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이동 백두산 한증막 사우나

세상에서 가장 몸 좋은 아재들이 모이는 목욕탕

by 감운장

세상에서 가장 몸 좋은 아재들이 모이는 목욕탕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토요일 오전 7시 평소라면 잠에 빠져있을 시간에 일어나 배낭을 꾸린다. 오늘은 북한산 숨은벽 능선 코스를 홀로 오르기로 한 날이다. 숨은벽 능선 코스 입구로 가려면 구파발 역이나 연신내역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타고 북한산성 입구쪽으로 가야 한다. 이 버스는 탈때마다 느끼지만 이쪽 루트로 등산을 오기 싫게 만든다. 구파발 역이나 연신내 역에 내려 버스 환승 센터에 가면 알록달록 등산복을 입고 스틱 꽂은 배낭을 멘 사람들이 모여 있다. 북한 산성 입구로 가는 버스를 타면 사람들은 몰려가게 되는데 자리에는 물론 앉지 못하거니와 가끔 숨이 막혀 짜증이 몰려온다. 놀러간다고 버스를 탄 내가 이런데 버스에 탄 동네 주민은 오죽할까. 주말 마다 몰려오는 이 등산객들이 얼마나 싫을까. 아저씨 넷이 떠든다. 자기들만 즐거운 대화다. 나는 이렇게 짜증이 나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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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당에서 시작한 북한산 숨은벽 등산 코스는 봄날 아침의 조용함이 있다. 토요일 오전은 일주일의 피로가 슬슬 물러가는 때다. 힘이 없어 축 쳐져 있을 때이기도 하고 늘어졌던 체력이 바닥을 찍고 슬슬 올라오는 때이다. 전날 술을 왕창 먹고 새벽 늦게까지 스타크래프트를 하며 불금을 보냈다면 토요일 오전에 이 곳에 오지 못하겠지만, 그럴 경우 생활 리듬이 깨져 주말을 망쳐버릴 수 있다. 나는 금요일에 자동적으로 풀어지는 마음을 경계한다. 평소와 다름없이 먹고 자는 것. 그게 토요일 아침을 상쾌하고 보낼 수 있는 방법이다. 뭔가 써놓고 보니 거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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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벽 코스는 꽤 가팔랐다. 깍아지르는 바위를 밧줄을 잡고 올라가야 하는데 내 뒤에 등산객이 저기 위로 올라가는거 맞냐고 나에게 확인 하신다. " 저도 처음이라 잘 모르겠는데, 저쪽이 맞는것 같습니다." 등산객은 감사하다는 말 없이 무시하며 지나간다. 전형적인 한국의 개저씨다. 아저씨가 되는 건 어쩔수 없다. 개저씨는 되지 말자. 이 코스에서 불쾌했던건 이 개저씨 뿐이었고, 나머지 3분의 은인에게 도움을 받아 무사히 등산을 끝낼 수 있었다.


1. 첫 번째 은인 - 바위에서 손 내밀어준 부처님

'우아 어쩌지.. 내려가지도 올라가지도 못하고'

바위 중간에 갇혀 있다. 바위가 미끌미끌하고 중간에 잡을 만한 곳이 없다. 동선을 잘못 택했다. 무작정 올라가버린 것이다. 큰 바위가 있었고 중간까지는 올라갔는데 디딜 곳이 없다. 위로 올라갈수도 내려갈수도 없었다.아니 내려갈수는 있었다. 주저 앉아서 슝 하고 썰매를 타고 내려갈수는 있었는데 그랬다면 바지는 빵꾸가 날 것이고, 엉덩이에는 불이 났을 것이고 내 팬티는 오픈되겠지. 그리고 나는 사회적 죽음을 맞이하게 될것이다. 그 순간 태양을 등지고 부처님이 나타났다.

"내 손 잡아요"

은인은 한손을 내밀어 주셨고 나는 그 손을 잡고 무사히 올라 갈수 있었다. 평일동안 인간들에게 치이다가, 이렇게 아무런 보답 없이 도와주는 사람을 만나다니. 성선설을 다시 생각한다. 역시 산객들은 너그럽다. 감사합니다. 정말


2. 두 번째 은인 - 바위를 내려가는 법을 알려주신 부처님

정말 가파른 곳을 내려가야 했다. 중간중간에 철로 된 난간이 있을 정도였다. 내가 내려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산객 한 분이

"앞으로 내려가려고 하면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려서 위험하고 힘드니까. 돌아봐요. 거꾸로 내려가는게 편합니다"

등산을 나름 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방법이 있는지 몰랐다. 역시 단독 산행만을 고집하다 보니 베테랑들의 팁을 전수 받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 뒤로는 내려가는걸 무서워 하지 않았다.


3. 세번째 은인 - 돌! 이라고 외쳐준 부처님.

"돌!!!!!!"

일본원숭이 머리만한 돌이 내 오른쪽 종아리를 겨냥헌듯 굴러내려 온다 잽싸게 다리를 들어 가까스로 돌을 피한다. 앞에 아주머니 산객이 돌!! 이라고 말을 안해줬으면 내 다리는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아줌마가 위를 보며 막 혼을 내고 있다.

"돌이 떨어지면 떨어진다고 말을 해야지!!"

"아니 그게 아니라..어쩌구" 변명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내려오는 사람은 츄리닝을 입은 20대 초반의 거구의 남자다. 뭔가 게임만 하다가 오늘 처음 등산을 온거 같은 느낌의 거구다. 내가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 있었다면.... 못피했을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끔찍하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주머니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소리 높여 인사했다.

도선사에 들러 공양하다

비빔밥을 먹었다. 시금치. 김치. 콩나물. 시레기국이 끝. 맛있었다. 시주 안하고 꽁으로 먹었다. 득 본 기분이다. 감사합니다 부처님. 오늘 북한산에서 세 분의 부처님을 만나 사고 없이 등산을 끝마칠 수 있음에 감사했다.

불교 공부를 해야겠다. 요즘 내 화두인 미니멀리스트. 과시와 낭비 금지 가 내 화두다. 불교의 가르침과 이어지는 부분이 있을거 같다.


오늘의 주인공 우이동 백두산 한증막 사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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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에 약속이 있어 하산 뒤에는 목욕을 꼭 해야 했다. 허둥지둥 사람들이 사는 민가쪽으로 내려와 아무 목욕탕이나 가자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우이동 백두산 불가마가 내 앞에 나타났다.


이곳의 특징은 1. 등산객들이 손님으로 많다. 2. 동네 목욕탕들과 다르게 할아버지들의 몸이 잘 빠졌다. 등산으로 다져진 몸이라고 추측했다. 배는 볼록 나왔지만 그건 아재니까 할배니까 어쩔수없다. 배는 불룩했지만 강인해 보였다.


옥장판에 누워 남자의 중앙 은행(bank)을 축 늘어놓고 쉬고 있다. 한숨 눈 붙이는 남자들을 보니 주말이 실감이 난다. 힘들고 짜증나고 지루했던 평일이 끝나고 주말이 되어 북한산을 올라 스트레스를 말끔히 푼다. 그리고 사우나에서 몸을 씻고 눈을 붙인다. 집에 가서는 맥주를 한잔하며 예능이나 야구를 보고 가족들과 저녁을 먹겠지. 평화로운 주말이고 건강한 사내들이다.


수건에는 "훔친 수건"이라고 쓰여져 있어 웃겼다. 저건 집에 가져가서 쓰려고 해도 못쓸성 싶다. 얼마나 수건을 가져가는 사람이 많으면 저렇게 기분 나쁜 문구를 붙여 놓았을까.


몸을 다 씻고 탈의실에 갔더니 아저씨 한명이 알몸으로 도시락을 열고 서서 뭔가를 먹는다. 등산이 끝나고 남은 음식인것 같다. 옷 좀 입고 드시지. 다른 목욕탕에서 봤으면 눈쌀이 찌푸려지겠지만. 이해했다 그 배고픔을 모든 산객이라면 이해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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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백두산한증막사우나

주소 : 서울 강북구 삼양로173길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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