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만의 키보드

카피 다시 쓰기, 20211007

by 현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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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시절부터 쭉 소설을 써 왔습니다. 그 시절 완결지은 이야기는 단 한 편도 없었습니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찌 되든' 한 편이라도 완결을 짓고 말 겁니다. 완결 짓지 못한 이야기들은 소설 쓰기의 피로함과 괴로움만 제게 남겼답니다. 단 한 편이라도, 그 한 편이 주는 성취와 미래가 대단하다는 것을 저는 멋 훗날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벼르고 별렀던 기간, 대학을 다니는 긴 시간 동안 역시 단 한 편도 완결 짓지 못했고요. 소설은 아니지만 제가 처음으로 완결지은 글은 대학 1학년 1학기 때의 리포트 숙제였습니다. 신화와 연관된 그리스 문화사의 배경을 훑는 짧은 글이었습니다. '그리스 문화사'라는 문고판으로 된 유명한 저작을 읽고 나름의 생각으로 요약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리포트는 글을 완결시키는 어쩔 수 없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리포트가 거듭될수록 글들은 길어졌습니다. 손으로 쓰기에 굉장히 까다로웠습니다. 그래서 타자기도 구해서 써 보고 '워드 프로세서'라는 신문물을 궁금해하기도 했습니다. 학교 내의 PC실을 찾아서 플로피디스크에 저장하고 기회가 되면 출력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독수리 타법이었죠.

그러다 집에 컴퓨터를 들이게 되었습니다. 형과 같이 쓰던 방에 들여서 온 가족이 함께 활용을 했었죠. 타이핑을 연습했습니다. 당시가 천리안과 하이텔에 이어 유니텔이 막 나오던 시기였는데 저 또한 모뎀을 활용한 PC통신에 빠져들었습니다. 졸업 후 PC, 진짜 퍼스널 컴퓨터가 갖고 싶더군요.

노트북 컴퓨터를 한 대 사서 멋진 장편을 쓸 거라고 다짐했던 순간을 여전히 기억할 수 있습니다. '삼성 SENSE 650'은 그때 당시로서도 굉장히 무거웠습니다. 그럼에도 소설을 완결시킬 수는 없었고요. 다만 졸업 무렵 문학비평 한 편은 완결 지을 수 있었습니다. 2000년 초에 취업했던 광고 회사에서 업무용으로 지급받은 830 역시 무거웠습니다. 무거웠지만 나쁘지 않았습니다. 카피를 소설 쓰듯 즐겁게 썼기 때문일까요?


소설이라는 이야기의 세계는 순전히 제가 펼쳐내는 세계였기 때문에 애착을 가졌던 것처럼 컴퓨터 역시 나만의 세계가 통과하는 통로로서 저만의 물리적 소유물이어서 좋았습니다. 윈도우가 OS로 작동하는 PC는 걸핏하면 토라진 연인처럼 애를 먹였습니다. 2006년부터인가는 맥 OS로 작동하는 PC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맥킨토시 역시 업무용으로도 사용을 하다 보니 쉽게 망가지더군요. 그리고 PC란 PC는 모두 값비쌌죠. - 기존의 흔하던 키보드의 방식과는 다른, 이른바 '기계식 키보드'나 '무접점 방식 키보드'가 마니아들에 한정되긴 하지만 유행하게 된 배경은 저의 '입력 서사'와 닮아있지 않을까 짐작해봅니다.



미국 서부의 카우보이들은

말이 죽으면 말을 내버려 두고 가지만,

사막을 걷게 되더라도 안장은 메고 간다.
말은 소모품이지만,

안장은 자신의 몸에 익숙해진 인터페이스이기 때문이다.
이제 PC는 소모품이고,

키보드는 평생 사용할 수 있는

소중한 인터페이스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라고, 도쿄대학의 와다 에이이치(和田英一)라는 교수가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이 사람은 '해피해킹 키보드'의 초기 개발자로 알려지기도 했는데요. 근년 해피해킹 키보드의 신작 커머셜에서 와다 교수의 저 언급이 인용되었습니다. 카우보이들의 말안장이야 아니겠지만 유럽의 고매한 승마의 안장이라면 에르메스가 떠오릅니다. 제가 만약 PC 따위 내던져버리고 키보드만 들고 여행을 떠난다면, 그건 단지 키보드가 몸에 익숙해진 인터페이스이기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수많은 키보드 중 '그 키보드'를 선택한 이유는 말을 타면서 안장으로 에르메스를 고려하는 이유보다 더 많지 않을까요? - 커스터마이징의 세계에서, 타건의 음향만 보더라도 천문학적 뉘앙스가 있지 않겠냐는 것이죠. 알고 보면, 키보드 선택의 이유는 '생각에의 영향'으로부터의 영향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이쯤에서 니체의 말을 다시 꺼내지 않을 이유가 없는데... 니체는 "우리의 글쓰기용 도구는 우리의 사고를 형성하는 데 한몫하지."라고 했습니다.



건강 문제로 시력이 나빠져 글쓰기를 포기하려 했던 니체는 당시로서는 신문물인 타자기를 구입한다. 타이핑 기술을 익힌 니체는 눈을 감은 채 생각을 문자로 옮길 수 있었다. 당시 신문은 “타자기 덕분에 니체가 저술 활동을 재개했다”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 기기는 니체의 저술에 미묘한 영향을 미쳤다. 글은 축약되고 간결해졌다. 이 변화를 감지한 친구가 니체에게 편지를 썼다. “이 기기를 이용하면서 우리는 새로운 언어를 갖게 될 것이네.” 니체는 답했다. “자네의 말이 옳아. 우리의 글쓰기용 도구는 우리의 사고를 형성하는 데 한몫하지.” -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니콜라스 카(최지향 역)



이 내용에는 '새로운 언어'의 '새로운'과 글쓰기에 있어서의 '미묘한 영향'이 언급됩니다. 니체는 '사고 형성에의 역할'을 말합니다. 주어는? '우리의 글쓰기용 도구'입니다. - 키보드라는 '디바이스의 영역'이 보조적 영역에서 독립적인 영역을 지향한다는 것이죠.



당신에겐 당신만의 키보드가 있나요?

당신에게 당신만의 생각이 있는 것처럼

당신과 함께 생각하는 당신만의 키보드...

그런 당신만의 키보드가 있나요?

- 해피해킹



상상에 그칠지 모릅니다만, 키보드는 어쩌면 저와 함께 생각을 하면서 그 생각을 기록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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