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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 Hyun Jun 29. 2023

문학과 광고 3

한 사내의 헤어질 결심  

한 여인의 첫인상이 한 사내의 생을 낙인찍었다 

서로 비껴가는 지하철 창문 

그 이후로 한 여인은 한 사내의 전 세계가 되었다 

우리가 순간이라는 것을 믿는다면 

한 사내의 전 세계는 순식간에 생겼다 

세계는 한없이 길고 어두웠으나 

잠깐씩 빛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웃을 때는 입이 찢어지고 

울 때는 눈이 퉁퉁 붓던 한 사내 

그러나 우리가 순간이라는 것을 믿는다면 

한 사내의 전 세계는 순식간에 무너졌다 

표정의 억양이 문드러지고 

아무리 움직이려 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밤과 낮의 구별이 없어졌다. 


과연 일부러, 

도대체 일부러 한 여인이 한 사내의 세계를 무너뜨렸겠는가 

자기도 어쩔 수 없이, 혹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가 그런 말을 믿는다면 

우리는 아무도 미워할 수 없으리 

한 사내는 한 여인을 용서하였으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는 죽음을 직시하게 되는가. 


이제 한 사내는 한 여인의 창가에 있다 

닫힌 세계는 그 스스로 열어 보이기 전까지는 

두드려도 열리지 않았다 

한 사내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웅얼웅얼거리며 혼자서 

한 여인과의 모든 대화를 끝냈다 

깜짝 놀라 공기총 방아쇠를 당겼다 

한 여인의 첫인상이. 


-김중식의 [아직도 신파적인 일들이] (문학과지성사.1993) 



    복잡하다면 한없이 복잡하고 간단하다면 허무하게 간단한 것이 바로, 세상이고 문학이고 광고이다. 그리고 직장생활이다. 취향의 강도는 대략 50단계쯤 될 것이고, 애정의 대상이 있어야 애정이 생기지 않을까? 사람이든 사물이든 영적이든 물적이든 뒤섞이든. 그렇지 않을까, 신파적인 일들이 벌어져야 애정이 생기고, 애정이 생겨야 신파적인 것들이 진정한 신파가 되는 거 아닐까. 


    시인은 술을 좋아하는가, 술 마시기를 좋아하는가. 술을 마시다 보니 '헤어질 결심'을 하게 된 건가. 마침 오늘 새벽 큰 비가 예고되었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걸어가요'라는 노랫말이 있는데 그건 좀 처연할 수 있겠다 싶다. '물 흐르듯' 글을 쓰고, 그렇고 그렇게 글을 쓰고, 그렇게 뒤섞이듯 살아가고... 


    우리가 사물의 순간을 '맞이'했을 때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공산품의 그 순간을 어떤 언어로 기획해야 할까? 이것은 과학일까? 감도일까? 내장으로부터 불타 오르는 열정일까? 옛날옛날에 코에 점이 박힌 한 여배우의 앵글에 대해서 주저리주저리 떠들고 다니던 아트디렉터가 한 사람 있었다. 그의 주장은 과학일까 감성일까, 신파적인 모든 일들은 아니었을까. 시는 흩어져 다시 모이면서 파국을 맞이한다. 그것은 시 안에서 새로움이다. 광고는, 용서 없이 마무리되고 만다. 입이 찢어져라 웃는 순간은 어떻게 표현되고 눈이 퉁퉁 붓도록 우는 찰나들은 어떻게 옮겨 놓을 수 있나. 

    찢어지게 붓도록 여인을 살펴보는 수밖엔 없다. 명심해라, 이별이란 자잘한 고민과의 헤어짐이다. 그래서 신파지만, 신파의 원어는 'New Wave'. 뻔한 사물에서 새로운 감정을 발견하고, 뻔한 마음에서 자잘한 편린을 획득하는 것. 인생을 사랑하듯 광고를 사랑하는 것. 어렵다 어렵다 하지 말고 읽히는 그대로 느끼는 것. 그런 것. 한 여인의 첫인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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