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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 Hyun Nov 03. 2023

그 사람을 생각하는 시간 3

바리스타 K

   오리나무 몇 그루와 단풍나무, 그리고 느릅나무가 자란다.
나무들은 뒤편에 있는 ‘정릉(靖陵)’과 정릉을 위한 정자각을 감싼다. 



   선릉에 가을이 내려앉으면 커피집에 앉아서 담장 너머, 빛 속에 가려진 이파리들을 바라보곤 했다. 그랬는데 올 가을부터는 그래도 될지 잘 모르겠다. 그 커피집 커피 만들어주던 K가 여름부터 보이질 않으니 말이다. (최근 십 년 정도, 띄엄띄엄 한 해에 한 번도 갈까 말까 했던 것이 후회가 된다.) 선릉 근처만 가도 떠오르는 K의 얼굴 표정... K가 잊히면 가을은 가을답지 못할 수도 있다. 

   "실례입니다만 혹시 전에 여기서 일하시던 분은... 지금..."

   "저희도... 잘 모릅니다."

   여전히 북적이는 커볶... K가 혼자 하던 일을 세 명이 함께 하고 있었다. 


   옛날(2012년쯤)에 선릉, 그러니까 삼릉공원 세 개의 릉이 있는 그 공원 담벼락 가에 있는 회사를 다녔다. 회사는 단릉인 중종의 능, 즉 정릉의 담벼락 너머에 있었고, '커피볶는집'이란 간판을 내 건 커피집은 정릉의 정자각 너머에 있었다. 업무를 준비하면서 진하게 코스타리카를 한 잔 마시고, 릉을 향해 잠깐 걸으면 사무실에 도착했다. 물론 이런 경우는 그 회사를 다니는 삼 년 여 중에 한두 번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출근 도장부터 찍은 다음에야 커피볶는집으로 향했다. 내가 해장커피를 시켰던가? 속이 너무 아픕니다.라고 하면 K는 순식간에 커피를 만들어주곤 했다. (드립커피를 어떻게 그리 순식간에 만들었는지요?) 

   그땐 커피에서 우러나는 꽃향기를 몰랐다. 그냥 커피가 좋았다. (주로 만델링과 예가체프를 마셨다.) K가 휴대용 그라인더(아직도 가지고 있다)를 선물했다. 그리고 언젠가 엽서를 건넸다. K는 종종 CD를 미리 준비해 뒀다가 커피를 마시러 들리면 CD를 선물했다. 매일 들리던 시절이나 계절에 한 번, 한 해에 한 번 들리던 시절에도 K는 어김없이 CD를 준비해 두고 있었다. (나는 지금도 그 CD들의 목록을 외울 수 있다.) 

   아르투르 베네디티 미켈란젤리의 슈만 사육제 CD가 들려주던 그 사운드가 여전히 생생하다. 미켈란젤리의 아티큘레이션은 꽃향기의 여운과도 같다. 그리고 K가 선물한 CD를 통해서 키스 재릿의 솔로 피아노앨범 'The melody at night, with you'를 처음 들었다. - 그러고 보면 K와 함께 제대로 음악을 들어본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그런 것 같다. 


   Keith Jarrett, The melody at night, with you

   1999


   건강해야 해, 지현 씨. 

   당신의 커피는 잊을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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