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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 Hyun Jun 28. 2023

문학과 광고 2

우유를 커피에 팔지 않았다 

바람의 제자가

겨울 속으로 찾아가 문안 드렸다

참나무 숲이 말했다

아무리 빈궁해도

난 이 겨울 추위를 장작으로 팔지 않았다

나는 추위로부터 자유로워했지만

추위가

나를 평생 구속했다는 것을.


-조정권 [참나무 숲에서 거절당하다] (문예중앙.2011여름) 전문 




    '폴 바셋(Paul Basset)'은, 잘 기획된 브랜드다.(인간 바셋은 호주사람 바리스타) 이 집의 유기농 아이스크림이 좋다. 파스퇴르도 맛있지만 나는 폴 바셋이다. 우유 역시 매일이 좋고. 그렇지만 '자유'와 '구속' 중에 무엇이 좋으냐고 물으면 답을 하지 못한다. 살만큼 살아보면 과연 자유가 좋은 건지, 구속이 나쁜 건지... 반드시 그런 것은 별로 없다. 

 

    '남양'과 '매일', 우유를 생산하는 두 곳의 컴퍼니가 있었다. 불매운동에 휩싸인 남양은 그 이전에 이미 '카제인나트륨' 이슈로 밉상이 되었다. 내 기억(기억에 의존하는 시시껄렁한 이야기일 뿐 마케팅, 디테일 같은 건 이 글에 없다.)에 매일유업의 우유를 벗어난 첫 사업은 '두유'였다. 남양의 커피는 나빴고 매일의 두유는 좋았다. 그런 다음의 스텝, 매일은 커피를 시도한다. 그게 바로 폴 바셋이다. 

    '매일은 겨울 추위를 장작으로 팔긴 했지만, 겨울 추위를 장작으로 팔았다.' 대충 봐도 커피전문점의 음료는 우유음료다. (커피에 대한 전문적인 태도를 가지거나 기술적인 푸어오버 방식을 가진 커피전문점 브랜드들은 예외) 우유 전문점에서 우유에 에스프레소를 타서 파는 메뉴가 라테이고 거품 낸 우유에 에스프레소와 시나몬을 곁들이면 그게 카푸치노다. 그 우유만으로 차갑게 응고시키면 아이스크림인 건가. 매일의 확장성은 우유라는 본질에 기반한다. 어쩌면 우유로부터 자유로워했지만 우유가 매일을 평생 구속한다. 암튼 매일은 맛있다. 라테도 맛있고 싱글오리진도 좋고 룽고라는 형식도 좋다.  


    매혹적인 조정권 시인의 시상에 커머셜을 대입해 죄스런 마음이다. (수년 전의 페이스북 '과거의 오늘'이 이 시를 다시 읽게 해 주었다.) 이 시를 시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시인이면서 광고카피라이터'인 분들이 생각난다. 명카피라이터는 분명하고, 좋은 시인일지도 모르는 윤준호/윤제림의 경우를 보자.



재춘이 엄마가 바닷가에 조개구이집을 낼 때

생각이 모자라서, 그보다 더 멋진 이름이 없어서

그냥 '재춘이네'라는 간판을 단 것은 아니다.

재춘이 엄마뿐이 아니다

보아라, 저

갑수네, 병섭이네, 상규네, 병호네.


재춘이 엄마가 저 간월암(看月菴) 같은 절에 가서

기왓장에 이름을 쓸 때,

생각나는 이름이 재춘이밖에 없어서

'김재춘'이라고만 써놓고 오는 것은 아니다.

재춘이 엄마만 그러는 게 아니다

가서 보아라, 갑수 엄마가 쓴 최갑수, 병섭이 엄마가 쓴 서병섭,

상규 엄마가 쓴 김상규, 병호 엄마가 쓴 엄병호.


재춘아, 공부 잘해라!


-윤제림시 [재춘이 엄마] 



    윤제림 시인(카피라이터로는 '윤준호'라는 이름을 쓴다.)은 이 시를 썼고, TBWA에서 이 시를 바탕으로 SK텔레콤의 커머셜을 만들었다. 우선 '인사이트'를 시에서 가지고 왔고 카피도 가져다 썼다. (이전에 윤준호 카피라이터는 일간지의 날개에 SK텔레콤의 명의(?)로 긴 카피들을 썼다. 이 인사이트의 파급효과는 거액의 카피료를 넘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내 93학번 동기 중에 필우라는 아이가 있었다. 필우는 늘 기타를 가지고 다니면서 농담처럼 말했다. '상업적인 이유로는 연주하지 않아.' 필우는 '자유'와 '구속'을 구분할 수 있었을까? 나는 늘 말한다. '내가 잘하는 건 한 가지도 없지만 그래도 걔 중에서 가장 잘하는 것으로 돈을 벌며 살고 싶다.' 자유와 구속이 만나는 순간일까? 아무렴 나는 우유를 커피에 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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