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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과 한문 공부의 상관관계

by 옛글나눔

한자를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 한문을 공부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잘 걷는 사람이 러닝을 배우는 것과도 비슷하다. 러닝을 배우려는 목표는 사람마다 다르다. 건강이나 취미 생활과 같은 작은 목표일 수도 있고, 마라톤 풀코스 도전이나 철인 3종 경기 같은 보다 본격적인 목표일 수도 있다.


기본적인 <사서(四書)>를 배우는 일은 일단 바른 자세로 뛰는 법을 배우는 일과 같다. 기본이 다져지고 나면 더 빨리 더 멀리 갈 수 있도록 꾸준히 연습한다. 포기는 보통 ‘꾸준히’에서 일어난다. 러닝 머신 위에서 2분만 달려도 숨이 차는 하찮은 체력으로 임박한 기차 시간에 맞추려 짧은 전력 달리기를 했다. 겨우 잡아 탄 기차 안에서 터질듯한 심장을 부여잡고 후들거리는 다리로 겨우 서서 숨을 고르던 그날 러닝을 꾸준히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2분이 30분으로 늘어나는 데는 1년이 걸렸다. 런데이 어플에서는 8주 완성 프로그램이었지만. 1주에 1번도 벅차서 2주에 1번 겨우 헬스장에 출석하는 게으른 회원의 말로였달까. 하지만 포기하지 않은 덕에 요즘은 10km 마라톤을 목표로 게으른 러닝 연습을 꾸준히 하고 있다. <삼경(三經)>, <고문진보>, <사기> 등은 한문 실력을 높이기 위해 꾸준히 보기 좋은 글들이다.


꾸준함에 더하여 어느 정도의 재능과 제법 큰 행운이 따라준다면 전문 번역자의 길을 걸을 수도 있다. 기관 소속의 번역자가 된다는 것은 취미생활을 넘어 스폰서가 있는 경기를 뛰는 것과 같다. 아쉽게도 스폰서 목록에는 영세한 관공서만 이름을 올리는 탓에 부유한 스타 러너가 되는 일은 요원해 보인다. 더구나 뛰는 만큼 보상을 해주는 룰 속에서 원하는 만큼 뛰기도 쉽지 않다. 심지어 10km를 뛰게 해 준다고 했는데 8km만 뛰고 나가야 할 때도 있다. 인문학의 위기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니 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그래도 잘 달릴 수 있게 되면 시도해 볼 수 있는 분야도 그만큼 많아진다. 학위 과정에 진학해서 허들 경기, 장대 높이 뛰기, 창 던지기 등 세부 종목을 정해서 파고들 수도 있다. 아니면 개인적으로 달리고 싶은 다양한 코스에 도전해 보는 것은 어떤가. 경치 좋은 바닷가, 둘레길을 달려보거나, 해외의 유명 트레일 코스로 여행을 가는 것도 좋겠다. 두보나 이백의 당시(唐詩), 고증학의 대가 고염무(顧炎武)의 <일지록>, 박지원의 <열하일기>, 성호 이익의 <성호사설> 등 국내외의 흥미로운 텍스트들은 읽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전방위적으로 준비되어 있다.


모두가 달리기를 전문적인 업으로 삼을 수는 없지만, 심신이 건강해지는 취미 활동으로 또 이만한 것이 없다. 내가 속한 세계를 넓히고 더 깊이 이해하기에는 또한 새로운 배움만 한 것이 없다.


問渠那得淸如許 묻노니 저 어찌 이렇듯 맑은가?
爲有源頭活水來 근원에서 샘솟는 물이 흘러와서라네
- 주희(朱熹)의 〈관서유감(觀書有感)〉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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