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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옛글나눔 Apr 15. 2021

한자로 된 옛 글을 읽고 싶어지다

한문고전읽기 첫첫첫걸음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만드시어 모든 백성들이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해 주신 덕분에 지금은 누구나 생각하는 것을 글로 적을 수 있게 되었지만 1443년(세종 25년)에 만들어진 한글이 공문서에 정식으로 쓰인 것은 1894년(고종 31년)이니, 20세기 이전 우리나라에서 '공식적'으로 쓰인 글들은 모두 한문으로 되어 있다. 이후 역사적 아픔을 딛고 광복이 된 이후 한글에 대한 인식을 고취시키고자 '한글만 쓰기 운동'이 진행되었고 한자 병용의 시기를 지나 한자어도 모두 한글로 표현하는 현재의 방식으로 바뀌어 왔다. 


1948년에 '한글전용에 관한 법률' 이 다음과 같이 제정되었는데,

대한민국의 공용 문서는 한글로 쓴다. 다만, 얼마동안 필요한 때에는 한자를 병용할 수 있다.

문제는 뒤에 붙은 단서조항인 '얼마동안' 이 구체적으로 얼마동안인지를 정해놓지 않아 이후로 수십년 간 한글과 한자가 같이 쓰여졌다. 


1970년에는 정부 주도로 한글전용 정책을 추진하여  먼저 학교의 교과서를 전면 한글로 수정하여 간행하였다. 한글전용으로 인해 약해질 수 있는 한문 교육에 대한 보완책으로 대학에 한문학과를 신설하기로 한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민족의 자주성을 고취시키기 위한 정책이었지만 사회에서는 한자어를 이미 많이 쓰고 있는데 순우리말을 쓰는 것도 아니고 한자어를 그저 한글로 옮겨 적기만 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인가에 대한 논쟁은 끊이지 않았다. 


정부가 과감한 정책을 실시하긴 했지만 사회의 언어습관이 법률 몇 줄로 단기간에 바뀔 수는 없는 지라 1973년에는 국회 속기록을 다시 한자혼용으로 바꾸어 적기 시작했고, 1974년에는 한자혼용을 부활시키려는 움직임이 생기는 등 끊임없는 의견 충돌이 있었다. 당시 신문에 실렸던 한글전용과 한자병용에 대한 의견을 지금 읽어봐도 양쪽 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주장이라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기는 아직도 쉽지 않다. 

1974년 10월 9일 매일경제 신문 중

서울대학의 정병욱교수 「누구를위한 한자교육인가」

첫째 한글세대가 신문잡지를 읽는데 불편을 느끼는것은 구세대가 한자를 버리지 못한데서온 폐단이다. 

둘째 중요한 개념을 나타내는 한자어가 많다고하지만 한자가 꼭 개념이 뚜렷한 것은 아니다. 

세째 고전문화를 계승할 능력은 정상적인 교육을 받은 한글세대가 식민지 교육을 받은 일어세대보다 더 갖추고있다. 

네째 중국인,일본인의 눈에는 생소한 우리한자를 교육시켜 한자문화권의 교류를 꾀한다는 논지 역시 근거가 빈약하다.


인하대학의 남광우교수  「한글세대를 위한 한자교육이다」

첫째 한국은 일본과 중공이라는 량강한자문화권사이에 있으며 문화유산이 한자문화요, 우리말의 태반이 한자어다. 

둘째 사회에선 국한혼용을 해왔는데 학교 교육만은 한글전용방향의 교육을함으로써 아버지의 서재에 꽂힌 책하나 못읽는 숱한 우민을 양산했다. 

세째 교과서에는 사전에도 없는 한자말이 한글로 나오는데 이것은 비능률적이다. 

네째 한글전용주도자는 한글전용으로 이득을보는 인사들의 가세에 힘입어 정부를 움직여 교과서에서 한자를 없앴다. 

다섯째 한글전용만이 애국의길인양 국민을 오도하는 자들에 현혹되지 말 것이며 국한혼용이야말로 국적찾는 교육, 교육유신의 참길임을 알아야한다.


이런 저런 논쟁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기는 하지만 국한문혼용으로 작성 된 1960년대의 신문을 보면 범람하는 한자에 정신이 아득해질 지경이라 그동안 한글전용을 위해 애쓴 분들께 절로 깊은 감사의 마음이 든다. 

1960년 1월 13일 동아일보 중

하지만 한자어가 우리 언어 생활을 차지하고 있는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한자 교육 또한 소홀히 해서는 안되는 부분이니, 이래저래 한글전용과 한자병용은 앞으로 쉽게 사라지지 않을 논쟁거리일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한글에 익숙한 세대가 점점 나이 들어 기성세대의 자리를 차지하게 될 수록 앞으로 한문은 더욱 힘을 잃어가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한자 사용이 점점 사라지는 것에 우려는 미래보다는 과거에 있다. 역사적으로 한자문화권 속에 있었기에 삼국시대로부터 조선왕조 500년에 이르기까지 한문으로 작성 된 수 많은 글들이 우리의 역사로 남아 있는데도 그 위대한 유산을 마음대로 읽고 느낄 수 없다는 것이 왠지 후손으로서 직무유기처럼 느껴졌다. 영어는 열심히 공부해서 좋아하는 소설을 원서로도 읽어보고,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해외 언론의 기사를 원문으로 읽어보려는 노력도 하는데 선조들의 글을 생생히 원문 그대로 보기 위해 한문을 공부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한문으로 된 글을 읽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곳을 물색해 보았다. 한문고전번역을 배울 수 있는 대학교 과정들도 있지만(한문학과, 고전번역학과, 고전번역협동과정 등) 다시 대학을 다니며 학위를 받고 싶은 생각은 없었고, 일반인으로서 어느 정도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곳을 찾아보니 '한국고전번역원' 산하의 '고전번역교육원'이 알맞아 보였다. 이곳은 1970년대에 '조선왕조실록'을 번역하였던 '민족문화추진회'를 전신으로 둔 '한국고전번역원' 산하의 교육기관으로 한문고전번역에 필요한 여러 과목을 배울 수 있는 곳인데, 문제는 1년에 50명으로 정해진 인원을 선발하다 보니 입학시험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원 자격은 '4년제 대학 이상의 교육을 받았거나(전공 무관) 전통방식의 한학교육을 받은 자로 한학자의 추천을 받은 사람'이라고 나와 있으니, 4년제 대학을 나온 사람으로서 지원자격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시험 과목인 '논어집주'와 '맹자집주'라는 것 부터 물음표가 생겼다. '논어'도 들어보고 '맹자'도 들어봤지만 '집주'는 또 뭐지? 


교육원 홈페이지 자료실에 입학시험 문제가 올라와 있어 확인 해 보니 한자 하나하나는 눈에 익을지라도 붙여놓으니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문장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입학시험의 상태로 보아 아마도 번역교육원은 한문 읽는 법을 처음부터 가르쳐 주는 곳은 아닌 듯 보였다.

고전번역교육원 연수과정 입학시험 문제 중 일부


그렇다면 한문 읽는 법의 기초는 따로 배워야 하는 것 같고, 그 중에서도 '논어집주'와 '맹자집주'를 배울 수 있는 곳을 다시 찾아보니 일반인을 대상으로 온/오프라인 강의를 진행 하는 '전통문화연구회'의 '고전연수원'이라는 곳이 있었다. 여러 과목 중 내가 찾던 '논어집주'와 '맹자집주'를 1년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살펴볼 수 있는 강좌가 있어 신청을 했고 종로구 낙원동까지 왕복 4시간이 걸리는 연수원을 부지런히 다니며 입학시험을 준비했다. 결과는 대성공!


참고로 '집주(集註)'란 주석(註釋)을 모아놓았다(集)는 뜻으로 기원전  기원전 5세기~4세기에 지어진 '논어'와 '맹자' 에 대해 후대의 여러 학자들이 연구하여 해설해 놓은 것을 송나라의 주자선생(주희朱熹, 1130∼1200)께서 정리한 것을 말한다. 


낙원동의 '고전연수원'  강의는 훌륭한 강사진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분위기는 은퇴하신 어르신들의 교양있는 경로당 같은 느낌이었다. 같은 과목을 반복해서 들을 수도 있고 몇 년 안에 과정을 마무리 해야 한다는 규칙도 없으니 십 년 가까이 출근도장을 찍듯이 오셔서 강의를 들으시는 분들도 계셨다. 꾸벅꾸벅 졸면서 시간을 보내시던 어떤 어르신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처럼 오래 다닌 사람이 강의 시간에 너무 초롱초롱하게 눈 뜨고 듣고 있으면 강사들이 부담스러워해서 안 돼! 그래서 일부러 조는거야." 


혹은 이런 말씀도 하셨다. 

"너무 빨리 문리(文理)나면 안 돼. 문리나면 죽어. 저번에 그 김영감도 문리나서 여기 안나오다가 암으로 먼저 갔잖아."


문리 난다는 말은 한문으로 된 글을 척척 잘 이해하는 걸 말한다. 어르신들이 하시는 죽음에 대한 농담은 실제 벌어진 일을 소재로 한 블랙코미디일 때가 종종 있어서 듣는 입장에선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곤란할 때가 있다.


반면 '고전번역교육원'은 설립 취지자체가 '한문 고전문헌을 정리ㆍ번역할 인재 양성' 이기 때문에 한문과 관련 된 전공을 하는 대학원생들이 자격증을 따듯 거쳐가는 교육과정이라 주로 20대 중후반의 학생이 많다. 번역을 업으로 삼아보려 하거나 아니면 격조높은 취미생활을 위해 오는 일반인은 10여명이 채 되지 않고 그 중에는 낙원동을 거친 학구열이 비상하게 높으신 어르신들도 매년 꼭꼭 서너 분씩은 합격을 하시곤 한다. 


연수과정 동안 우리 선조들의 옛글을 읽기 위해서 배경지식이 되는 사서삼경, 춘추, 고문진보 등을 꽉 채운 커리큘럼을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치러가며 3년간 치열하게 배우고 무사히 졸업을 했다. 50여명 중 이런 저런 이유로 중도 하차하는 인원이 있기 때문에 매년 졸업장을 받는 인원은 35명 안팎이다. 연수과정 3년은 번역을 생업으로 삼을 만한 실력을 쌓기에는 짧았지만 처음 한문을 배우려 마음 먹었던 목표인 '선조들의 글을 생생히 원문 그대로 보기' 는 1)사전과 검색을 통해 2)적당한 난이도의 글이라면 충분히 번역할 수 있는 수준에는 이를 수 있었다. 


한글로 된 글이라고 해서 모든 글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듯이 한문으로 된 글에도 쉬운 글과 어려운 글이 있다. 쉬운 글부터 차근차근 읽어 나가다보면 언젠가는 전문적인 글 까지도 읽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 믿고 생생한 수 백년 전 선조들의 글을 하나하나 건져 올려 음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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