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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 Hyun Jan 08. 2024

커피니스

믹스커피


좁디좁은 독서실로 돌아온 이지은은, 생수부터 전기주전자에 넣고 가열 버튼을 누른다. BGM은 동시간에 주점에서 부르는 이선균의 노래다. 송골매의 아득히 먼 곳이 흐르면, 이지은은 믹스커피 두 봉지를 연필꽂이에서 뽑아 든다. 두 봉지다. 


동서식품을 광고주로 커피광고를 만들 때 배운 용어 중에 ‘커피니스' Coffeeness라는 것이 있다. 술을 마셔야 할 상황에서는 술을 마시고, 물을 마셔도 될 상황에서는 물을 마시고, 차를 마실 상황은 차를 부른다. 그런데 커피를 마셔야만 할 인간의 감정이 있다. 그 감정의 순간을 커피니스라고 한다. 저 동결건조, 프리즈-드라이된 커피를 솔루블(알갱이)이라고 부른다. 솔루블 조금에 프림(기름덩어리)에 설탕을 섞었다. 이지은의 경우, 믹스니스는 배고픔으로부터 온다. 커피니스는 콜라를 마셔도 좋을 상황으로부터 맥주를 마셔도 될 법한 상황까지인 것 같다. 믹스니스는 커피의 공간을 만드는 것일까? 지금에 와서 보면, 이선균이 안타깝게 명을 달리했으므로 알코올니스로 느껴진다. 그런 것만 같다. 


두 봉지 정도는 먹어줘야 배를 채운다. 뭐 나는 이지은만큼 가난하지는 않기 때문에 한 봉지를 기호식품으로 마신다. 마실 때 젓지 않는다. 젓지 않으면 설탕과 프림은 아래로 가라앉는다. 프림은 위로 좀 떠올라온다. 그 정도는 마셔준다. 부드럽지도 달지도 않은 그런, 믹스커피... 담배를 끊을 때 그렇게 끊었다. 


담배가 생각날 때 사무실 아래로 내려갔다. 흡연공간으로 갔다. 근처로 갔지만 흡연공간에 발을 딛진 않았다. 근처에서 이어폰으로 한 곡의 절절한 음악을 들었다. 그렇게 몇 날 며칠 담배 대신 음악을 들었다. 그렇게 담배를 끊었다. 매일 마시고 싶은 한잔의 술, 그 한잔이 쌓여 죽음이 된다는 아내의 말에도 마셨고 마시고 마실 것이다... 마시지 말자, 믹스커피 한 잔도 나쁘지 않다. 사람의 죽음이 슬품과 더불어 안도감을 준다는 사실에, 나는 살아있다는 사실에 정확하게라면 나는 죽지 않았다는 사실에 나는, 괴롭고 슬프다. 그래서 믹스커피를 마셔야겠다. 믹스니스는 우울한 감정 대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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