라고 부르는 플라스틱 속에 재킷이 있고 시커먼 트레이가 있고 그 위에 올려진 반짝이는 CD가 있다면, 그건 고전적이기까지 하다. 그래도 나는 종이다. 종이 속에 들어간 CD가 좋다. 금이 간 주얼리 케이스도 좋아하지만 종이케이스도 좋아한다. 종이 속에서 퍼덕이는 은갈치를 끄집어내다 보면 모처럼 생동감 있는 사물을 만난 것만 같다.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는 알려져 있는 바 동성애자이다. 심연을 더 내려가 죽음의 바닥을 통과하고 시커먼 멜로디 덩어리를 건져 올려 햇빛에 차곡차곡 말리면 쇼팽의 발라드 4번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이 헝가리 방문 기록에 발라드 4번이 남아있지는 않다. 헝가리에선 바흐도 베토벤도 모두 모차르트처럼 쳐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감상도 남아있다. 하얗고 빨갛게, 그리고 무지개의 빛으로 둘러싸인 저 CD들처럼 말이지.

세상에! 이렇게 쳐버리다니... 하는 감탄사는 대부분 리히테르의 라이브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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