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시작은 만복탕의 눈물과 함께
이전한 땡스북스에 갔다. 이것저것 책을 들춰보고 있는데 한국의 목욕탕을 찍은 사진집이 있었다. 하숙집 앞에 있던 이문동 만복탕이 나왔다. 그리고 현재는 없다고 작은 글씨로 캡션이 보였다. 울컥했다. 없어졌구나.
상경하는 날
엄마는 아빠 차 조수석에서 우셨다. 부산을 떠나 상경하는 날이었다. 부산역에서 부모와 헤어지고 기차를 타러 내려오는 계단부터 울음이 터졌다. 이제 나 혼자 이 낯선 세계를 가야 한다는 두려움, 태어나면 누구나 원하지 않지만 언젠가는 부모의 품을 떠나야 한다. 무엇보다 엄마가 우는게 나도 서러웠다.
하숙집은 서울시 동대문구 이문동에 있다. 엄마 아빠가 상경을 해서 하숙집을 구해줘서 나는 처음으로 가는 길이다. 아버지가 그려준 약도와 하숙집 전화번호가 적힌 메모를 가지고 올라갔다. 이집이 맞는지 저집이 맞는지 쉽사리 문을 두드릴수 없었다. 근처에서 전화를 드렸고 하숙집 아주머니가 나오셨다.
옥탑방에서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안내 받은 공간은 옥탑방이었다. 이곳이 내가 살아야할 곳이구나, 무엇보다 시급한건 혼자 시간을 보내는 법을 전혀 몰랐다. 막상 도착은 했는데.. 뭘 해야 할까. 도착한 당일에는 정말 아무것도 할일이 없었다. 해야 될 일도 없었다. 아는 사람도 없었다.
하숙집에서 밖으로 나오면 길게 언덕을 내려가야 했는데 그 끝에 만복탕이 있었다. 떄는 2월의 추운날이었고 나는 그냥 할일이 없고, 아마 일요일이었던걸로 기억한다. 휴일에는 목욕탕을 가야했으므로 만복탕을 갔던 것 같다.
서러운 만복탕
만복탕의 물은 깨끗했고, 주인 아저씨는 반백의 할아버지였고, 바나나 우유를 먹었는지 어떗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하는 건, 샤워를 하면서 게속 울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복탕은 무진장 좁았다는 것, 특히 탕이 작아서 이게 서울의 목욕탕인가 하고, 역시 서울이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끊임없이 나오는 눈물을 샤워물로 계속 닦아내면서 목욕탕에 있는 1시간 동안 계속 서러워했다.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두려움, 부모에 대한 고마움, 낯선 곳에서의 생활 등 여러가지 감정이 벅차 올랐겠지.
이후 한달 동안 아는 사람 없이 학교-하숙집을 왔다갔다하는 생활이 계속 되었다. 입학전에 오리엔테이션이나 합동MT 같은걸 참석하지 않아 아는 친구가 전혀 없었다. 누구하나 대학생활에 대해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다. 낯선 이를 만나면 어떻게 행동해야되는지 조차 몰랐다. 부모의 과보호 속에 혼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바보 같은 소년이었다.
학교 수업을 마치면 (그때는 왜 그렇게 빈 시간이 많았는지) 하숙집에 돌아와 밥을 먹고 멍하니 방안에 있거나 학교앞 오락실에 가서 게임을 몇판 한다. 지겨워질 무렵 하숙집에 다시 돌아와도 8시 남짓한 시간이다. 핸드폰에서 32비트 정도되는 음으로 노래가 나왔는데 그 반주로 옥탑방위에서 노래를 불렀다. 토이나 윤도현 같은 것들… 그래도 시간이 가지 않으면 억지로 잠을 잤다. 하루에 8시간은 기본이고 9~10시간 정도 잔 것 같다. 달리 할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과 개강 파티를 가게 되서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다. 아는 사람이 없으니 그 낯선 개강파티에 들어가는게 여간 두려운게 아니었다. 개강파티를 하던 호프집의 문을 열고들어가지 않았다면 지금쯤 내 인생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와 어울리던 사람들은 지방에서 올라온 형들이었다. 수업을 듣고 공강시간에는 형들이랑 놀다가 동아리 같은 곳에 기웃거리다가 밤이 되면 아지트 같은 가장 나이 많은 형 방에 모여 과자나 컵라면 맥주 등을 먹으면서 말 그대로 시간을 때웠다. 누구를 좋아하느니.. 이제 군대가야 된다느니..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청년기의 시작 만복탕
부모에 품에서 벗어나 사회성을 기르고 하나의 개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일상을 채워야할지 배워가는 방황의 시기가 아니었다 싶다. 방황의 시작점에서 두려움에 눈물을 흘렸던 만복탕이 이젠 없다. 모든 건 변한다고 하지만 나의 장소 하나가 이젠 없어졌다는 사실, 무엇보다 만복탕이 없어진다는 소식을 듣기 전에 만복탕이란 장소가 있었다는 것 조차 까맣게 잊어버리고 살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쓸쓸한 기분이 든다.
이름 : 만복탕
주소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동 257-48 (현재는 폐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