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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닿 Dec 29. 2021

나는 겨울에 태어났으나 여름에 다시 태어났다.

그들을 만난 8월 말.

이 글은 지극히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임을 잊지 말고 이 글을 읽어주기를 바란다. 뭉뚱그려 하나의 덩어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내가 제일 의지하고 있던 엄마가 무너지고 다시 회복하는 여름에 나는 국비지원 학원을 등록했다. 학원 선생님을 그만두고 상담가가 되겠다던 것을 포기했다. 엄마의 정신적 붕괴를 맞이한 순간 나는 걷잡을 수 없이 위태로웠고, 스스로가 단단하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올해 초 일기를 다시 볼 수 없다. 다시 그 감정들이 물밀듯이 쓸려와 아직도 속을 울렁거리게 만든다.


 컴활을 따고 일반사무로 일을 시작해 돈을 벌며 하고 싶은 일을 천천히 찾아볼까 싶었는데, 웹디자인&퍼블리셔 양성 과정을 보게 되었다. 학창 시절에 포토샵과 간단한 홈페이지를 만들어 본 적이 있기 때문에 추억도 돋고 해서 흥미가 생겼다. 수도권이면 잘 가르치는 학원을 찾고 골라서 가겠지만 여기는 시골 중의 깡시골이라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았고 등록했다. 7월 말에 개강했고, 예상한 대로 재미있었다.



한 달이 지나고 8월 말, 나는 한 앱을 알게 되었다. 비혼 여성을 위한 어플 '페밀리'였다. 거기서 많은 자매들의 말말말을 보게 되었고, 행복함을 느꼈으며 야망이라는 단어도 알게 되었다. 이전까지의 나는 언제나 회피했으며 무기력했고, 우울했다. 새벽 2시에 잠들어 4시에 깼다가 6시에 깼다가 다음에 알람을 듣는 밤날이 이어졌는데 우울증의 전조 증상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전에도 우울증을 겪었고, 자살충동이 몇 차례 있었던 사람이므로 (상담받기 전까지 당연하게 우울증인지 몰랐다.) 술과 담배보다 도취되기 쉬운 우울의 특성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았고 두려워 아무도 만나지 않았는데 인터넷에서 만난 그 자매들이 나를 일으켜 세워주었다. 멈추지 마. 살아만 있어. 너는 지금까지 살아온 것만으로도 충분해. 대단해. 멋있어.

 이런 말을 익명의 누군가에게 또 들을 수 있는 날들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위안이 되었고 눈물이 쏟아졌다. 더는 회피하지 않고 마주하고 싸울 것이라 생각했고, 마침 또 눈물을 쏟아내는 이야기가 있었기에 운동을 시작하고 꿈에서 깨어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감히 말하건대 그날은 내가 다시 태어난 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제 만 4개월이 되었는데 달라진 점을 설명하자면,

 첫 번째, 우울함이 완전히 사라졌다. 매일 살아있음을 느낀다. 매일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고는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아직까지 미루는 습관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확실히 노력하는 만큼의 결과, 나태했던 것만큼의 불편함을 겪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때까지의 내가 운이 너무 좋았던 것이지. 이제는 내가 노력한 만큼 운이 따라주어서 오히려 좋다.


 두 번째, 운동을 시작했다. 운동 모임에 가입해서 운동을 시작했다. 운동도 매일 하는 것이 아니라 약간 양심에 찔리긴 하지만 어쨌든 한 달에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운동을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성장했음을 깨닫는다. 우울증에 걸리기 쉬운 이유가 운동을 하지 않고, 햇빛을 보지 않고,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 것인데 나는 4개월 만에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운동도 하고, 햇빛도 보고, 제대로 먹고, 잔다.


 세 번째, 주식을 시작했다. 미니스탁 앱을 깔아서 미국 주식을 시작했다. 초심자의 행운이 작용해서 시작하자마자 치킨 사 먹을 정도의 수익을 얻었고, 지금은 공부와 함께 쫌쫌따리 사면서 묵혀두고 있다. 한때 미장이 안 좋을 때 마음이 많이 흔들리고 불안했는데 이것을 잡아준 자매들이 있었기에 패닉 바잉을 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네 번째, 하고 싶은 목표가 생겼다. 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 그냥 바다 위에 맨 몸으로 둥둥 떠다니는 사람처럼,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나 자신을 방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여름에 플래카드를 발견하고 아카데미에 대한 목표가 생겼다. 또 감히 말하건대 운명이 아닐까, 나를 변화시켜주려는 그런 운명. 계속 까먹고, 행동을 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그런 기회 말이다. 어떻게 그때 그 플래카드가 내 눈에 보였을까. 그리고 하겠다고 마음을 어떻게 먹었을까. 욕망 같은 것이 없었다고 나도 모르게 스스로를 짓눌렀나 보다. 어렸을 때의 욕심쟁이인 내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저 억눌려 있었나 보다. 하도 안 될 것이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듣고 살아서.


 다섯 번째, 책을 많이 보게 되었다. 10대 때 나는 소설만 봤다. 판타지 소설, 연애소설, 추리소설 등등. 초등학생 때부터 도서관을 좋아했고 여전히 도서관을 좋아했다. 도서관에 가면 신기하게 어깨에 있는 모든 긴장감이 풀린다. (그래서 나보고 학자를 하라고 그랬나?) 보고 싶은 책은 한없이 많아 욕심껏 한계까지 빌려서 보고 못 본 것도 한없이 많은, 그래 놓고도 읽고 싶은 책이 더 많은 그런 나날을 보내고 있다. 블로그를 처음 시작했을 때도 책 리뷰에 관해 쓰고 싶다고 생각해 개설했는데 어째 지금은 일상 이야기밖에 하고 있지 않으니 반성해야겠다.


 여섯 번째, 창작을 다시 시작했다. 나의 원대한 꿈은 소설가였으며, 예술을 하지 않고서는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 생각하며 창작을 꾸준히 했다. 그렇지만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스물둘에 완전히 놓았다. 학업을 위한 글쓰기만을 했으며 최근까지도 문학적 글쓰기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미련인지, 열망인지, 기회인지. 불현듯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구체화시켜서 글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천천히. 정말 천천히 다시 시작했다. 딴짓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매우 천천히. 그때는 '완벽한 글쓰기'에 대해 매몰되어 나 자신을 망쳤지만, 다시는 그러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은 존재이며,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일곱 번째, 내가 너무 좋다. 스스로를 좋아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혼자서 생각해봤는데, 그렇게 많지 않을 것 같다. 특히 여성들은 더더욱. 사회는 여성의 부족함에 대해 자꾸 말을 얹는다. "어디가 이상하다.", "살을 빼라.", "너무 말랐다.", "뭐를 고치면 더 예뻐질 것이다.", "그런 옷은 안 어울린다.", "화장 촌스럽다." 등등. 아무것도 없이 홀딱 벗은 자신의 모습을 좋아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고민한 적이 있다. 나도 그러해 다이어트 약을 사 먹었고, 화장을 했고, 불편하게 머리를 길렀으며, 퍼스널 컬러며 어쩌고며 소비를 엄청 많이 했다. 그게 나 자신을 학대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남에게 보이는 나'에 신경 쓰느라 '내가 보는 나'를 생각하지 않은 것이었다. 코로나19가 있어서 많이 슬프고, 불편하고, 울고 했지만, 유일하게 좋은 점이 있다. 바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단기간에 너무 많은 살이 쪘어. 그럼 뭐 어때. 건강하니까 됐어.

 미용실을 가지 않아 머리가 엉망이야. 그럼 뭐 어때. 나중에 미용실에 가면 한 번에 자를 테니 돈 아끼고 좋네.

 화장을 하지 않았어. 그럼 뭐 어때. 어차피 마스크 때문에 오히려 불편해.

 새롭게 옷을 사지 않았어. 그럼 뭐 어때. 이때까지 사놓은 옷 중에 안 입은 옷을 입을 기회야. 오히려 좋아.

 "그럼 뭐 어때"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하니까 엄청난 지원군이 생긴 기분이 들었다.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다. 단점만을 발견하던 나를 버리고 나의 장점을 찾았다. 이렇게 생겨서 마음에 들고, 이런 성격이 마음에 들었다. 이런 부분을 고치면 좋을 텐데 라는 생각을 버리고 이런 부분을 부각해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게 바로 그토록 배우고 싶었던 긍정적 마인드?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혼자서 낄낄 웃는다.


 즐겁다. 감사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과 경험에 대해 소홀이 했다는 사실에 너무 미안해졌다. 이 위에 감히 다시 태어났다고 말했으니, 앞으로 많은 것을 감사하며 살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감각들을 많은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당신이 잊고 있던 기억, 꿈, 능력을 찾아 발견해 사용하며, 삶이 감사하고 즐겁다는 감정을 마구 느껴 살아줬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주변부터 그런 경험을 겪도록 노력해야겠다.

 

이 글을 끝까지 읽은 당신에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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