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디 계장

어쩌다 공무원 - 1

by 현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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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건 알지만 바쁜 사람도 커피는 즐기지 않느냔 말이다. 나는 단 한 번도 KS(나는 그를 이렇게 부르기로 했다.)가 회사(내가 일하는 공기관)의 카페에 들르는 것을 보지 못했다. 나중에 그가 믹스커피와 에이스의 조화를 즐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에야 뭔지 모를 동질감을 느꼈다. 보통의 나는 드립한 커피를 즐겼었는데 말이다. 하긴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고부터 나는 다시 믹스커피에 빠져들었고, 믹스커피에 빠져든 사람 치고 하루 석 잔 이상은 마시는 게 보통이니 나의 보통의 커피는 바뀐 것도 같다. 나는 평소 공무원들이란 믹스커피를 마실 거라는 잠재적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회사의 카페는 꽤 훌륭하고 제법 트렌디한 패션들이 북적인다. 여기서는 믹스커피를 제외한 아주 맛있는 커피와 차를 판매한다. 이 카페는 책으로 둘러싸여 있고 북향으로 창문이 널찍하다.


현 사원, 현 카피, 현 대리, 현 차장, 현 국장, 현 이사, 대표님, 주로 현 CD... 이런 직함으로 불리던 내가 이곳에서는 '현계장'으로 불린다. 내가 맡고 있는 계에 있는 모든 구성원은 주로 '주사님'이나 '주무관님'으로 불린다. 정식 직함은 따로 있는 것으로 아는데 급수에 관계없이 김주사, 이주사, 최 주사로 불린다. 참고로, '주사', '서기', '사무관', '서기관' 등의 직급 명칭은 일제강점기의 잔재라고 한다.

나는 아주 추운 12월 28일 5급 임기제 공무원으로, 또 '계장'으로 회사에 부임했다. 사장인 KS가 '팀장'이라는 직함을 주었지만 늘공(늘 공무원: 일반 공무원)들이나 정무라인(보통의 임기제 공무원과의 분명한 구별이 필요하다.)이나 대부분 나를 '계장님~' 하고 부른다. 사람은 불리는대로 살아간다는 나의 미신처럼 나는 내가 계장이라고 불린 순간부터 계장처럼 살아가는 것도 같았다. 그러던 며칠...

중대본(중앙대책본부)인지, 재대본(재해대책본부)인지 기억나지 않는 회의에 급작스레 참석하게 되었다. 그날따라 네이비 컬러의 후드 점퍼를 입고 그 위에 코트를 입고 출근한 나는, 코트를 벗고 후디 위에 그 노란색 민방위 점퍼(정은경 청장이 입으시는 그 점퍼)를 껴 입었다. 회의장으로 향하는 내 뒷모습에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련하게 깔렸다. "세상에 세상에 저 봐라... 후드 입고 중대본 간다. 몬산다..." 드넓은 회의장에 들어선 나는 구석으로 어찌어찌 피신해 기둥 뒤의 의자에 겨우 앉을 수 있었다.

'찢어진 청바지' 사건도 당연히 부임 초기에 벌어졌다. G-Star의 연한 블루 컬러 데님은 그 찢어짐의 정도와 각도가 맘에 들어 아끼던 차였다. 부임 전 아내와 함께 당시 거주지인 평촌의 한 구청에 들른 김에 공무원들의 패션을 훑어본 적이 있었다. 그날따라 그랬는지 모르지만 우리가 본 그들 패션은 그저 '편안함', 그러니까 내가 다니던 광고회사의 패션과도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진 않았다. 아뿔싸,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의 공무원은 달라도 한참 달랐던 것이다. "대체 저 찢어진 청바지를 입는 심리가 머꼬 말이다." - 사무실을 나서는 내 뒤에 꽂히는 한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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