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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 Hyun Nov 24. 2022

카피 클래스 004

#004 _ 놀면서 아이디에이션 하기

오디오에 불을 지핀다. 

1626 오디오용으로 개조된 송신관이 서서히 빠알간 빛을 발한다. 

느긋하게 찻물을 올린다. 

섭씨 85도가 될 때까지 더 느긋해도 좋으련만 물은 금세 

안온한 상태를 찾아버렸다. 앨범을 고른다. 아, 오늘은 

롤링스톤즈의 데뷔 음반이 좋겠다 싶어 뒤져보지만 찾지 못하고 

최근에 자주 듣던 트윈폴리오의 LP를, 플로팅의 대명사 AR-XA에 올린다. 


돌아가는 플래터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3점 지지의 저 턴테이블에 고정된 유연한 스프링 위에서 구름처럼 둥둥 떠서 돌아가는 플래터를 한참 바라본다. 둥실둥실, 턴테이블을 망치로 쳐도 저 플래터는 암과 함께 요동치고 움직이며 스타일러스를 튀겨내지 않을 것이다. (AR-XA의 오래전 광고는 턴테이블을 망치로 치는 장면이었다.) 아, 나는 저것이 크리에이터의 덕목이다, 하고 생각해본다. 저 튼실한 하우징은 기획 방향이다, 암과 바늘(스타일러스)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다, 우리 플래터(엠방)는 CD와 합을 맞추어 튼실한 기획 방향 위에서 노래를 만들어내는 것 아닌가! 소비자를 위해서 힘을 합치는 우리. 


음악이 들려온다. 

송창식의 목소리가 윤형주의 목소리가 어쿠스틱 기타 선율 위에 겹쳐진다. 

타이베이에서 사 온 발효차를 주전자에 부린다. 

차가 미묘한 기분을 피워 올린다. 

오늘 있었던 몇몇 순간을 떠올리며 간단한 일기를 적는다. 

차가 우러나면 채 선배가 선물해준 담백한 찻잔에 차를 따른다. 

차를 따르는 소리가 신호다. 이 스물아홉 채의 초고가 하이엔드 상품에 접근한다. 


송창식과 함께 삼성동의 대웅제약 기숙사 부지를 걷는다. 

일본 애니메이션에나 나올법한 큰 나무 한 그루가 우리를 막아선다. 

시선을 돌려 문을 열고 나는, 집 안으로 들어간다. 9호로 들어간다. 

‘히야~, 이런 정도의 집을 어떻게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을까? 

이런 집은 라이프스타일에도 영향을 미치겠지만 정신세계에도 

그 영향이 강하게 작용하겠구나…’ 생각하며 2층으로 올라가 본다. (후략) 


카피를 쓰고 대략의 스케치를 그렸다. 

그리고 어프로치를 되새겨 곱씹으며 앞단 정리를 한다. 

완성… 노트북을 들고 안방에 있는 아내에게 가서 물어본다. 

“여보! 이거 하이엔드 하우스를 위해서 만든 매거진 광고 썸네일인데 말이야. 

자 봐봐, 이거 어때? 일단 느낌?”

아내는 답이 없다. 다시 물어본다. 

“이게 삼성동에 지을 거고 딱 스물아홉 채만 짓는 고급주택인데 중심에 큰 나무가 있어.” 

“저리 가!”

나는 PT에 실패하고 서재로 돌아온다. 다시 딸아이에게도 시도해본다. (후략) 


집에서 가능한 이런 아이디에이션의 과정을 나는 회사에 그대로 옮겨보기도 했다. 그것 역시 재미있었다. 그리고 회사에서는 집에서와 달리 많은 동료들이 나의 아이디에이션 결과에 의견과 답을 주었다. 


아이디에이션은 괴롭든 즐겁든, 오직 그 과정에 달려있다. 그러므로 회사의 분위기 스케줄 제작디렉터의 캐릭터가 여러모로 관여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그 과정은, 즐기기에 충분하다. 크리에이터 입장에서 크리에이터의 관점에 집중해서 그 과정을 즐기면 그만인 것이다. ‘나의 발전이 회사의 발전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방식은 굉장하게 많다. 

아마도 큰애는 ‘아이디에이션을 롤과 접목시킬 방법은 없을까?’ 생각할 것이고, 

둘째는 ‘음… 메이컵과 연결시키지는 못할까?’ 

나는, ‘새로 들여온 비비언 마이어의 사진집을 가지고 썸네일을 해야지’ 생각할 것이다. 

아이디에이션이란, 각자만의 방식이 있고 그 모두 즐기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놀면서 아이디에이션 하는 방법_10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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