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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운장 Feb 02. 2020

러시아 여행의 이유

블라디보스톡 여행기 1

2017년 여름, 러시아로 여행을 갔다. 블라디보스톡 비행기를 탄 건 아이슬란드를 다녀오고 불과 한 달 후의 일이었다. 그리고 두 달 뒤에는 일본 교토로 떠난다. 


왜 그렇게 나는 여행에, 해외여행에 고집을 했던 것일까. 김영하의 『여행의 기술』을 읽고 그 이유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내가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아닌 시절. 뭔가를 쓰고 있기는 했지만 아무도 읽어주지 않던 시절에는 다른 나라를 여행하는 기분이 지금과는 달랐다. 외국에서라고 알아주는 사람이 있을 리 없었고, 그저 젊은 여행자일 뿐이었지만, 적어도 거기서는 여행자가 될 수는 있었던 것이다. 그 어떤 주목이라도 갈망하던 시절, 여행자라도 된다는 것은 그런 욕망을 어느 정도 해갈시켜 주었다. - p.151,『여행의 기술』, 김영하, 문학동네


위기였다. 


현재가 너무 불만족스러워 스무 살 이후의 내 삶에 대해 송두리째 부정하고 회의를 했다.

당시의 내 상황과 생각은 이랬다.


서울에서 혼자 사는 30대 중반의 회사원. 

솔직하고 나쁘게 말하면 노총각.


하는 일은 정나미가 뚝 떨어진 지 오래, 옮길 수만 있다면 어디든 가고 싶다. 부모님은 고향 부산에 계시고, 편한 친구 들고 부산에 있다. 서울에서 누려왔던 음악, 미술, 영화나 그런 것들에 이제 더 이상 흥미가 없다. 여자 친구도, 사랑하는 사람도 없다. 그렇다면 굳이 왜 이곳에? 그냥 부산에서 대학을 다녔으면 지금쯤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어 친구들과 함께 주말에 낚시도 가고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북적북적 인간다운 삶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것들. 


내가 다닌 대학의 간판이나,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다는 우월감 같은 것들 (지방 출신 상경자들에겐 이런 게 있다) 이 의미 없다는 걸 떠올리게 되었고 부산적인 것들을 계속 그리워하고 있다. 


외로웠고 아무도 아닌 나를 인정해주는 가족과 친구는 저 멀리 부산에 있어 두 달에 한 번 정도 만날 정도였다. 그렇지만, 이 생활을 접고, 다른 생활을 할 결단을 내리지는 않았다. 그래서 탐했던 것이 '여행자'라는 정체성이었다.


일상에서의 혼자는 절박하고 주눅 들게 만드는 면이 있었다. 


고독, 외로움이 

내가 살고 있는 일상의 세계에선 불쌍함, 지질함, 안쓰러움 등으로 느껴졌다면,  

저 멀리 이국 땅에서의 며칠간 느끼는 고독은 멋있는 외로움이었다.

마치 라디오헤드의 음악처럼. 


난 어차피 이곳에서 며칠 있지 않을 테고, 비록 말할 사람이 없어 외로운 감정이 들었지만, 그 쓸쓸함 감정은 이국의 바다를 바라보면 어떤 고양감으로 바뀌었다. 여행지에서는 혼자이지만 멋있는 내가 있었다.


내가 바라보는 나의 모습은 결혼을 하고 싶고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지만 그걸 실패한 30대 노총각이었다. 남이 뭐라 하지 않았지만 몇몇 상황에서는 수치심을 일상적으로 느꼈다. 벗어나고 싶었다. 방안이나 서울의 거리에 있었다면 출구 없이 이어지는 생각들로부터 멀리 피해 멋있는 고독을 택하려 여행에 매달리며 도망쳤던 게 아닌가. 


러시아를 다녀오고 두 달 뒤 추석 연휴에는 부산에 가지 않고 일본 교토를 갔다. 그건 부모님이나 친척에게 한 소리 듣기 싫었기 때문일 것이다. 33살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어렴풋이 생각한 결혼의 데드라인이었을 것이다. 그 데드라인이 넘어섰을 때 그걸 부정하고 싶고, 달아나고 싶어 집착적으로 한국에서의 나를 거부해온 건지도 모르겠다. 


우울한 감정은 블라디보스톡의 호텔방에서도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여행에 성공과 실패가 있을까. 그런 게 있다면 블라디보스토크 여행은 실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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