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지난 항구의
<항구의 여름>을 산을 오르던 중 처음 들었다. 오리지널 레코드였을 거야.
작곡가 피아졸라(Astor Pantaleon Piazzolla)의 프랑스 유학 시절의 스승은 나디아 블랑제(Nadia Boulanger)였다. 블랑제는 피아졸라에게 말했을지 모른다. 말했을 게 틀림없다.
네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하도록 해.
블랑제는 진정한 교사였다.
블랑제의 조언에 따라 피아졸라는 고국 아르헨티나로 돌아갔다. 그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작업한 음악은 어쩌면 ‘탱고’가 아니었다. 어쩌면 피아졸라는 이상한 탱고를 만들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항구의 지하에 있던 피아졸라의 작업실에는 괴한들이 들이닥쳤다. ‘탱고의 정통성을 해하는 놈이 있다. 그를 테러해버려’.
Astor Piazzolla : Verano Porteno
Aquiles Delle-Vigne(Piano), 1989
(오늘 듣고 있는 <여름>은 피아노 솔로다.) 피아졸라가 만든 탱고를 흔히 ‘새로운 탱고(Nuevo Tango)’라고 한다. 그는 순전한 춤곡이었던 탱고를 감상용 음악으로 바꿔 놓았다. 잘 닦은 구두를 신기보단 반도네온을 쥐고 밴드를 리드하고자 했을 것이다. 바흐처럼, 마일즈 데이비스처럼 이전의 음악을 연주와 감상의 묘미를 추구하는 음악으로 바꾸어 놓았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피아졸라가 춤꾼의 음악을 술꾼의 음악으로 새롭게 탄생시켰다고 욕을 하거나 환호했다.
너를 만난다는 것은 너의 현재뿐만 아니라
네가 살아온 과거의 시간과 네가 살아갈 미래의 시간까지 만난다는 말이다.
집을 짓는다는 건 당신의 다가올 일생과 마주하는 일이기에
건설, 그다음을 생각하다. - 시티건설
안도현의 시 그대로가 좋다. 시를 카피로 활용하면서(연결하면서) 건설이 거대담론이 되는 클리셰가 붙었다. 그러니 교보문고의 현판은, 그저 간단한(하지만 깊은) 그림을 덧붙여 놓은 것! 시를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았으면 어땠을까.
오래전 詩와 詩的인 것을 구분하는 글을 읽었다. ‘詩스럽다는 것’은 분명코 시가 아니라는 것이다. 글의 목적이 다르다는 것! 요컨대 시의 활용은 인용으로 그치고, 그런 다음 카피의 자세를 바꾸면 좋겠다.
적지 않은 가이드 속에서 카피를 쓰다 보면, 어딘지 모를 철 지난 항구에 다다른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 때가 있다. 그때면, 그렇게 아득해지기도 하지만 다음 계절을 앞당기기 위해 지난 계절에 빚어놓은 술을 몽땅 마셔버리고 싶어진다.
술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봄이건 여름이건 가을이건 겨울이건, 다시 봄이건 모든 계절은 술 마시기 좋은 계절이다. 그때마다 피아졸라의 <항구의 사계>를 들어야겠다.
하기는 피아졸라를 들으면서 맥주조차 마시지 않을 수 있을까? 철 지난 항구에 영원히 정박해서는 항구의 유행을 선도해 간 피아졸라. 그건 그렇고,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어떤 술을 마셔? 뭘 마시든 철 지난 항구에선 한잔 안 하고는 못 배겨야 광고인이고 시인이지.
그래, 그들이 만나는 지점이 철 지난 항구라고.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