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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닿 Jun 11. 2021

물건에 얹혀 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 사지 않는다.

 다이소 제품으로 미니멀리즘을 깨닫다니 저렴한 것 아니야?라고 할 수 있겠지만 꾸준한 N년간의 지출을 생각하면 다이소에 받친 돈만 수백만 원이 될 것이다.

 

  경제적인 것도 있지만 심경의 변화가 분명하다. 많은 물건이 나에게 행복함을 주지 않을 거란 확신. 그래서 충동성을 억제하고 사색하는 기간이 길어졌다.

 ‘정말 필요한 물건인가?’, ‘없으면 안 되는가?’, ‘1년 후에도 이 물건을 사용할 건가?’ 등의 고찰 말이다.



 이러한 행동을 하기 전엔 다이소에서 마스킹 테이프와 스티커를 샀던 소비들이 있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온 사람들이 다꾸를 할 때 나도 다꾸! 잘할 자신 넘쳐! 나도 다꾸 좋아해!라고 생각했던 전적 때문에 다양한 색색들이 펜도 샀더랬다. 내가 갖지 못하는 신상이 나왔다? 어머 이건 사야 해! 하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구입했다. 천 원, 이천 원의 소비는 금세 만 원이 훌쩍 넘어간다. (초등학생 때부터 마음에 드는 노트를 사는 습관은 아직 고쳐지지 않았다.)

 처리하지 못한 마테와 스티커가 다꾸는 무슨. 심플하게 기록만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예쁜 쓰레기로 전락해버렸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검은색 펜 하나면 충분하다. 삼색도 형광펜도 필요 없이 그저 검은 펜 하나. 그래도 펜 종류는 취향을 탄다.  약간 사설을 늘어놓자면 동아 Q노크 0.4가 제일 마음에 든다. 적당한 두께감이 있고 쓸 때도 부드럽고 비침도 거의 없는 편이다.




 책 사는 것도 좋아했다. 온갖 앱을 다운로드하여 실시간, 일간, 주간, 월간 베스트셀러를 확인하고 스테디셀러도 확인한다. 그리고 그 책을 보지 않으면 어쩐지 뒤떨어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사고 봤다.

 그 외에도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책 소개를 보고 마음에 들어서, 이번 달 굿즈가 너무 예뻐서 등등의 나만의 변명을 늘어놓으며 책을 샀다. 양친께서도 책을 좋아하시기 때문에 매달 오는 택배에 대해서 뭐라고 하시진 않으셨지만 문제는 내가 읽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까워서 중고서점에 판매하지도 못한다. 그러다가 리셀 기간이 놓치면 가격이 한참이나 떨어져 어쩐지 짐이 되어버린다. 지식을 탐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쓰레기는 아니지만 어쩐지 자리를 차지하는… 어중이떠중이 같은 느낌.

 배우는 것도 좋아해서 학습서를 막 산다. 그것 역시 흥미가 떨어지면 당연히 짐이 된다. 앞장 겨우 몇 쪽 풀어놓고 다시 판매하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흥미가 떨어져서 시험을 치기에는 당연히 과락할 것 같고… 그렇다고 버리기에는 돈이 너무 아깝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가 망한다.


 이 소비의 결론은 책을 사지 않고 빌려 보기로 했다. 한계 권수까지 빌려서 책상에 올려놓으면 그것만으로도 만족감이 생긴다. 그러다가 한 장 두장 넘겨서 완독 하면 뿌듯함이 생기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단번에 덮어버릴 수도 있다. 돌려주면 되니까 자리 차지도 하지 않는다.

 물론 걸어서 15분이면 도착하는 가까운 거리에 도서관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게으른 나는 생각한다. 멀면 안 가지.

 마지막으로 책을 산 기억이 2년 전이다. 그것도 원서 공부한다고 해리포터 원서 전집을 사기 위해….

 물론 아직도 마법사의 돌을 보고 있다. 호그와트 입학도 안 함….




 사놓고 쓰지 않는 노트들은 내 마음대로 북바인딩을 해서 작게 만들어 사용한다. 처음은 단어장으로 만들어 걸어 다니며 외웠고, 일회용 컵홀더 종이를 표지로 써 아침에 눈뜨자마자 쓰는 메모장으로 만들었다. 그다음은 크라프트지로 된 표지를 리사이클링 해 작은 노트로 재탄생시킬 예정이다.

 이런 생활이 가능한 이유는 유튜브가 잘 되어 있어서다. 모든 영광을 유튜버 안녕늘보씨 님께 돌리겠다. 배우지 않아도 즐겁게 할 수 있었다.




 진짜로 좋아하는 물건 몇 개만 갖고 있어도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어느 순간에 들었냐면 물건이 있는 집에 내가 얹혀 산다고 느껴질 때였다. 집에 오면 숨이 막혔다. 물건이 언제 쏟아져 나를 덮칠지 모르겠다는 불안함. 하지만 버리지 못하는 모순을 깨달으니 최소한 사지는 말아야지 다짐했다.

 쌀 때 물건을 쟁여 놓는다는 생각도 버렸다. 정말로 자주 쓰는 물품을 쟁여 놓지 않으며, 새로운 제품이 있으면 한 번쯤은 써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너무 싫어서 당장 버리고 싶지만 샀을 때의 돈이 아까워 욕하며 반쯤은 쓰고 버리는 한이 있어도 일단을 체험을 해봐야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빨리 소모되지 않는다. 매일 쓰는 주방세제나 치약, 심지어 매달 사용되는 위생용품도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사용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미리 쟁여둘 필요 없이 다 떨어져 간다고 생각될 때 사도 늦지 않는다는 것이다. 쟁여둠으로 인해 차지하는 자리 스트레스와 세일하지 않아 조금 비싸게 사서 사는 스트레스를 비교하자면 후자가 순간적으로 클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전자가 더 컸다.

 쟁여 놓지도 않기로 했다.


 여전히 물건이 많아서 정신이 어지러울 때가 있고 가끔은 집에서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더 물건을 들여놓지 않음으로써 오는 안정감도 존재한다. 신기한 경험이다.


 어쩌면 외로움을 소비를 함으로 소모하지 않았는지. 한 번쯤은 생각해볼 주제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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