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옛글나눔 Apr 20. 2021

혼내는 형님, 다정한 형님, 놀리는 형님

조선시대 형님들

외동으로 자란 내 친구에게 딸이 둘 있다. 둘째가 말문이 좀 트이고 언니 뒤를 졸졸 따라다니게 되었을 즈음, 친구는 여동생이 있는 나에게 본인에게는 미지의 영역인 자매지간에 대해 물었다. 아직은 엄마와의 유대감이 동기간보다 두터운 시기이지만 앞으로 점점 엄마는 모르는 비밀이야기를 둘이서 속닥속닥 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친구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솔직히 말해주었다. 앞으로 엄마는 모를 둘만의 이야기가 얼마나 쌓이게 될 것인지. 엄마 없을 때 멀쩡한 국자에 달고나를 해 먹다가 까맣게 태우기도 하고, 길고양이를 몰래 데려다 지하실에서 키우기도 하고, 우리끼리 놀다가 동생 팔이 부러지기도 했다. 또 싸우기는 얼마나 많이 싸웠는지.. 대학생이 되어서도 아침에 눈 뜨자마자 '네가 입고 있는 그 옷은 내가 자기 전에 마음속으로 아침에 입으려고 생각했던 바로 그 옷이니 당장 벗으라.' 며 아웅다웅하는 일은 부지기수였다. 


그렇게 투닥거리면서도 한 번도 함부로 나를 "야!" 라고 부른 적이 없는, 그저 한 살 어렸을 뿐인 동생은 이제 같이 나이 들어가는 좋은 인생의 친구가 되었다. 성인이 되어서는 멀리 떨어져 지내느라 함께 쌓은 추억이 모자라 아쉬운 오빠는 은퇴한 뒤에 한가해질 날을 기다리고 있다. 부모님께 한 기운을 받아 세상에 나온 동기간(同氣間)은 분명 남들과 다른 특별함이 있다. 같은 부모님 아래에서 비슷한 얼굴을 하고서 켜켜이 쌓은 추억의 깊이가 만든 특별함.




혼내는 형님

물론 동기간이라고 마냥 좋기만 한 것도 아니다. 손윗사람이라는 이유로 괜히 충고란걸 했다가 동생들이 '자기나 잘할 것이지..' 라고 속으로 말을 삼키게 되는 상황이라면 그래도 중간은 간다고 할 수 있다. 명절 풍경 순위권을 다투는 아버지와 큰아버지, 막내 삼촌이 벌이는 말다툼은 결국 '너나 잘하세요.' 의 다양한 변주를 가슴 속에 품지 못하고 입 밖으로 내 놓은 결과일테니 말이다. 


막내 동생 휴문에게 줌與季弟休文

...

竊見吾弟於此 非無意思。非無見解。但胷次急鬧。不肯細心探究。耐煩理會。
가만 살펴보건대, 동생은 이에 대해 생각이 없지는 않고 견해가 없지는 않지만 
마음이 급하고 산란하여  세심히 탐구하고 차분히 이해하려 하지 않네.
...
從前屢欲言之 而不敢索性說。更思此亦姑息之愛。
전부터 누차 말하고 싶었지만 곧바로 말하지 못하였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이 또한 고식적(姑息的)인 사랑이었네.
... 


'고식적인 사랑'이란 근본적인 대책 없이 그저 좋은게 좋은 것이란 태도로 상대를 아끼는 것을 뜻한다. 

이 편지를 쓴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1711~1781)은 6남 3녀 중 셋째 아들이었는데 25세의 젊은 나이에 형제 중 유일하게 대과에 합격을 한 인재이니, 세 살 터울의 동생에게 공부하는 자세가 틀려먹었다며 마음 먹고 따끔한 소리를 할 자격은 충분하다. 그런 형이었기에 충고가 잘 먹혔던지, 동생은 형의 뜻을 이어 소산(小山)이라 호를 짓고 안동에서 성리학을 연구하며 훌륭한 형제 학자로 이름을 남길 수 있었다. 


동생에게 따끔한 충고를 하고 싶다면 일단 내 자신부터 돌아보자. 



다정한 형님

서로 충고해 줄 것도 없이 형제들이 두루두루 훌륭하다면 이 형제들처럼 다정다감한 편지를 주고 받을 수도 있겠다.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 1651~1708)이 아우인 가재(稼齋) 김창업(金昌業, 1658~1721)에게 준 편지 중 일부이다.


동생 대유에게 줌 [與大有]   *대유(大有) :김창업(金昌業)의 자(字) 

...
頃者。再上漁舟。溯洄三洲間。得魚頗多。
얼마 전에는 다시 고깃배를 타고 삼주(三洲) 근처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고기를 많이 잡았었네. 
自營此屋來。今年始有此趣味。所恨不與兄弟共之爾。
이 집을 지은 후 올해야 비로소 이런 취미를 가지게 되었는데, 형제들과 함께하지 못하는 것이 유감이네.

稻種許優送。深幸。今遣奴馬。付致爲望。
볍씨를 넉넉히 보내 준다고 하니 정말 다행이네. 지금 종과 말을 보내니 이 편에 보내주길 바라네.
方治小圃。嘉瓜種子。隨有送來如何。
자그마한 채소밭도 이제 막 일구고 있으니, 좋은 오이 씨앗도 있는 대로 보내 주면 어떻겠나?
...

이들의 증조부는 충의와 절개의 상징, 영화 '남한산성' 에서 김윤석 배우가 열연한 김상헌(金尙憲)이고-참고로 영화에서는 자결하는 것으로 나왔지만 실제는 은퇴하였고, 이후 청나라에 압송되는 고초를 겪었지만 83세까지 장수하시다 돌아가셨다- 아버지 문곡(文谷) 김수항(金壽恒) 역시 사십대의 나이에 최고 권력인 정승의 자리에 오른 노론의 영수로 그야말로 당시 내로라하는 명문가 집안이었다. 자식 복도 많은 집안이었는지 아들인 김창협의 여섯 형제들은 모두 학문에 뛰어나 당시 육창(六昌)이라 불리며 문장의 대가들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숙종시절 장희빈을 앞세워 집권했던 남인 세력에 의해 아버지 김수항이 목숨을 잃게 되며 가문이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었으니, 명문가 집안에서 승승장구 하는 젊은 관료였던 김창협은 아버지를 잃은 뒤 관직을 떠났고, 이후 여러 차례 조정의 부름이 있었지만 모두 거절하고 은거하며 지내다 여생을 마쳤다. 그렇게 은거하던 시기에 쓰여진 이 편지를 보면 당시 복잡한 세상을 떠나 그저 낚시하고 농사지으며 학문하던 그의 생활이 그려진다. 밖에서 우환이 있었기에 안으로는 아웅다웅 할 것도 없이 그저 이렇게 형제 간에 다정한 편지를 나누었는지도 모르겠다.


우환은 있지만 다정한 사이와 우환 없이 아웅다웅하는 사이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난 후자를 고르련다. 



놀리는 형님

이 시는 동명(東溟) 정두경(鄭斗卿, 1597~1673)이 아는 동생에게 지어준 시인데, 지금으로 말하자면 지방에서 서울에 올라와 공무원 승진시험을 봤다가 떨어지고 돌아가는 동생에게 준 것이다. 


동생 유여일이 중시에서 낙방하고 고을로 돌아가는 것을 전송하다送柳弟汝一下重試還官

단천 고을 수령 모습 아주 웃기니 / 笑殺端州守
뭐하러 그 먼 길을 왔던가 / 胡爲遠道來
한나라의 조정 안엔 준걸이 많아 / 漢廷多俊傑
가생(賈生)의 재주 귀히 여기지 않네/ 不貴賈生才


과거 시험에 붙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게 해서 조정에 들어간 뒤 종6품의 관리에서 정1품 정승의 자리에 오르려면 거쳐야할 관문이 많다. 지금으로 치면 7급 공무원이 국무총리까지 올라가는 것과 비슷하니 그 험난함, 혹은 불가함이 짐작이 간다. 그나마 장원급제를 해야 종6품으로 시작할 수 있고, 그 이하 합격자들은 정7품에서 정9품의 더욱 말단 관직을 받게 되니, 괜히 장원급제를 부르짖는 것이 아니다. 


특히 고위 관리라 할 수 있는 당상관(정3품 이상)에 오르기 위해서 꼭 통과해야 하는 승진 시험이 있는데 바로 중시(重試)다. 자주 있는 시험도 아니고 무려 10년에 한 번씩 열리는 시험인데 그 시험을 보기 위해서 함경남도 단천(端川)에서 수령으로 재직 중이던 유도삼(柳道三, 1609~?)이 서울에 내려온 듯 하다. 당연히 쉽지 않았을 시험에 낙방하여 터덜터덜 돌아갈 동생에게 이렇게 똑 떨어질거면서 뭐한다고 그 먼길을 왔냐며 놀려대는 형이라니. 얄밉지만 이 글을 쓴 정두경이 바로 '장원급제자' 이다. 놀려도 할 말이 없게 만드는 스펙이다. 안타깝게도 을사사화를 일으킨 정순붕(鄭順朋, 1484~1548)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좋은 관직을 받지는 못했지만.


 '소살(笑殺)'은 사전 상으로 '가소도극점(可笑到極點)'이라고 나와 있는데 '웃겨죽겠다.' 라는 말과 딱 맞아 보인다. 하지만 놀리기만 하는 짖궂은 형으로 남고 싶지는 않았던지 시 뒷 부분에 한나라(漢)시절 재주가 뛰어난 신하였으나 임금에게 내침을 당했던 가의(賈誼,賈生)를 슬쩍 들먹이며 동생의 실력이 결코 못나서 떨어진 것은 아니라는 위로를 덧붙였다. 


결국 유도삼(유여일)은 이로부터 약 9년 뒤 중시와 비슷한 승진시험이지만 비정기적으로 치뤄지는 문신정시(文臣庭試)에서 당당히 1등을 차지하고 드디어 '정3품' 승정원 동부승지에 임명되었다. 하지만 중시 낙방으로 인해 고위 관료로의 길이 그 만큼 늦어지긴 했을 것이다. 


나쁜 일이 벌어졌다고 해서 그 사이 사이의 순간들이 모두 슬픔과 원망으로 채워져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시험에 떨어져 낙심한 유도삼도 이 시를 받은 순간에는 피식 웃음이 나오지 않았을까? 




형과 동생 사이 뿐 아니라 누나 동생이든, 언니 동생이든 세상의 많은 형제자매들은 오늘도 옛날과 다름없이 엄마 아빠는 모를 수 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 나가고 있을 것이다. 


친구에게는 만약 두 딸내미들이 자기들끼리 속닥거리며 엄마랑은 잘 안 놀아주는 나이가 되면 내가 대신 외동인 친구의 자매가 되어 놀아줄테니 걱정말라고 했다. 아마도 놀리는 쪽이 되려나?





























작가의 이전글 두유 노 호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