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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 Hyun Jun 29. 2023

문학과 광고 4

생각의 끝물 사러 

끝물은 

반은 버려야 돼.

끝물은 썩었어. 싱싱하지 않아.


우리도 끝물이다.

서로가 서로의 치부를 헛짚고

세계의 성감대를 헛짚은.

내리 빗나가던 선택들. 말하자면

기다림으로 독이 남는 자세.

시효를 넘긴 고독. 일종의 모독.

기다려온 우리는 치사량의 관성이 있을 뿐.

부패 직전의 끝물이다. 


제철이 아니야.

하지만 끝물은

아주

달아. 


- 김소연 [끝물 과일 사러] (문학과지성사, 1996)



    앞줄 맞추기로 써 뒀지만 이 시의 원문 그대로라면 뒷줄 맞추기다. 끝물에 대해 썼기 때문에 뒷줄, 그러니까 끝에 맞춰서 활자화한 것인가. 유치하고 유치하지 않고를 떠나서 오른쪽 페이지에 있는 이 시는 진짜 끝물처럼 난간, 페이지 끝 손이 잘 베이는 그 끝으로 흘러내릴 것만 같다. 물론 물론, '기다려온 우리는 치사량의 관성이 있'다는 저 중얼대는 노래가 참 아름답기도 하다. 카피가 대체 그림 속에 혹은 백지 속에 어디에 '놓이는가'는, 의미를 만들어낸다. 사실상 뻔한 이야기다. 그렇지만 뻔해서 모두 대충 배치한다. 대충 배치해도 소비자 독자의 눈도 뻔해서 그래서 익숙해서 별 탈없이 지나갈 것이다. 그렇게 별 탈없이 살다 죽는 것도 좋다. 아무튼... 별 탈이 없는 거니까. 


    나는 끝물이다. '나도 끝물이다'라는 의식보다는 '나는 끝물이다'는 독립적이고 순수한 자각이다. 끝물인 내가 대견한 것은, '달'다는 지점이다. 당뇨를 앓고 있는 우리 모두가 끝물인데 그게 달아서 좋다는 것도 자각하니까 스스로를 대견해하는 나는 진짜 끝물 같다. 

    제철 녀석들도 모두 모두 달아질 날이 온다. 혹자는 제철에도 다디달겠지만. 


    광고인들은 끝물이 빨리 온다. 단맛 한번 빨리지 못하고 끝물에 더위에 흐드러져버린 순수한 영혼들도 많다. 그 쓴 끝물의 넋들은 또 그들끼리 재밌다. 

    재미있는 제철을 느껴왔기에 쓰다 달다 끝물이나마 구분하는 것이다. 제철에 과즙을 팡팡 터트리지 못했어도 이따금 우아해서는 제철스러운 60년대 펜더의 기타 소리 같은 과즙을 세상에 흩뿌리는 것이다. 그러니 부패 직전의 순간을 찾아야 한다. 가령, '미국 어디까지 가봤어?' : 아, 이런 기획 이런 카피는 부패 직전의 순간에 있는 것만 같다. 나이의 끝물이 아니라 생각의 끝물에 있었기 때문이겠지. 

    꿈은 두 종류가 있다. 이룰 수 있는 꿈과 이룰 수 없는 꿈. 가질 수 있는 꿈과 가질 수 없는 꿈. 드림카도 포르셰가 있는 반면 페라리가 있지. 이 발견은 끝물에서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여기, 가질 수 있는 꿈이 있다'라고 기획했다. 아, 끝물이라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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