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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 Hyun Aug 11. 2021

말해라, 글로 쓰던가

구어와 문어

지금에 와서 [구어와 문어] 이야기를 하는 게 유효기간이 지난 우유를 마시는 것 같니다만…

이십여 년 전, 카피라이터 선배들은 [구어]와 [문어]를 엄청 잘 구분해내고는 했습니다. 말이나 글이나 그게 그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 전달하려고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 아무래도 중요할 테지요. 제게 굳이 둘 중에 뭐가 좋은가 물어온다면 구어적인 것보다는 문어적인 것을 선택할 것 같습니다. 소리 내 읽는 것보다는 눈으로만 읽는 것이 왠지 편하다는 게 그 이유가 되겠습니다.


길게 대답해도 된다면, 각개의 장단점이 있다고 말하고 싶은데요. 눈으로 보는 것은 폰트를 보는 것을 넘어섭니다. 단어들의 구성에서 글자의 단정함으로 이어졌다가 다시 단어들로부터 문장으로 확장되는 감상의 즐거움을, 눈으로 보는 [글]은 가지고 있죠. 반면 소리를 내는 [말]은 그 억양과 말의 흐름을 즐길 수 있고 무엇보다 자신의 목소리를 포함해서 그 목소리의 고운 결, 거친 결, 그저 그런 결 등과 입자를 냄새 맡듯 느껴볼 수 있습니다.

물론, 선배 카피라이터들은 대개 구어를 권장들 하셨습니다. 요즈음 와서 보면, 구어로서도 아름답고 문어로서도 아름다운 문장을 발견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시가 그렇습니다. - 그러고 보니, 제가 광고들을 눈여겨보면서 찾아내려고 했던 것은 시보다 더 큰 성취에 닿은 광고 카피였던 것도 같습니다. 세상에 그런 카피가 있을까 싶지만 사실, 구어든 문어든 어느 하나 좋다면 둘 다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곳은 다다미 넉장 반 크기의 자그만 찻집,
불필요한 것은 단 한 가지도 없습니다.
그래서 상대방을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 교토 가자
- 일본 철도 동해선


이 꼭지에선 논외의 이야기지만 카피야말로 사람을 닮았고 사람도 카피를 닮아가거든요. 이 카피를 쓴 메구미 씨를 한번 만나야지 생각했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여하튼 이 일본어 카피는 문어든 구어든 아름다웠습니다. - 원문을 찾아서 일본어 능통자에게 읽어달라고 해보세요.


약해진 마음을 썰물에 흘려보냈더니
절망이 떠나간 자리에
단단한 희망이 놓여 있었습니다.
난 더 단단해질 것입니다.
긍정, 내 안에 있습니다.
- 현대그룹


[긍정]의 뜻은 있는 그대로를 보는 거라더군요. 부정의 반대가 아니라고… 그러니 [희망]은 늘 우리 곁에 있다는 메시지가 되죠. 또 [긍정]의 미덕은, 카피에서의 화법으로서도 제법 자주 회자가 됩니다. 좋게 이야기하자, 는 건 카피가 아니라도 우리가 흔히 주고받는 말이지요.
 

힘이 세야만
싸움을 잘해야만
초능력을 가져야만
슈퍼히어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기본 방역 수칙 준수로
사회적 거리두기 준수로
그리고 잠시 멈춤으로
가족과 주변을 지켜내는
당신도 영웅입니다
만남 모임 행사 등의
대면 모임을 잠시 멈춰주세요
멈출 줄 아는 당신이 영웅입니다
- 경상남도


있는 그대로를 말하고 있는데요. 긍정적입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지 말고 웬만하면 집에 있으세요,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당신도 감염될지 몰라요… 와 같은 메시지와 달리 긍정적이죠. 긍정적인 카피는, 읽어도 보아도 기분이 나빠지지 않는 것 같아요.


우진아,
12번 수학 문제를 틀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몇 번의 시험, 몇 번의 만남, 그리고 몇 번의 헤어짐.
몇 번이 될지 모르는 입사 면접.
너는 앞으로도 수많은 문제들을 만나고
결정해야 될지도 모른단다.
수학은 틀려야 한다. 그것도
용감하게 틀려야 한다.
세상의 모든 문제가 그렇게
틀리면서 배우기 때문이란다.
바른 교육 큰 사람.
이 캠페인은 웅진씽크빅과 함께 합니다.


그러고 보니, 긍정적인 카피는 대부분 구어적인 느낌이 많이 나네요. 글자 이전에 말이어서 그런 건가 봅니다. 글을 잘 쓰는 사람보다 말을 잘하는 사람이 많기도 하고… 그런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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