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친구 권효준이 서울에 왔다. 조달청의 연수가 있다고 우리집에서 며칠 묵었다. 평일에 나는 회사로, 권효준은 교육장으로 향했다.
토요일, 같이 길을 나섰다. 노량진 수산시장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해산물을 먹으러 가는게 아니라 구시장과 신시장의 대립 상태를 뉴스에서 봤다며 직접 눈으로 보고 싶다고 했다. 노량진 역에서 내려 구 시장쪽으로 간다. 마치 폐허 속 잔해 같은 건물이 있다. 영화 세트장의 느낌이다. 그 창고 안에 몇몇 상인들이 촛불을 켜고 장사를 하고 있다. 전기가 안들어오는 모양이다. 이런데서 장사를 꼭 해야만 할까 하는 생각과 오죽하면 하겠느냐는 생각과 뭐 하나 해먹을려고 버티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신시장으로 갔다. 상인들이 호객행위를 하며 수산물을 팔았다. 대게가 제철인지 대게가 많이 보였다. 1kg에 78000원 정도 했다. 너무 비쌌다. 원가가 얼마냐고 물었더니 76000원이란다. 우리는 둘이 쳐다보며 콧웃음을 쳤다. 말이 되냐면서.. 고작 2000원 남기려고 장사를 하는 걸까. 시장은 활기차고 상인들도 활기찼다. 아 영업은 저렇게 하는건가. 저렇게 장사꾼처럼 말하는거 정말 꼴보기 싫은데 나도 저짓을 해야지 지금 회사에 계속 다닐수 있는건가 싶어서 기분이 찜찜하다. 나는 영업직이므로. 그런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정해진 목적지 없이 지하철을 탔다. 도중에 남영역이 나왔다. 내가 남영 대공분실을 가자고 하니 좋다고 하여 내렸다. 둘다 영화 『1987』을 봤기 때문이다. ‘탁’하고 쳤더니 ‘억’하고 죽었다는 박종철 고문 치시 사건의 현장에 갔다. 이곳에서 사람이 죽었구나. 박종철 열사가 있던 곳 말고도 방이 많았다. 방마다 폭 10cm 도 안되는 창이 나 있었다. 낮인데도 어두컴컴했다. 분명 밖이 있는데 밖을 볼 수 없었다. 숨이 막힌다.
남영역 근처에 야구 배트를 휘두를수 있는 곳이 보여 올라갔다. 권효준은 야구를 했고, 나는 농구를 했다. 군대 가기 전에도 할일 없는 우리는 둘이 만나 이렇게 시간을 때웠다. 늦은 오후에 남포동에서 만나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가 야구장 가서 야구 배트를 몇번 휘두르고는 집으로 갔던 날들. 이젠 다시 그런 일은 안오겠지만 친구는 여전히 남아 있다.
해방촌 올라가는 마을버스를 탔다. 갑자기 왜 해방촌으로 올라간걸까. 이것도 즉흥적이었다. 마을버스를 타고 꼬불꼬불 언덕길을 올라가 사람들이 많이 내리는 곳에 따라 내렸다.언덕길 중간에 힙해보이는 카페들이 있다. 젊은 여성들이 각각 무리를 지어 거리에 있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데 언덕 밑쪽으로 자그마한 목욕탕이 보인다.
‘혜림 대중 사우나’.
목욕을 좋아하는 우리는 목욕탕에 들어간다. 그야말로 옛날식 목욕탕이다. 지하에는 여탕이 있고 2층에는 남탕이 있고 3층에는 목욕탕 주인의 생활공간이 있는 그런 곳. 점점 없어져가는 목욕탕의 전형. 남탕에 들어갔더니 이발소가 있다. 그래 , 목욕탕에서 이발도 할 수 있었지.
동네에 있는 규모가 작은 옛날 목욕탕이다. 나이 많은 노인들이 몸을 씻고 있었고, 내 또래의 청년이 있다. 턱수염을 길렀나, 콧수염을 길렀나. 현지 주민 같지는 않고 이 곳 카페 같은 곳에 일하는 사람이 아닐까 그 사람을 힐긋 쳐다보며 생각한다. 사실 별것 없다. 그냥 목욕탕이다. 몸을 말리고 있는데 아저씨들끼리 대화를 한다. 술을 같이 먹을 생각이 있니 없니, 내 몸을 만졌으니 돈을 달라고 농담을 하고.. 역시 동네 목욕탕이다.
밤이 되었다. 독립 서점 고요서사 앞에는 고양이 한마리가 문 앞에서 비켜주지 않는다. 앉아서 조용히 지켜본다. 어떻게 해야하지 생각하고 있는데 권효준이 문을 잡아 당기니 고양이가 알아서 다른 곳으로 간다. 사람을 두려워 하지 않는 사랑을 많이 받거나 사람에게 괴롭힘 당하지 않는 고양이인가보다. 고요서사는 어두웠고 느낌이 있었다. 독립출판의 저자로 보이는 남자가 고요서사의 서점원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는 아무것도 사지 않고 서점 밖으로 나간다.
어딜가지. 숙대입구역 근처에 사람들이 줄서서 먹는 만두집이 생각난다. 어두운 밤 천천히 계단을 내려간다. 여기로 이사오는건 오바일까? 이런데서 사는건 불편하고 힘들어. 권효준은 단칼에 이런데가 힘들다고 이야기한다. 부산의 비슷한 곳에 권효준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숙대입구의 만두집은 사람이 정말 많이 줄을 서 있다. 안되겠다. 숙대입구 쪽 예전에 자주 가던 냉면집에 간다. 삽겹살이 같이 나오는 냉면집이다.
나는 집으로 가고 싶었는데, 권효준은 서울의 밤이 내심 아쉬운 모양이다. 이태원에 가자고 하여, 걸어서 이태원으로 간다. 분명 지도를 따라 가면 갈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용산역 근처에서 도보로 갈 수 있는 길이 막힌다. 옆에는 풀들이 마구 자라 있고 용산역 앞쪽의 관광버스 주차장을 가로질러 용산역으로 들어간다. 20대 초반에 이렇게 자주 헤맸다. 권효준과. 그럴때 우리는 서로를 욕하지 않고 짜증내지 않고 그냥 웃으면서 걸었던 것 같다. 서로 부담 없는 사이란건 길을 잃고 헤매도 상대를 신경 쓰지 않는게 아닐까.
이태원에 가니 젊은 남녀들이 거리에 가득했다. 그날 KT 아현지사에 불이 났다. POS기가 작동하지 않는지 가게 곳곳에는 현금결제밖에 안된다고 붙어 있다. 우리가 갔던 옥상 옆 펍도 마찬가지였다. 타파스 세트와 와인을 시켜서 술을 마셨다. 피곤하긴 하다. 그냥 집에서 마시는게 속 편한데 말이다.
경리단길 근처 슈퍼에 가서 수입맥주를 사서 나발을 불며 돌아다닌다. 오줌이 매려워서 빌딩들을 두세군데 기웃거리지만 열려 있는 화장실이 없다. 결국 카페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하고 집에 가려고 택시를 잡는데 스피커로 퀸 노래가 자꾸 울려퍼진다. LP바에서 울려펴지는 소리다. 호기심이 생겨 LP바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보드카를 시키고 음악을 듣는데 줄창 퀸의 노래만 나온다. 보헤미안 랩소디, 라디오 가가 등등 나는 라디오헤드의 곡을 신청했는데 틀어 주지 않는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흥행을 하던 시기. 우리는 LP바에 있던 것이다. 아 유행하는 것만 추구하는 서울의 인심이란.
이름 : 혜림 대중 사우나
주소 : 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동2가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