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적인
영화 <남한산성>을 본 지 만 하루가 지났다. 소설 <남한산성>은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명절에 찾은 아버지의 소담한 책장에는 그간 근무하신 이력을 증빙하듯 여러 자료들이 모로 서서 차곡차곡 횡으로... 그 속에 아마도 내가 읽은 다음 가져다 드렸을 [남한선성]이 꽂혀있었다. - 이 장면은 ‘역사소설’로서 남한산성의 값어치다.
역사 픽션이니 팩션이니 역사 그대론 아니라느니 기레기 어투의 잡스런 문투가 난삽한데... ‘역사소설’도 ‘역사적 상황을 기반한 영화’도 역사적 사실(을 비틀든 그대로든)을 어떤 관점으로 활용하는가는 ‘지금’에 비추어 비평할 필요가 있다. - 역사의 무게다.
이틀 지나 처가에 들른 차에 처가 앞 큰 스크린 하나만을 가진 극장에서 [남한산성]을 보았다. 극장을 나서면서 ‘저건 개념적 요설’이라며 힐난하는 내게 아내는 어쩐 일로 ‘지루하긴 했다’라며 내 말을 거들었다. (소설은 ‘말’에 대한 이야기라지?)
개념적 요설이란 과도한 스타일링을 말한다. <칼의 노래>는 감동적인 면이 없지 않았고, 그 문장의 단련이 어느 정도 ‘이야기적 깊이’를 유지하고 있었다. <현의 노래>, <남한산성>, <흑산>을 거치면서 작가의 역사에 대한 소설적 성취는 ‘기획 방향’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희생된다. 만약 ‘작가의 기획’이 메시지라면, 그것들은 그의 문단들처럼 중언부언된다. 다시 말해 개념에 머문다.
말하느냐, 말하지 않느냐
영화는 아마도 소설보다 더 심하게 개념적 요설의 뼈대만 남기고 마무리된다. 그게 다다.
인조: 기획 방향이 크리에이티브는 아니지 않으냐?
이조판서: 전하~! 그러하옵니다. 긴 카피가 필요하옵니다.
인조: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구나, 엇, 알 것도 같으다.
예조판서: 전하~! 저 카피라이터 현진현이를 능지처참하시옵고
좌의정: 그런 연후에 기획 방향을 조총으로 만들어
예조판서: 광고주의 심장을 찔러야 하옵니다.
인조: 고려할 것이 정녕 그것밖에 없단 말이더냐?
영의정: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뭐, 이런 내용이다. 영화 남한산성은. 현대에 비추어? : 너무 단순하다. 그냥 단순하지 않고 너무 단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