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 다시 쓰기, 20210928
제 첫 회사는 한남동에 있었습니다. 회사 거의 바로 옆에 막걸릿집이 있었는데요. 6호선이 생기고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간판도 있었는지 없었는지 기억에는 없습니다만 '영희네'라고들 불렀습니다. 퇴근길에 쓱 영희네를 넘겨다보면 오 CD 님께서 앉아계시곤 했어요. "야! 지년아!(제 이름은 '진현'인데요.) 막걸리는 속이 편해, 속이 편하다고." 하시면서 매일 드셨던 것으로 기억... 하고요. 영희네에서 회사 분과 같이 마신 적이 몇 번 있었던 것 같은데 CD님이셨는지 다른 분이셨는지 좀 헷갈리긴 합니다만 아주 길고 긴 인터벌로 드시는 분과 함께 마셨던 기억이 납니다. 한 입과 또 한 입의 인터벌이었지요.
첫 회사의 첫 해 여름에 프랑크푸르트로 출장을 갔더랬습니다. 숙소를 예약하지 않았고 공항에 도착하면서 지법인에 연락을 했던 것 같습니다. 시내의 숙소는 잡지 못해서 노란색 벤츠 택시를 타고 아우토반을 경유해 외곽의 한국인이 운영하는 민박집을 찾아갔던 기억이 납니다. 저녁을 먹기 위해 그 동네의 펍에 들렀고요. 그때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노인 두 분이 각자 한 잔씩의 맥주를 앞에 두고 저희 일행이 각자 맥주 네댓 잔을 마시는 동안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맥주를 즐기는 모습이었습니다.
"느린마을"이란 브랜드는 네이밍이 탁월합니다. 처음 론칭되었을 때 뒷면의 일러스트가 재미있었습니다. 막걸리를 만드는 과정을 번호를 매겨서 그려두었죠. 이 네이밍에는 공감과 고유성이 함께 이야기로 들어가 있습니다. BI(Brand Identity)의 로고를 보면, 배산임수가 보입니다. 물은 천천히 흐르는 평지에 강이나 개울을 만들고 있고요. 앞마당은 마을의 주민 모두가 이용해도 좋을 만큼 넓습니다. 산세의 컬러(론칭시기엔 초록색)나 라인들의 대비를 보면 장수를 기대하는 생동감도 엿보입니다. 이 공간으로부터 나오는 이야기는 또, 생산 이후의 기간으로 세분화해서 각기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의 맛으로 전개됩니다. 시간에 따라 맛이 다르다고 해서 스토리를 다른 차원으로 확장시킨 것이죠.
느린마을, ENJOY SLOWLY
오늘은 생선구이를 먹었습니다. 직장을 옮겨서 몇 주 전에야 처음 만난 팀원들과 함께 먹었습니다. 공교롭게 오늘 점심 약속이 없는 사람이 우리 셋이었습니다. 미혼에다 귀여운 인상의 욱 주무관, 그리고 유튜버를 겸직하고 있는 진 주무관. 모둠 생선구이는 넉넉하진 않았는데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았습니다. 오늘 먹은 생선은 접시에 배열된 순서대로 갈치, 꽁치, 고등어, 삼치였습니다. 오늘은 특히 담백한 삼치가 그럴 듯 하니 입맛에 맞았습니다.
창원에서 자취를 하면서 사들인 자그마한 디지털 TV를 평촌으로 가져와 아이들과 오래된 [무한도전]의 재방송을 본 적이 있습니다. 거기, 강신주 씨가 설명하는 '밥' 얘기가 나오는데요. 제대로 먹는 것과 그저 한 끼 때우는 밥의 차이를 말하는데, 돌이켜보면 창원에서의 저는 초창기에 몇 번의 아침 식사, 그리고 다수의 저녁 식사를 제대로 밥답게 먹었고, 이후에는 아주 가끔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밥은 그저 한 끼를 때웠던 것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 한 톨 한 톨 씹어 음미해 먹는 듯한 욱 주무관의 점심 식사가 제게는 멋진 이미지로 남았습니다. 나도 저리 먹어야겠다, 는 생각이 곧장 따라붙었죠. 하긴 경남 생활을 통해 얻어진 습관 중 하나가 '얼른 먹는 점심'이었습니다. 구내식당에는 사람이 많고 자리는 붐빌 때가 많았어요. 그러다 보니 팀원들은 허겁지겁은 아니지만 되도록이면 짧은 식사를 했고요. 오후 서너 시쯤 혼자 구내식당에 가서 먹는 라면이 좋았습니다. 라면이야 뜨거운 것이 맛이니까 그 뜨거움이 식사의 속도를 조절해주었습니다.
빠른 게 아니라 느린 것도 아니라 맛있게! 그렇게 맛있는 속도로 먹다보면 느리게 먹게 됩니다. '맛있는 속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속도. - 써 놓고 보니 그럴듯한데요.
먹는다는 행위 말고도 음식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우리는 알고 있죠. '네가 먹는 것이 곧 너다'였던가요, '먹는 것으로 치료하지 못한다면 약으로도 치료할 수 없다'였던가요...? 포이어바흐의 그런 명언도 가끔 떠올립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크게 아프고 난 뒤부터 음식을 먹는 태도를 다잡는 분들을 쉽게 볼 수 있고요.
다음번에 먹을 생선구이를 위해 저도 마음을 다잡습니다. 느린 속도로, 맛있는 속도로 먹겠다고. 그 속도가 건강한 속도가 되길 바라면서 말이죠.
아참! 오 CD님은 여전히 건재하십니다. 그림도 그리시고 무엇보다 열정적인 강의를 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어요.
느린마음, SLOW SLOW SLOW SL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