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동안 울고 웃었던 그 곳.
서울시 강서구 등촌동에서 6년을 살았다. 한 번 이사를 했는데 이사를 한 곳은 걸어서 1분 밖에 안 걸리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6년동안 정말 별일 없이 ‘못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동굴에서 산 기분이다. 좋은 일은 하나도 없었고 온통 나쁜 일만이 내 주위에 있고 나는 끙끙대기만 한 것 같다. 나쁜일에만 과도하게 포커싱을 하는 내 성향 때문인짖도 모르겠다. 그 기간 동안 매주, 2주에 한번은 목욕탕을 갔다.
백두산 불가마.
찜질방이 딸린 목욕탕이다. 규모는 작다. 나는 찜질방은 거의 이용하지 않고 목욕만 했다. 언제 어느때 가도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일요일 낮 시간은 붐볐다. 조기축구회 아저씨들이 있었다.
카운터에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노파와 닮은 아주머니가 있었고, 손님을 대하는 태도 또한 그 노파와 거의 흡사했다. 계산을 하고 들어오면 목욕탕 잡무를 보는 아저씨와 동네 터줏대감들끼리 모여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야구를 보며 야구 이야기를 하거나 뉴스를 보며 정치인 욕을 하고 있다. 누가 홈런을 몇 개 쳤느니 그건 아니라느니 정말 시시껄렁한 걸로 말다툼을 해대는 밖에서는, 사회에서는 찍소리 못하고 기죽어 살만한 아저씨들이었다.
그런데 나는 아저씨들이 그렇게 주고 받는 말을 들으며 탈의를 하면 바깥 세계의 복잡함은 잠시 잊게 된다. 큼큼한 냄새를 맡으며 계단으로 내려가면 팍팍한 세상에서 잠시 쉴 수 있는 오아시스가 있다. 5년 넘게 회사를 다니면서 처음으로 인센티브를 받은 금요일 저녁 혼자 목욕탕에 가서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목욕을 한 기억. 평일 저녁에 혼자 목욕탕을 갔는데 꼬마 아이가 혼자 있어서 같이 얘기 했더니 자기는 동생이 있는데 지금은 만날 수 없다는 얘길 듣고 슬펐던 기억이 있는 공간이다.
나는 백두산 목욕탕에서 그 무엇보다 습식 사우나를 좋아했다. 사우나는 어른의 영역인데 지금까지 건식 사우나만 체험을 했다면, 이 곳에서 처음으로 습식사우나를 경험했고 푹 빠졌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연기가 자욱하고 쑥 냄새가 난다. 건식 사우나 보다 온도는 낮다만 풍겨오는 그 느낌이 좋다.
축구를 하다가 팔이 부러졌는데 별거 아니겠지 하고 그날 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정말 아팠다. 병원에 갔더니 부러졌다고 해서 철심을 박는 수술을 했다. 관절이 부러지면 수술 후 깁스를 푼 다음 지난한 재활을 해야 한다. 재활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관절이 굳어서 이전만큼 팔을 피거나 굽히지 못한다. 지금은 팔 그까짓것 조금 못펴고 굽히는게 대수냐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 때는 일희일비 했다. 재활을 꽤나 오래했는데 초기에는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찜질을 하고 굽혔다 폈다를 반복했다. 점심에 재활병원에 가면 치료사들이 팔을 만져줬다. 저녁에는 백두산 불가마를 왔다.
뜨거운 물에서 팔을 굽혔다 펴다 하면서 재활을 하는데 평일에는 사람도 없고, 어떨때는 나 혼자 있을때가 많았다. 조금 과장하면 목욕탕에서 ‘울면서’ 재활을 했다. 딱딱한 석고처럼 굳은 팔을 다치기 전까지 되돌리기 위해서 꽤나 오래 신세를 졌다.
백두산 불가마에 들어가기 전 바나나 우유 하나를 편의점에서 산다. 목욕탕에 들어가자마자 바나나 우유를 먹는다. 그리고 1시간 동안 온탕->냉탕->사우나를 오간다. 목욕이 끝나면 출출하기 때문에 가는길에 맛있는걸 찾게 되는데 목욕탕 근처에 모락우동이라고 우동집이 있었다. 그 곳에서 우동을 맛있게 먹었다. 혼자서.
백두산 불가마를 다니던 시절은 단언컨대 내 인생에서 가장 암울한 시기였다. 회사일이 엉망진창이어서 일수도 있고, 동생과 같이 살다가 혼자 살게되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햇볕이 잘 안들어오는 동굴같은 집 때문일수도 있다. 그래도 백두산 불가마가 있었기 때문에 버티고 버텨서 아직까지 서울 생활을 근근이 이어가고 있는게 아닐까 싶다.
이름 : 백두산 불가마 사우나
주소 : 서울특별시 강서구 등촌1동 64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