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yun Hyun Jul 02. 2021

괄호와 조사

카피 다시 쓰기 (3)

제가 다녔던, 최소 두 군데의 회사에서 회사의 캐치프레이즈에 괄호를 썼습니다.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Discover beyond  [        ]

Idea change  [        ] 

였던가요? 


 [        ]란 매우 흥분되는 문장부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조밀한 가능태라고 볼 수 있고요, 긍정적으로만 보자면 무한한 가능성입니다. 하지만 저는 싫었습니다. 모든 커뮤니케이션에는 목적성이 있고, 그것을 드러내는 가장 좋은 방법이 '목적어'이기 때문이죠. 물론 'beyond'와 'change'가 의지를 반영하고 있습니다만 우리 인간들은 반복해서 읽어서, 그 리듬을 타야 '기원(pray) 다운 기원'을 할 수 있는데 그러자면 반드시 완성된 문장이 필요한 것이죠. 알타미라의 동굴벽에서 '[        ]를 잡아라, [        ]를 잡아라'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최근에 한 정당의 대선 경선 후보가 목적어 없이 '주어+조사+합니다'를 캐치프레이즈로 들고 나왔어요. 만약에 경선을 통과한다면 새로운 캐치프레이즈를 들고 나올 것으로 예상합니다만. 혹은 블랭크로 공모 이벤트를 할 수도 있겠네요. (목적어가 본래 [대한민국을 개조]라는 끔찍한 워딩이었다고 하더군요.)  

'합니다'로 보자면, 그 유명한 스워시의 카피 'Just do it'이 있습니다. 이 '저스트 두잇'은 희대의 살인마가 법정에서 내뱉었다는 말 중의 한 대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왜 죽였나요? 저스트 두잇. 그랬을까요? 하여튼, 대명사가 목적으로 쓰였지만 '당장'이라는 부사어적 워딩이 이미 의미화가 되고 있죠. 괄호 얘기는 여기쯤 하고요. '조사' 얘기를 해 볼까요. 


정치 시즌이다 보니까 정치인 얘기를 많이 하게 되는데요. 정치인이든 누구든 주격 조사는 메시지를 결정짓는 역할을 하거든요. 가령, '김철수는 합니다'와 '김철수가 합니다'가 있습니다. 보면 알 수 있듯 전자는 김철수 이외엔 못합니다, 라는 의미가 들어있어요. 후자는 비교나 차별화의 방향보다는 자청해서 뭘 하겠다는 의미가 있죠. 이것은 당내 경선 전략일까요? 

저는 이 주격조사의 활용이 정치인의 정체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이 정치인은 자신을 주어로 스스로가 정치 군중이 되어 스스로를 평가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 주격조사는 유권자를 배제하고 있습니다.  

'은(는)'이란 주격조사는 사실, 주어가 타자(자기자신이 아니라)였을 때 발화자의 고민과 신중, 그리고 배려를 드러낸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은'이나 '는'을 길게 끌어서 발음하는 정치인을,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양한 예를 들어서 글을 쓰고 싶은데 오늘도 어제처럼 머리가 굳어있는 느낌이... 듭니다.)

작가의 이전글 되어보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