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잃어버린 바이올린, 호된 입국 신고식
이민국 사무실의 긴 줄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결코 적지 않은 숫자인 40~50개의 대기 좌석이 마련돼 있었지만, 출국장을 빠져 나온 인파가 몰려들면서 순식간에 자리가 찬 모양이었다. 우리가 들어갔을 때는 100 명은 족히 되는 대기 행렬 중 절반 이상은 짐과 서류뭉치를 든 채 서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커다랗게 ‘국경경찰’(Border Police)라고 씌어 있는 검은색 유니폼을 입은 이민국 공무원들 얼굴에선 미소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들의 표정에선 크리스마스 다음 날 눈치도 없이 밀어닥친 이방인들에 대한 짜증이 묻어 있었다.
1시간여를 기다렸을까. 아내와 아이들이 심사를 받을 차례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나는 바깥에 놓아둔 짐이 별 탈 없이 있는지 궁금했다. 비자를 받는 사람들은 대부분 장기 체류 예정이어서 가방을 몇 개씩 이고지고 오기 마련. 이들이 이민국 사무실 안으로 그 가방을 모두 끌고 들어온다면 그렇지 않아도 사람으로 미어터지는 사무실은 아마 폭발해버릴 것이다. 그래서 대기실 바깥에는 별도로 짐을 놓아두는 장소를 지정해놓았다. 여권과 지갑을 비롯한 귀중품은 모두 휴대했기 때문에 짐을 바깥에 잠시 놔둔다고 해서 입국 수속을 받고 비자를 받는데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다. 우리 가족 역시 대형 이민 가방 8개와 아이들 바이올린 두 개를 바깥에 두고 들어갔다.
내 마음은 왠지 계속 불안했다. 인천을 떠날 때부터 아무런 사고 없이 무탈하게 도착하긴 했지만, 크고 작은 사고들이 있었다. 평소 침착하기 그지없던 아내가 항공권을 찾지 못해 허둥거리던 모습은 꽤나 낯설었다. 두 시간 넘게 기다려 이민국 직원 앞에 섰을 때 벌어진 일도 정신을 쏙 빼놓았다. 공항에서 이곳으로 나올 때 입국 심사를 받았다는 체크가 된 서류를 달라고 하는데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내가 뭔가를 착각했다. 나는 “좀 전에 입국 심사대를 통과할 때 보여줬고, 거기서 가져갔다”고 했다. 하지만 이민국 직원은 단호하게 말했다. “너(you)가 착각한 거야, 분명히 돌려주게 되어있다. 찾아봐라.” 귀신 곡할 노릇이었다. 가방을 뒤져보니 실제로 파일 뭉치 한 귀퉁이에 체크 표시가 된 서류가 끼어 있었다. 나는 입국 심사 때 보여주고 돌려받은 기억이 없는데 고이 파일에 넣어 보관까지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순간 허둥거렸지만 이내 안도감이 찾아왔다. 오히려 이민국 직원으로선 자기 말이 옳다는 것이 입증됐기 때문에 나름 기분이 좋은 듯 했다. 그는 콧바람까지 불며 아내와 아이들 둘의 비자 서류를 만든 뒤 내게 보여주며 틀린 내용 없는지 체크하라고 했다. 이름 철자부터 여권번호 출생일 등 나중에 문제가 생길만한 일은 없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몇 번이고 반복해서 내용을 체크하고 “노 프로블럼” 이라고 큰 목소리로 대답하기까지 했다. 이민국 직원은 이번에는 아내에게 “노 잡, 노 스터디”라고 재차 강조하며 비자 서류를 내줬다. 아이들은 학교에 입학 허가를 받아 유학을 온 것이고, 아내는 그 아이들을 돌보는 가디언으로 비자를 받았기 때문에 일을 해서도 안 되고 공부를 해서도 안 된다는 말이었다.
드디어 공항을 나선다!! 혼을 빼놓을 만한 일은 첫날 이민국 사무실을 나서면서 또 한 차례 벌어졌다. 세 시간 가까이 걸린 출국 심사에 비자 발급까지 끝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짐을 잔뜩 실은 카트가 있는 곳까지 왔다. 그 사이 수시로 내가 오가며 짐 상태를 살폈기 때문에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좀도둑이 접근할 수도 없는 공항 입국장 안쪽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내가 말했다. “바이올린 하나가 없어.” 그러고 보니 정말 바이올린이 하나 밖에 없었다. 아내가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인도계로 보이는 한 남성이 유아용 바이올린을 들고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얼핏 봤다는데, 그게 설마 우리 물건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고 한다. 내가 마지막으로 나와 확인했을 때도 분명히 바이올린 두 대가 이민 가방 위에 고이 모셔져 있었는데 사고는 그 사이 벌어진 것이었다. 답답했다.
대한항공 카운터부터 공항 시큐리티까지 몇 군데를 돌아다니다가 내가 아내와 짐을 맡고, 우리를 맞이하러 온 유학원 현지 직원 이경은(가명)씨가 아내와 함께 공항에 가서 분실물 신고를 하고 돌아왔다. 아직 캐나다 전화번호가 없어 현지 직원 전화를 연락처로 남기고, 집 주소는 델타에 미리 얻어 둔 우리 집 주소를 기재했다. 소속된 곳(장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우리의 주소가 서울이 아닌 밴쿠버라는 것을 실감했다. 과연 이 거처로 모든 것들이 돌아올까.
첫날부터 나름 신고식을 치른 셈이었다. 아등바등 챙겨온 물건을 잃어버렸으니, 애써 액땜이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독일 수밖에 없었다. 이민 가방을 겹겹이 위태롭게 겹쳐 얹은 카트를 밀고 공항 건물 바깥으로 나오니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얼굴에 닿는 차가운 기운이 서울의 그것과는 꽤 달랐다. 이곳은 북위 49도. 서울에서 느낀 것과는 다른 북풍이었다. 올해는 유난히도 북극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기세가 강하다는데…. 우리를 맞이하는 이 나라의 태도가 그리 호락호락할 것 같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