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첫번째 목욕탕이 있다.
누구에게나 첫번째 목욕탕이 있다. 약수탕. 내 첫번째 목욕탕이다.
부산시 영도구 청학동. 내 고향. 한 골목에서 19년을 살았다. 골목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약수탕이 있었다. 약수탕을 지나지 않고서는 동네밖으로 벗어날 수 없었다. 높고 파란 목욕탕 굴뚝. 지금은 점점 없어져가고 있는 풍경인 동네 목욕탕 굴뚝 밑에서 나는 뛰어 다녔다.
부산은 언덕이 많기로 유명한 도시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집부터 지었다. 도시 계획이 제대로 되지 않아 길이 좁고 구불하고 가파르다. 사람들은 운전을 험하게 한다. 내 고향 영도구 청학동도 사정은 다르지 않아 집들이 다 깍아지른 언덕위에 많이 있다. 산 밑에 집을 짓다보니 그렇다. 내가 살던 골목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못사는 동네가 그렇듯 우중충한 콘크리트로 지어진 집들은 다닥다닥 옹기종기 붙어 있었다. 그 동네 어귀에 약수탕이 있다.
알로에 냄새가 난다. 약수탕에서 여탕을 엄마와 다녔을텐데, 시각적인 것들은 이제 하나도 기억나지 않고 엄마가 썼던 바디 워시 냄새인 알로에 냄새가 난다. 가끔 그 냄새가 그리워지는데 나는 이제 그때로는 돌아갈 수 없지. 여탕에는 두번 다시 갈 수 없다. 약수탕 여탕에서 나는 뜨거운 물을 남동생 머리위에 들이 부었다고 엄마가 가끔 말한다. 어린 마음에 동생을 미워하고 질투한 것 같다.
약수탕에서 나는 쓰러졌다. 초등학교 때인지 중학교때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코에이에서 나온 대항해시대2 라는 게임을 몰아서 4시간 동안 하고 약수탕에 갔었는데, 풀썩 주저 앉았나보다. “니 괘안나” 풀썩 주저 앉은 나를 보고 근처에 있던 아저씨 한 분이 괜찮냐고 물어봐주셨고, 나는 밖으로 나와 평상 같은 곳에 앉아 있다. 잘못넘어졌으면 머리가 깨져서 큰일날 뻔 했을 것이다. 왜 이런 기억이 나는 걸까.
지금은 학교도 주 5일제다. 나 때는 토요일 오전까지 수업을 했다. 보통 일요일 오후 늦게 아빠랑 동생이랑 목욕탕을 갔었는데 그날은 이상하게 점심을 먹고 토요일 낮 2시쯤에 목욕탕을 갔다. 같은 동네에 살던 성근이라는 동생이 있는데, 성근이 아빠가 혼자 목욕탕에 있었다. 햇살이 창문 사이로 들어오고 내가 성근이 아빠의 등을 밀고 있다. 그때는 그랬다. 혼자오면 혼자 온 사람을 찾아 서로의 등을 밀어 준다. 지금은 성근이 아빠의 얼굴 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고 성근이 엄마가 암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버지는 목욕탕 가기를 싫어했다. 엄마한테 한 소리를 듣고 나서야 동생과 나를 데리고 목욕탕을 갔다. 목욕탕에 가서도 온탕이나 냉탕에 들어가지 않았다. 목욕하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것 같다. 그럼에도 억지로 목욕탕을 간 건 동생과 내 때를 밀어주기 위해서 였다. 동생과 내가 온탕과 냉탕을 왔다갔다 하며 놀고 있으면 본인의 때를 밀었다. 동생과 나를 하나씩 차례로 불러서 정성껏 아들들의 때를 밀어주었다. 그리고는 나에게 등을 밀어달라고 하면 떄수건으로 내가 때를 밀어달라고 했다. 아버지의 등은 넓고 때가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때는 주5일제가 아니었고 토요일까지 일을 하고는 일요일 하루 딱 쉬었다. 그때는 아버지가 일요일에 퍼지게 늦잠을 자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게 멍하니 일요일을 보내고 목욕탕을 갔다가 우리를 씻기고 나면 아버지의 휴일은 끝이 나는 것이었다. 노곤노곤해진 몸으로 약수탕에서 집으로 가는 계단을 올라갈 때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약수탕에 가자. 약수탕에 몸을 담그던 동네에서 나를 알던 어른들은 이제 죽거나 동네에 없을 것이다. 영도의 인구는 내 어린시절과 비교하면 거의 반토막 수준이다. 약수탕도 언젠간 없어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