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은 특히, 대학들 간의 광고전이 치열했다. 당시 우리(광고회사에 다니던 나와 팀원들)는 국민대학교의 광고를 맡고 있었는데 한자어를 활용한 그때의 카피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靑春에 봄이 없다.
人生에 사람이 없다.
學問에 물음이 없다.
正道에 길이 없다.
이 헤드카피들만 보자면 역설과 반어가 서로 뒤엉켜 세상에 이런 절망이 또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보이는 대로 표현했고 나름의 바디 카피로 저 절절함을 완곡하게 희망으로 돌려세웠다. 하기는, 바른 길이 길이 아니라는 저 파격성을 어찌하기는 힘들었지만.
10여 년이 흐른 지금의 학생들은, 청년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지난달 경남에서 생활하는 몇 분의 청년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단 스물네 분까지 인터뷰를 진행할 예정이다.) 인터뷰라곤 하지만 듣기만 하진 않았고, 자세하게 물었고 답변에 대해 여러 가지 코멘트를 해서 인터뷰이의 생각을 끌어내려고 했다.
가장 최근에 만났던 진주에서 지리교육을 전공하는 대학 졸업반 학생은, 영상을 만드는 일을 하기 위해 수도권으로 생활 터전을 옮기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우선, 어떤 분야의 영상을 만들 것인지를 청년에게 물었다. 그리고 왜 서울에 가겠다는 것인지도 물었고 서울에서의 생활을 감내할 준비가 되어있는지도 물었다. 돌아오는 답변은 어딘가 절박했지만 우리가 보기에 계획은 '무작정'에 가까웠다. 결국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는 서로 역할을 바꾸었고, 나와 동행했던 사진작가와 담당 PD가 자연스럽게 카운슬러로 참여하기에 이르렀다.
사진작가는 서울에서의 궁핍했던 경험을 들려주었고 PD는 낯선 지역에서의 직장생활의 현실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는 지방에서 영상 콘텐츠를 직업으로 삼는 방법에 대해 말해주려고 애를 썼다. 우리는 왜, 경남 청년의 서울 생활을 말리려고만 들었을까?
창원으로 돌아온 인터뷰진은 간단한 추론을 해봤다. "딴 게 아냐, 그저 취업이 걱정인 거야."
추론이 맞든 틀리든 그 청년은 '스스로 취업을 해야만 한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이의 의무감과도 같은 그 마음을 떠올리면서 슬쩍 봄 하늘을 쳐다보았다. 청춘에는 정말 봄이 없는 것일까, 하면서.
자연의 가능성을 보고 '촌'으로 내려온 수원 출신의 청년도 만났다. 그이는 팜프라에서 그 가능성을 문화 콘텐츠로 확인하고 지역의 업을 비즈니스와 연결하려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인문학이 삶에 스며드는 장면일지도 몰랐다. 팜프라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노력에는, '헬레나 노르베리-호지'로부터의 전통과 수익모델로서의 비즈니스가 양립하고 있었다. 기본적인 생활 인프라 개발을 요청하지만 대형 토목공사로 지금의 '촌스러움'을 훼손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한다는 이야기다.
팜프라의 네트워크에는 지역의 토박이 청년들도 참여해서 교류가 어느 정도 활성화되어 있다고 했다. 한쪽의 청년들이 생산을 담당한다면 한쪽의 청년들은 유통과 홍보를 담당하는 식으로 역할 분담을 하면 좋겠다는 이야기, 그리고 B2B 비즈니스를 준비한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이는, 말 그대로 다양한 경력의 적지 않은 청년들이 남해로 내려와 있다고 했는데 그것은 경남에서 판을 깔아주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판을 깔아주지 않았다면 청년들이 모이지 못했을 거라고. 그이는 이 판에서 다양한 청년들을 만났는데 그 다양함이란 그이에게 무한한 가능성과 다름없을지도 몰랐다. 물론 떠나간 청년들도 있었는데 이 '판'이란 무대이기도 했지만 다름 아닌 '일자리'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인생에 사람은 있었지만 일자리가 없었던 셈...
청년은 1년 후 10년 후를 상상할 수 없다고도 말했다. 지금의 일자리가 튼튼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기성세대인 나는 느꼈다.
지난주에는 진주 비단길 청년몰에서 힙한 토마토 '힙토'를 경영하는 청년 박지현 대표를 만났다. 토마토를 판매하는 '힙토'가 가진 미덕은 '힙'이라는 브랜드의 방향성만큼이나 그의 마케팅에 넉넉하게 들어가 있었다. 토마토는 대부분 인터넷에서 판매하지만 오프라인에서 토마토를 매개로 디자인한 굿즈들, 그러니까 힙의 정신을 위한 쇼룸이자 상점을 운영한다는 전략이다.
박 대표의 부친은 토경으로 토마토를 재배한다고 했다. "토경으로 재배하면 맛도 더 좋아요."라고 말하며 박대표는 싱긋 웃었다. 아버지의 손은 너무도 거칠어졌지만 그 손이 재배하는 토마토는 최고죠, 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그래서 부친의 손이야말로 힙토가 가진 스토리텔링이고, 진정성 있는 브랜드 스토리가 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그이에게 '힙'이란, 그 토마토가 분명하다. 고향으로 돌아와 땅의 길을 걷는 그에게는, 아버지의 길이란 정도가 있었고 아마도 미래의 길이 되지 않을까.
나는 박 대표의 이야기로부터 언젠가 써 둔 [경남에서 청년으로 산다는 것] 시리즈의 캐치프레이즈를 떠올렸다. 그것으로 청년 박지현의 농업경영을 요약할 수 있었으므로.
"내가 살고 있는 곳을 내가 살고 싶은 곳으로"
*칼럼에 등장하는 청년들의 이야기는 모두, 경상남도 블로그 [갱남피셜]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