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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운장 Jan 31. 2020

2009 지산 밸리 락 페스티벌 추억

WEEZER, FALL OUT BOY, Starsailor, 김창완 밴드, 델리스파이스, windy city, 바세린, 크래쉬, 피아, 아시안 쿵푸제너레이션, 언니네 이발관, 그리고 OASIS



2009년 지산 밸리 락 페스티벌의 라인업이다. 10년이 지난 지금 똑같은 라인업으로 페스티벌이 열린다면? 물론 간다.


2009년은 대학교 4학년이었고, 취업을 준비하던 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리 압박을 받으며 취업 준비를 했는지. 2009년의 상반기는 휴학을 하고 서울에서 토익공부를 했던 것 같다. 딱히 들어가고픈 회사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던 나는, 토익점수가 없었고, 토익점수나 따자는 생각으로 학교 도서관에 박혀 있었다.


아무튼, 제대로 안 했다. 열심히 취업 준비를 하는 사람들을 좀 우습게 봤다.


그해 여름. 10년 만에 록 페스티벌을 갔다. 이번에도 혼자였다. OASIS와 아시안 쿵후 제너레이션에 열광하고 있었던 때인데, 마침 한국에 공연을 온다 하니 큰 고민 없이 갔다.


강남인가. 잠실인가에서 셔틀을 타고 용인으로 들어갔다. 첫날에 CRASH 공연을 봤는데 내 기억상 이게 내 마지막 슬램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몸이 부서져라 슬램을 했다. 지금은 어디라도 부러질까 봐 하지 못하지.


windy city의 라이브가 끝내줬다. 노래를 알지 못해도. 레게 음악이라는 건 그런 거였다. 생면부지의 사람과 어깨동무를 하고 춤을 췄다. 마치 남태평양의 어느 한 섬에서 제물을 바치고 부족원들끼리 춤을 추는 느낌이 이런 게 아닐까. 물론 내 안의 느낌이겠지만, 같은 장소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의 감정을 공유하는 때가 있다. 나에게는 딱 세 번의 경험이 있는데 한 번은 2002년 월드컵 거리응원 때였고, 다른 한 번은 대학 동아리 풍물패를 할 때의 전수 발표회였다. 막걸리를 먹고 다 같이 판 굿을 도는데 보름달이 휘영청 떠 있고, 그곳에 있던 모두가 어디에 홀린 듯 자기를 내려놓고 자유롭게 춤을 춘다. 해방의 느낌, 무언가 따스한 손길이 나를 감싸는 느낌이었다. 그 옛날 인류의 조상 때부터 내려온 '제의'의 황홀함이 이런 것일까. DNA에 새겨져 어떤 상황에서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건 아닌지.  여기에 필요한 요소는 적당한 거리의 타인들, 알코올, 음악, 이 세 가지가 아닐까. 윈디시티의 공연 이후 나는 그런 경험을 다시 해보지 못했다.


윈디시티가 주관하는 황홀한 제의를 마치고 나는 근처 찜질방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기다린다. 구석기시대였다면 제의의 중간 즈음 그 누군가와 눈이 맞아 격렬한 밤을 보냈을 텐데... 아니 그 자리에 있던 다른 누군가는 뜨거운 밤을 보냈을지도 모르겠다.


찜질방을 가는 버스에서 내 옆자리의 남자아이가 (나는 그때 25살이었고 21-22살로 보이는 남자였다) 수줍어하면서 나에게 롯데리아 버거를 건넨다. 고맙다고 했다. 그게 대화의 끝이었다. 그 남자애도 록 페스티벌 분위기에 취해 원래라면 하지 않았을 친절과 호의를 베푼 게 아닐까 싶다. 모두의 마음이 열리고, 말랑말랑 해지고 비록 몸은 너덜했지만.. 이게 바로 록 페스티벌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다음날 아침 귀에는 삐- 이명이 들렸다. 아침 일찍 메인 스테이지로 갔다. 아직 메인 스테이지로 관객 출입은 되지 않았지만 몇몇 관객이 이미 줄을 서고 있다. 헤드라이너인 OASIS의 팬들이다. 밤 9시 정도에 헤드라이너가 나오니 대략 12시간 정도 이 뙤약볕에 서 있어야 OASIS를 볼 수 있다. 이들은 제일 앞에서 펜스를 잡고 코 앞에서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보려는 이른바 진성 "빠" 들이다.


마실 물은 들고 가거나, 공연장을 지키는 주위의 형들이 줄테고.. 먹을 것도 중간중간 주머니에 들고 온 초코바로 버틸 테지만.. 오줌은 어떻게 싸지? 내 경험상 이렇게 더운 날에는 오줌도 마렵지 않다. 피부로 수분이 배출된다. 대부분 펜스를 잡으려고 들어가는 관객들은 소녀들이다. 왜 유독 한국에서만 OASIS의 소녀팬들이 많은 걸까. 10년이 지난 지금도 OASIS의 형 쪽인 노엘 갤러거의 라이브에 가면ㅁ 소녀팬들이 많다. 뭘까. 소녀팬들을 빨아들이는 갤러거 형제의 마력은.


나는 메인 스테이지를 바라보며, 앉아서 토마토를 통째로 씹어먹는다. 메인 스테이지의 문이 열리고 나도 따라서 들어간다. 아시안 쿵푸 제너레이션을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보기 위해서다. 그들은 오후 늦게서야 등장했고 나는 너무 좋았다. 일본 유학시절 라이브를 가려했으나 가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보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당시 나는 이 밴드의 허무한 느낌(가사의 내용은 그렇지 않지만)에 매료되어 한창 좋아했다.


집으로 갈 때는 대학 친구 J의 렌터카의 뒷좌석에 운 좋게 앉아 갔다. J는 여자 친구와 같이 왔고 우연히 도중에 만나서 얻어 타게 됐다. 나는 J와 친하지 않고 데먼데먼 했다. 싫어했던 거 같기도.. 만원 정도 차비를 주고 빠이하고 헤어졌다.


록 페스티벌 3일간, 잘 먹지도 쉬지도 못했고. 몸은 너덜너덜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일어나서 70L의 등산 종주용 배낭에 옷을 주섬주섬 챙기고 서울역으로 갔다. 그곳에서 경의선을 타고 도라산역으로 간다. 일주일간의 전국일주 여행의 시작이었다. 터프했다. 나는.


아 청춘이여! 멋진 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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