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탕에서 버터 플라이를 하며 그녀의 이름을 외쳤던 그곳
1996년은 6학년이었다. 첫사랑을 했다. 6학년의 첫사랑이라..귀여운 느낌이 들지만 이후 한 여자애를 7년동안 좋아했다고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금 생각해보면 7년이란 기간 동안 달리 눈에 보이는 여자가 없었고 막상 좋아한다고 말하기엔 자신감이 없었다. 아프지만 누군가를 마음에 품고 있는 편을 택했는지도 모르겠고, 달리 벗어날 방도나 생각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붐이 불었다. 학교에서 그녀를 좋아하는 붐이. 나도 그 붐에 휩쓸렸다. 좋아하는 감정이 뭔지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모른 채 남들이 좋아하니 그녀가 이뻐보였고 좋아하게 되었다. 처음엔 별것 아닌 감정이었다. 하교길에 문득, 잠자기 전에 한 두번 생각하다보니 좋아하는 감정이 서서히 커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그녀의 집 앞까지 찾아간다.
청학동 우리탕. 나를 그녀의 집앞까지 가게 한 공간의 정체다.
허씨 성을 가진 친구와 친하게 지냈다. 허발과 나는 약수탕이 아닌 우리탕을 갔다. 매주 토요일. 정말 오랫동안 놀았다. 우리탕은 약수탕보다 넓었고, 무엇보다 냉탕의 크기가 내가 다니던 약수탕의 세 배였다. 친구랑 같이 가니 때를 밀 필요도 없었다. 냉탕에서 우리는 버터플라이를 했다.
허와 나는 그녀를 둘러싼 붐에 동참한다. 허는 그 여자애가 좋다고 했다. 나도 질세라 그 여자애가 좋다고 했다. 그녀의 이름을 외치며 냉탕으로 첨벙 뛰어들었다. 어떤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그게 점점 좋아진다. 그게 여자라면 더욱 그러하다. 허와 나는 날을 잡아서 그녀의 집으로 무작정 찾아갔다. 토요일 오후일 것이다. 아주 오래된 아파트였는데 그녀를 찾아 갔지만 그녀는 나오지 않았다. 집에 있었던게 분명한데.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귀여운 이야기고 패기 넘치는 이야기다. 아무런 준비도 선물도 없이 무작정 가다니. 난 허와 함께 대체 그녀를 불러서 뭘 할 생각이었을까. 이 정도의 패기를 지금도 가지고 있다면 난 엄청난 사업가가 되었거나 치한으로 잡혀 교도소에 있거나 둘 중 하나 일 것이다.
우리탕에서 목욕을 하고 나오면 허와 나는 근처 떡볶이 포장마차 집에 들러 떡볶이와 오뎅을 먹었다. 쌀쌀한 바람이 불면 떡볶이와 오뎅 국물이 생각나도 그러면 자연스레 허와 내가 다녔던 우리탕 앞의 떡볶이 집이 생각난다. 엄마는 떡볶이를 먹으라고 돈을 더 챙겨주셨다 . 우리탕을 가는 하나의 재미였다.
당시에는 스포츠 신문이 슈퍼마켓 앞에 있었고, 우리는 슈퍼를 왔다갔다 할때마다 스포츠 신문의 헤드라인을 보며 롯데가 졌네 박정태가 도루를 했네 임수혁이 홈런을 쳤는지 확인했다. 슈퍼를 지나갈때마다 신문에 눈이 갈 수 밖에 없었다. 하굣길에 집 근처 장홍슈퍼를 친구들과 지나가다가 여럿이서 스포츠 신문을 보고 있는데, 아줌마가 가라고 야단을 쳤다. 나는 집으로 이어지는 골목으로 갔고 친구들은 장홍슈퍼가 보이는 언덕길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갑자기 우리 집으로 장홍슈퍼 아줌마가 나타났다. 그러더니 친구들이 뭔짓을 했다면서 우리 엄마한테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나를 옥상으로 올라가라고 했고 나는 옥상에서 뭔가 큰일이 벌어진 모양인듯 떨었다. 알고 봤더니. 친구들이 언덕에서 “장홍슈퍼 시발놈”이라고 크게 외쳤고, 그 말을 들은 아줌마가 분통이 터져서 우리집에 와서 청학초등학교 몇학년 몇반인지 물어본 것이었다. 우리는 하교 이후에 우리탕에서 목욕을 하기로 했었고, 속속들이 우리탕에 모였다. 나는 장홍슈퍼 아줌마가 왔다 갔다고 온탕에서 친구들과 몸을 불리면서 이야기를 했다. 다소 흥분 한 채. 그래도 나는 그 욕하는 무리에 없었기 때문에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 뒤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줌마가 학교에 일러서 친구들과 나는 몹시 혼이 났을까.
우리탕을 가기 시작하니, 당연히 약수탕에는 가지 못했다. 우리탕을 가려면 약수탕을 지나가야했다. 목욕가방을 들고 약수탕을 지나쳐가는 모습을 본 약수탕 주인아저씨가 어느날 나를 불러세우더니 돈을 1000원 깎아줄테니 약수탕으로 오라고 했다. 지금이라면 그런말 듣지도 않았을테지만 당시 그건 어른의 말이었고 나는 고분고분 딱 한번 천원을 할인받고는 (지금 기억으로는 3000원이었던 목욕비를 2000원으로 할인받았던것 같다)약수탕을 다시 다니기 시작했다. 약수탕 아저씨는 12살짜리 꼬마에게 영업을 하신 셈이다.
그건 그렇고, 우리탕에서 진지하게 생각했던 그녀는 어떻게 되었을까. 영도에는 남녀공학인 중고등학교가 없었다. 각자 남자 중학교 여자 중학교에 진학했고, 남자 고등학교 여자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나는 보습학원을 다녔는데 다닐때마다 그녀는 내가 다니던 학원으로 따라왔다. (일부러 따라온건 아니겠지)
어디 마음 둘 곳이 없어 그녀에게 자꾸 마음이 갔다. 예전에 좋아했던 전력도 있었고, 다른 여자를 만날 기회도 깜냥도 없이. 하지만 좋다고 제대로 말도 한번 하지 못한 채 나는 음침한 소년으로 살았다. 제대로 된 안녕도 작별 인사도 한 번 없이 우린 헤어졌고 그 뒤로 한 번도 만날 순 없었다. 3년전 서울 공덕역 근처에서 회사 행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왠지 그녀 같아 보이는 사람이 다른 남자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그녀였을까.
이름 : 우리탕
주소 : 폐업 / 금화탕으로 이름을 바꾼 듯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