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과 전주의 찜질방

롯데와 기아와 절도범과 우체국과 나

by 감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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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소름 돋아”

군대 선임 강을 다시 만난 건 전주의 한옥마을 횡단보도 앞이었다. 나는 70L 배낭을 메고 노란색 수건을 목에 걸치고 전국일주를 하고 있었다. 강은 전주 사람이다. 같은 전주사람인 나도 아는 철이를 만나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밤늦은 시간 술을 마시러 가는가보다. 어지간하면 같이 술 마시러 가자고 이야기를 할 법한데. 우린 그 길로 헤어졌다. 만약 강이 같이 가자고 했어도 나는 같이 가지 않았을 것이다. 뭔가 핑계를 대면서. 그건 다른 일이 아니다. 강이 군대에서 나에게 욕을 했기 때문이다. 강도 알았을 것이고, 난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골키퍼를 했는데, 제대로 못한다고 욕을 했지.


지산 밸리 락페스티벌에 갔다

그해에 누가 나왔지. 오아시스였나. 락페스티벌을 좋아했다. 나도 그렇고 한국의 락페스티벌도 그렇고 그 무렵이 정말 피크였다. 공연을 무진장 보러 다녔고 슬램을 했고 지치지 않았다. 다음날 바로 짐을 꾸려 윙윙 울리는 귀를 부여잡고는 전국일주를 시작했으니 지금과 비교하면 정말 대단한 체력이다. 지리산 종주때 산 70L 베낭을 빵빵하게 하고 전국 일주를 시작했다. 일단은 DMZ로 갔다. 지금 생각해보니 왜 DMZ로 간 걸까.

문산, 도라산 역으로 갔던가… 지금 기억나는건 DMZ 안에서는 관광버스를 타고 돌아야 했는데 이상한 기념품 점에 관광객들을 내려놨다는 것이다. 아니 분단의 현장을 보러왔는데도 기념품샵 앞에서 관광객을 떨구는 꼴이라니..그리고 수원으로 갔다. 수원에서.. 화성을 갔던가. 돈 없는 학생이라 식도락은 하지 않았다. 수원에 잠시 있다가 열차를 타고 군산으로 갔다.


군산 찜질방

위치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자갈치시장 상인들이 신을만한 장화를 신고 목욕탕을 청소하는 아저씨가 보인다. 뭔가 섬뜩했다. 그 무렵 목욕탕에서 고무 장화를 신고 누군가를 고문하던 한국영화를 봤기 때문인것 같다.

뜨거운 욕탕에 몸을 담근다. 여긴 특이했던게 욕탕에서 TV를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괜히 전라도에 가면 경상도 사람임을 밝히기 왠지 꺼려진다. 그런말도 있지 않은가. 전라도 번호판 달고 경상도 다니면 차가 망가진대나..어쩐대나. 그렇다면 그 반대의 케이스도 생각할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 전라도를 차별하거나 비하하거나 싫어하는 감정이 없지만 괜히 주눅이 들었다. 욕탕안에는 다 전라도 아저씨들이다. 그리고 문제는.. TV에서 롯데와 기아가 야구를 하고 있었다.


야구를 정말 열심히 봤던 때다. 로이스터 감독이 부임하고 롯데가 점점 승리 DNA를 장착하고 4위 언저리에서 야구를 했던 때. 나는 대학 4학년이었고 취업준비생이었다. 괜히 롯데에 감정이입을 해서 이기면 웃고 지면 울던 시기였다. 그 야구를 (아마 하이라이트 였을 것이다.) TV에서 하고 있다. 롯데가 안타를 치고 점수가 벌어졌는데 기분이 좋은데 어찌 표현을 할 수가 없다. 여긴 전라도고 옆에는 골수 기아 팬일 것이 분명한 전라도 아저씨들에게 둘러 쌓여 있기 때문이다.


군산에서는 이제 뜨지 않는 폐함을 보고 영화 8월의크리스마스에 나온 초원사진관을 보고..때는 8월이었으니 무진장 더웠다. 군산 구경을 하고 전주로 가기 위해서 군산역으로 가는 버스를 탔는데 거기에서 수첩을 잃어버렸다. 내 인생이 기록된 다이어리인데… 군대에서 부터 시작된 다이어리 쓰는 습관은 군대 이후에도 계속 되었다. 내 거의 모든게 기록된 다이어리를 잃어버리다니 전라도 땅에서 롯데가 이긴다고 웃었기 때문일까. 나에게 벌이 내리고 있는 거야.


전주 찜질방

저주는 끝나지 않았다. 석준이를 만나고 전주의 어느 찜질방에 들어갔다. 씼었겠지. 그리고 찜질방 어느 한 구석에서 잠을 잤다. 일어났는데 기분이 서늘하다. 손에 차고 잤던 락카키가 없는 것이다. 아뿔싸. 허둥대다 카운터에 가서 스페어 키로 문을 열었더니 다행히 가방은 고대로 있었고 지갑만 쏙 빼갔다. 열차표와 주민등록증과 돈이 다 있는데.. 큰일이다. 핸드폰도 다행히 있었다.


카운터의 남자는 운이 정말 없었다는 식으로 말했다. 지금이라면 경찰을 불러서 신고를 접수 했을 것 같은데 그때는 그러지 않았다. 그냥 재수 없었다라고 생각하고 끝낸것 같다. 근처 우체국에 가서 카드를 정지했던..것 같다. 그리고 직원의 도움을 받아 직원 계좌로 엄마한테 돈을 부쳐서 돈을 마련했다. 어딜 가든 훔치는 놈이 있으면 도와주고 위로해주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여행을 더 하려면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기분이 드러웠다. 그 길로 전주 시외버스터미너로 가 부산 가는 버스를 탔다. 여행은 이렇게 끝이났다. 예정되었던 여수와 남해는 가지 못했다. 예정되있던 여수와 남해의 로맨스도 일어나지 않은 채 끝이 났다. 남은 여름은 공부를 하지 않았다. 부산의 집에 박혀 헬스장을 다니고 밥만 축냈다. 근데 그 시절이 지금은 왜 이렇게 그리울까.


나는 이 얘기를 1년에 한 번씩은 누군가에게 한다. 그 이후 나는 무언가를 도둑 맞은 일이 없다. 그건 그렇고 강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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